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말하기 일보 직전이네
말하자면 뭐 할 뻔한 남편 험담의 스토리는 아니다. 남편과 함께 산 세월이 20년이고 나는 꽤나 괜찮은 내조를 하고 잘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좀 요란한 편이다. 좋게 말하면 열정이 많고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 맘대로 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안 될라 하면 답답해 미칠라 한다.
본인의 뜻대로 안 되는 걸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편이라 옆에서 보면 좀 안쓰럽다. 게다가 본인이 의지하는 대로 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애를 써서 바꿀 수 있는 것이면 얼마든지 노력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면 좋으련만 아닌 것을 내려놓지 못해서 답답하기 그지없을 때도 많다.
지조 있는 집안, 양반 가문이라는 윤 씨 성을 타고났다는 자부심과 함께 윤봉길 의사의 직계 자손이라는 매일세뇌에 나조차 자부심을 가졌을 만하다. 그래서인지 성질이 아주 부러지고도 남을 만큼 반듯하고 양심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먼지도 없다. 참 맑고도 부끄럽없이 열심히 사셔서 좋겠어.
주요 사건은 이 부러질 것 같은 성질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결혼 20년 후에야 알게 된 눈물 나는 효심이 발단이다. 이제는 어머님도 연로하시고 아프신 곳도 많아서 건강이 염려되긴 하다. 그해서 남편의 마음은 더욱 조급한 가보다. 한국에서 가까이 살지 못해 왕래를 자주 할 수 없고, 멀리 있는 자식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가늠이 안되기 때문이다. 자주 못 봐서 한 번 만나도 서로의 안타까운 마음만 짐작한 채로 만남이 끝나는 것이다. 짧은 만남조차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많았다. 나이 드신 어머님은 막내아들이 여전히 막내아들로만 보여서 '네가 잘 살면 얼마나 사니'라는 말투로 남자의 자존심을 의도치 않게 밟아놓은 경우도 있었다.
우리 어머님도 남자랑 안 살아 본 지가 너무 오래됐나 보다. 그들 종족은 존심 빼면 시체인 것을.
그들은 집안 내력을 알려나 모르려나, 혀에 칼을 달고 상대의 가슴을 후비는 말을 잘한다. 나도 남편과 살다가 그런 말로 상처 입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 한국 다녀온 남편에게 어머님은 , '이제 네가 오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쓸 거니까 네가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말아라." 하신 모양이다. 길고 긴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아들을 기다리다 지쳐 이젠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을 그만하겠다는 본인의 마음 상함을 표현하신 말씀이긴 하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후벼놓았다. 아들도 살고자 멀리서 애를 쓰고 있다는 걸 안다고 입으로 말씀하시고는 마음의 서운함을 필터 없이 뱉어 버리는 무모함을 직격으로 맞았다.
알고 보니 효자 남편은 이제 엄마가 나를 더 이상 마음에서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 괴로워한다. 젠장, 말씀이나 좀 가려 하시지
아주 엄마가 자신을 버린 것 마냥 괴로워하면서 엄마에게 매일 전화를 해댄다. 자신에게도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면서. 옆에서 보는 나는 한국어 통역 중이다. 아들의 진심은 엄마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라 해주고, 엄마는 그것을 알겠노라고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해석해 준다.
하다 보니 남편은 여러 가지 소설을 쓴다. 엄마랑 살겠다느니, 한국으로 가겠다느니. 이미 술과 한 몸이 되신 후에 아무 말이나 해 써서 나도 아무 말이나 했다.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가기 전에 도장은 찍고 가라는 건 생략 했지만) 그 가족 모두가 엄마 너무나 사랑하고 있음은 나도 알겠다. 모두 엄마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엄마를 사랑하고 위한다. 물론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배우자 사랑은 다른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뒤늦게 알았어도 두 가지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어머님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가라. 나도 엄마를 향해 엄마의 인정과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막내아들의 모습에 놔주고 싶다. 가고 싶으면 가라. 내 기꺼이 너의 행복을 빌러주마. 단 선택은 하나다. 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잘 살기만을 바란다.
나에겐 아예 없는 엄마를 향한 사랑과 인정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남편이 외계인 같다. 다른 종족처럼 느껴진다. 이미 마음이 돌아간 사람을 붙잡고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남편도 참 안타깝다. 그 대상이 부모라서 이렇게까지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내가 더 이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끈끈한 사랑의 기억이 없다. 있다면 남편이 처음으로 그런 대상이 되어 주었고, 나에게 부모가 주는 사랑을 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부모의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그 아픔을 준 부모도 좀 미워지는 게 사실이다. 어머님이 하신 마음을 후빈 말, 나도 들었다. 나는 그 순간 마음 접었다. 그렇구나, 서운하다는 표현이지만 마음이 그러하시면 나도 내 입장도 정리해야겠군. 사람이면 상대방의 말을 듣고 내 마음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니까. 사실 이런 식의 거절은 나는 익숙하니까. 내 마음을 접어버린다.
하지만 이런 미움받음이 익숙지 않은 남편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모양이다. 굳이 굳이 그 마음을 돌리고 싶나 보다. 인정받고 싶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