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모습을 했건 날 받아주는 거였어
가장 가까운 유대를 가진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되었다. 아이가 크면서 정서적인 공감과 수용을 주고받으며 자라야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 물론 내가 지금 정상적이 아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원가족에서 이것이 채워질 수는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과거부터 왜라는 물음에 집착했다. 왜 안 될까, 왜 우리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걸 주지 못할까, 왜 자기는 다 준거 마냥 이해를 나의 코트로 떠 넘기는 걸까, 왜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수차례 오랜 기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상대를 다그쳤다. 하루는 엄마에게 전화해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엄마를 더욱 이해할 수 없음을 토로했다. 그러면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니 네가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했다. 이제는 소용없는 과거일을 왜 자꾸 들먹이냐는 핀잔도 들었다. 매 회 모른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안다는 상태를 위한 노력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 엄마는 승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분노하고, 말하고, 다그치는 모든 에너지들은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엄마가 이겼다.
사실 내가 요구하는 어떤 것도 엄마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는 아마 외계어를 듣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이 이해될 리 없다. 그러면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서 엄마는 어린 내가 요구하는 것을 절대 해 줄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어린 시절 말로는 할 수 없었다. 엄마, 내가 이렇게 삐죽한 모습이어도 나를 이해해 줘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인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움이 필요해요.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아마 이렇게 말했어도 도와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도 어찌할 바를 모르니까.
엄마의 세상 안에서는 안전하게 밥 먹고, 학교를 다니고,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 만이 '산다'는 의미였다. 단지 생존이고 1차적 욕구에 만족하는 삶이 그녀의 전부였다. 그 이상은 그녀가 해 본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세상의 얘기였다. 공부를 하고, 마음을 읽고, 소통을 하고, 알아주며, 알아 달라고 요구를 하고,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소위 엄마표현대로 '한 번도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삶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대로 1의 성정도 없이 나이 들고 있다. 그게 엄마가 사는 방식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 예상된다. 이젠 엄마의 삶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로를 인정하고 지켜볼 생각이다. 엄마의 마음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 특히나 내가 하는 말이 그녀에게 통하지 않음은 오랜 세월 경험으로 충분히 알지 않는가.
엄마는 자신이 돌봐야 할 존재에게는 지나친 애정을 과시한다. 그들 중에 나는 빠져있다. 자신의 작은 딸, 나의 딸들(손녀들)은 그 존재들에 포함된다. 이제 왜라고 묻지 않겠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할 것이다. 오랜 기간 걸친 나의 연구- 나는 왜 갈등을 만들었다, 난 그때 왜 그랬나, 가족은 왜 나를 정서적으로 받아준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나, 동생이라는 존재는 왜 미웠나- 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다. 생각하는 동안 머리도 많이 아팠고, 마음도 아팠고, 수습하기도 힘들었다. 내 마음을 달래주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는 단지 내 마음을 좀 알아주기를 바랐을 뿐인데,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란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겨있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원하는 정도가 그들에게는 힘겨웠을 수도 있다.
많이 가진 내가 참지. 엄마는 나에게 내가 많이 가진 인간이라고 했다. 아마 목적어는 '복'일 것이다. 그래, 그들이 보기엔 많이 가졌겠지. 그들에겐 없는 거니까. 그래서 질투가 났겠지. 엄마가 딸에게 질투를 가진다는 것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그들 말대로 살려고 한다. 복 많은 인간이 뭐가 아쉬워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인간들에게 애정을 갈구하겠는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 엄마와 동생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므로, 서로를 돌보며 오래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