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
오늘도 하루 3번 약을 챙겨드리다가 폭발의 순간이 왔다.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낸다는 것은 불가능인가 보다. 우리 엄마는 환자다. 치매를 앓은 지 3년 차 된다. 치매임을 병원에서 진단받자고 모셔가는 데도 거의 1년을 소비했다. 아마 아주 초기에 진단받고 보충제라도 복용을 했다면 훨씬 경과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가정법은 집어치우고.
결혼 생활 내내 아버지는 분노에 차 있었다. 본인의 경제활동이 그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아서도 그렇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짜증이 많은 나르시시스트 스팩트럼에 있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약간 둔감한 엄마는 (나는 어려서 알지 못했던 이 부분이 나중에는 치매로 발전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 예민한 아버지의 성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성향이 비슷했던 나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대로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하셨다. 엄마 혼자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미용실에서는 항상 노동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 접대도, 손님 머리 시술, 매장 청소 등 미용실을 둘러싼 모든 일들을 엄마 혼자서 했다. 집에 오면 다시 노동을 했다. 몸으로 모든 것을 다 하는 엄마는 어린 나의 눈에는 노동으로 최적화된 사람 같았다. 그 삶이 고되고 힘들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으나, 그 고통을 공감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도 나를 공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덮어놓고 내 잘못이며, 내가 짜증스럽게 반응하는 것은
다 내 탓이었다.
우리 가족 어느 누구도 나의 청소년기에 생기는 물음표에 대답을 해 줄 사람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고, 대화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집이란 곳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며, 최대한 짧게 머물다가 나오는 곳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복통과 두통을 달고 살았다. 후에 생각해 보니 청소년 우울증이었다. 두통이 너무 심해 찾아간 면허 없는 한의원에서 피를 한 바가지 빼고 나온 적도 있다. 짜증이 막 올라와서 난리를 피우면 엄마는 많이 배운 것 유세하냐며 나를 더욱 눌렀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나에게 한 목소리로 물어본 말은 "넌 왜 그래?" 이 한 마디였다.
글쎄, 난 왜 그럴까. 왜 짜증이 올라오는 걸까. 이유는 뭘까. 수백수천 만 번도 더 생각했다. 자신감은 바닥으로 자존감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게 살았다. 우울하고 슬프다는 생각만 했다.
처음부터 설명하자면 책을 1권 쓰고도 남는다. 내 생각의 최종본은 나는 욕심도 많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너무나 큰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것 같은데, K장녀의 자리를 타고나나 참고 양보하고 욕심을 없애고
모든 것은 혼자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 그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나는 부모를 미워하는 카르마를 엄마와 동일하게 타고 태어났다. 이도 뒤에 찾아 헤매다가 내가 엄마를 이해하게 된 생각이다. 나를 이런 좋은 자질로 낳아주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나를 길러주었지만 어린 눈에 이미 원망의 시선을 가지고 부모를 보아왔다. 그러니 공부뿐만 아니라 건강도 자꾸 나빠졌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몸에 건강하지는 않았다. 단 것을 자꾸 섭취하니 집중력은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성과도 내가 원하는 바와 자꾸 멀어졌다. 나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엄마는 초등교육을 겨우 마친 상태였다. 생활조사서에 항상 고졸이라고 했던 것은 거짓이었다.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자격지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화를 내면 넌 많이 배워 부모에게 못된 짓을 하냐며 나의 죄책감을 건드렸다. 그리고 본인의 감정적 사고 습관은 두려움, 슬픔, 부정적인 사고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내가 학생 때, 아직 완연한 성인이 되지 못했을 때는 이러한 엄마라는 개인의 사고체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치매가 발병하고 그 원인이 무엇일까, 엄마는 왜 그런 말을 할까, 우리는 왜 가족으로 묶여서 이 생을 살고 있나, 나는 정말 엄마 딸이 맞을까 라는 질문은 수없이 하고 찾아 헤맸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을까. 그보다 왜 그런지 알고 싶었다. 나와 엄마는 너무나 사고체계가 다르고 나는 엄마가 한 말에 너무나 상처받았던 적이 많은데 엄마는 그걸 가족이니까 그냥 하는 말이라고만 했다. 가족이라 해서 너무 막말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가정주부 생활을 하는 중에 영어스터디, 독서, 운동 등으로 바쁠 때 엄마는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열심히 사느냐고 물었다. 망치로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그냥 단적인 예일뿐이다. 그런데 이때가 치매 초기였다. 상처받지 말고 병원 데리고 갔어야 했다.
엄마는 두뇌를 움직이는 훈련이라는 자체를 모르는 인생을 살았다. 나이 드신 어르신 중에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아도 논리적 사고가 되시는 분도 있던데, 사람마다 다르단다. 다 상황이 달라서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태어난 환경이 본인의 논리적인 사고를 키울 환경, 자존감을 키울 환경이 되어야 이 모든 것들이 발현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엄마는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 바탕으로 부정적 사고, 자신과의 부정적 대화습관으로 자신의 미래를 처참하게 이끌어 낸 것이라 봐야 한다.
아픈 부모님을 버리는 나쁜 자식은 아니지만, 엄마를 모시고 같이 살 수도 없고, 상황상 엄마 옆에서 챙겨드릴 수 없다. 오늘도 우리 엄마는 집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채 잠이 들었다. 시시티브이로 보고 있는 나는 그저 속이 탄다. 핸드폰 음량은 최저로 낮춰져 있는지 수백 번을 해도 받지도 않고 집전화는 몇 시간째 통화 중이다. 수화기가 내려져 있는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 저녁 약만 먹으면 되는데,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답답하다. 글을 시작할 때 화나는 감정이 좀 가라앉았다. 나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