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성장 중일까, 노화중일까

알고 싶다

by Min kyung

지금 남편이 힘들다. 마음이 힘들다. 아마 그의 인생은 편안한 날이 얼마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도 쫓아다니나 염려스럽기도 하다.


남편은 유년기도 힘들게 보냈다. 70년대 생이지만 5살 차이나 높은 내가 듣기에 그림을 그려 이해해야 하는 성장환경에서 자랐다. 아마도 도시에서 자란 내가 겪어본 적이 없는 환경이라 더욱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도 높다.


시아버님이 탄광에서 일을 하셨다. 5남매 막내로 태어나서 넉넉지는 않지만 막내이기 때문에 받는 애정은 듬뿍 받고 자랐다. 자란 곳이 산이라 학교에 갈 때도 놀이를 할 때도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았다고 했다. 남편은 힘들 때면 항상 자신이 어려서 뛰놀았던 곳, 사랑받았던 기억, 즐거웠던 추억의 얘기를 자꾸 꺼내주었다. 그런 에피소드를 자주 듣는 나는 이 사람의 마음의 고향은 그때, 그곳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남편은 유별난 구석이 있다. 본인도 자신의 성격이 유별나다고 생각해서인지 자신을 닮은 아들을 낳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린 딸만 둘이라 다행이라고 자주 얘기한다. 막내로 자라서인지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졌으면 하고 강하게 말한다. 정당성에 옷을 입혀서 틀린 것이 아니니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많았다. 나는 옳은 의견을 그것이 싫더라도 따라주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는 옳다고 생각해서 판단했지만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큰 사건을 두고 알게 된 경우가 두 어번 있었다. 그 결정을 할 때는 남편에게 강하게 반박할 수 없었다. 반대할 강력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몇 년 뒤에 올 결과를 예상치는 못했다. 보통의 아내들은 미리 이런 결과들을 알고 남편의 의견에 반대도 하겠지만 그때 나는 너무도 강한 그의 의견을 꺾지 못했다. 남편은 옳다고 생각하면 굽히지 않는다. 그러니 시간과 내가 희생을 해서 잘못된 결과치를 보여주면 된다. 좀 참아야 하고, 무언가는 희생을 해야 한다.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 남편도 나름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자신의 결정이 그 앞을 그렇게 잘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반성은 한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나의 의견지분을 얻어내는 중이다.



사건의 시작은 아이의 입시문제로 간다. 아빠와 같은 유전자를 타고난 큰 딸은 약간은 무섭고 잔소리 많은 아빠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좋음의 표현을 잔소리로 하는 아빠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은 없다. 대놓고 미워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2 정도 되었을 때부터 내신성적이 탐탁지 않았던 남편은 아이에게 대놓고 계획을 강요했고 당연히 아이는 따르지 않았다. 첨엔 본인도 해 보려고 했지만 잘 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어느 아버지가 자녀의 시험계획을 세우나, 마 같지도 않은 소리, 모르는 소리다.


똑같은 인간 사이에서는 나는 중간 샌드백이었다. 누구도 굽히지 않았다. 부모입장에서 강요하는 남편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당연히 따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이라도 따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일 년을 보내니 마음에 멍이 들었다. 화병이 나는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았다. 내가 발악을 하는 사건을 몇 번 거치고 나니 남편이 조금씩 생각을 바꾸는 것 같았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더니, 자신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이젠 대망의 대학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자꾸 가능성을 따진다. 스트레스를 줘 봤자 좋을 것도 하나도 없겠구먼, 남편은 자꾸 힘든 아이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본인은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분명 이유가 있어서 결정을 했겠구나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왜 그것을 남에게 해 줄 수 없을까. 아마 자식의 일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오늘도 반성전의 계획형 아버지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는 드러누워버렸다. 나더러 아이와 잘 상의하라는 말을 남기고 삐짐 모드인지, 반성모드인지를 모를 상태로 가버렸다.


자꾸 나이 먹는 남편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리고 본인의 쓰임이 직장에서만 있다면 그리고 그 삶에 지치고 있다면, 감사하기도 하고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마음도 생긴다. 그는 며칠 전 대화에서 대체로 두렵다고 했다. 아이가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지 못하면 어쩌나, 연로하신 어머님이 혹여 갑자기 돌아가시지는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그의 두려움 때문에 나는 걱정 없이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남편은 가장이라는 책임을 얻었기 때문에 걱정도 같이 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짐이 버거워 보이기도 하다. 두려움과 힘듦이 그를 누르는 것일까. 그러면 노화도 성장도 아니지 않을까.


노화든 성장이든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내어 주면 좋겠다. 대화는 연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해해 보려고, 그래서 관계가 튼튼해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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