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 같은 기억

줄줄이 비엔나 같은

by Min kyung

다시 일 년 전으로 돌아간다. 나를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을 나쁜 년으로 만든 그녀와의 기억.




나는 내가 생각해도 앞만 보고 가는 맹한 T 같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나쁜 의도가 없는 행동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만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상대를 잘 알지 못했을 땐 예외도 있음을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순진해 빠지고, 앞뒤를 따질 줄도 모르는 맹추였다.


내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겉으로 보이고, 스스로 하는 말이 다르고 본심이 다른 위선으로 온몸을 휘감은 인간이었다. 완전 F 형 사람이면서 스스로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T 인척 한다(어떤 유형도 나쁘다는 걸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알지도 못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최악의 사건을 겪지 않으면 자신의 본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좋은 사람인척, 엄청 인자한 척, 자신은 굉장한 교양을 가진 척, 본심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언급하면서 자신은 그와는 다른 존재임을 항상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니다. 자신이 욕하고 비난하는 그런 인간들과 1도 다름이 없는 찌질한 존재다. 다른 이들의 모자람을 언급하는 그 자체가 모자람이고 존중이 없음을 보여준다. 다른 이들을 깎으면서 자신은 안 그런 척할 뿐이다. 그냥 같은 인간일 뿐이다.



좁은 교민사회, 어디에 누구라고 언급하면 대강은 알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구직활동도 구두추천이나 소개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크게 공식적으로 소문내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을 소개하기도 한다. 남편의 지인은 직장을 구하고 있었고, 나이로 보나 직위로 보나 그 만한 경력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내가 말하는 그분의 남편은 곧 본인의 직작을 나오려는 찰나였다. 그래서 그분의 남편이 퇴직을 결심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지인이 그 자리에 지원을 해도 되는지 물었다.


여기서 나의 실수도 인정한다. 앞도 뒤도, 그분의 감정적 상황도 고려하지 않았다. 퇴직을 결심하신 분의 정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한 질문을 한 점은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과를 할 때도 이 점을 충분히 하고 또 했다. 하지만 나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개 쓰레기 같은 년일 뿐이었다. 어떻게 남의 구직자리까지 알아봐 주는 아량이 있어야 하냐며, 얼마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무시하냐며 퍼부어 대는 앞에서 나는 그냥 죄인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모르면서 그녀의 남편 능력에 버금가는 사람이라 니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며 따져댔다.




자녀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갔던 그녀가 무슨 일인지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을 언뜻 들었다. 마음속에 그녀를 조용히 보냈다. 그녀가 가기 전 충분히 할 만큼 사과했고 머리가 하얗게 될 만큼 욕도 먹었다. 그리고 두 달을 어디도 나가지 못했다. 상담을 받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그녀와의 일을 다시 보았다. 그녀와 가까이 지내게 된 이유도, 그녀가 나에게 준 것도, 그리고 그녀와 그런 일이 있게 된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일어나서 내가 성장해야 하는 시기를 짚어 준 것뿐이었다. 나는 숙제를 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했던 말도 다시 마음속으로, 미움의 말도 글로, 그녀에게 바라는 말도 되뇌고 또 반복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도 한결 편해지고 나는 그 사건을 잊었다. 그로 인한 괴로움으로 매장된다면 나는 그 고민만큼의 사람인 거다. 정리하고 나의 잘못을 보고, 실질적으로 사과하고 마음속으로 사과를 또 하고 정리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한 것이다. 그 과정을 모두 거치면 그 문제보다 그릇이 커지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건 발발 1년 즈음이 된다. 언젠가 해결해야 할 나의 문제를 보라는 신호를 받은 것이다. 그 보다 더 큰 그릇을 가지라는 인생에서 과속 방지턱 같은 시기를 지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뤄두었던 가족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 나의 마음을 보듬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실수도 할 수 있음을 되뇌었다.


그 일로 인해 엮여 있던 모든 인간관계가 사라졌다. 그 즈음해서 차차로 정리되고 있었던 건 맞지만 그녀와 얽혀있던 모든 사람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관계가 맑게 보인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어떤 성향이어서 그런건지 명확해졌다.



나에게는 좋은 쪽으로 바꾸어 준 기회여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들여다 보지 못하고 남을 비난하기에 더욱 에너지를 쏟는 사람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버튼을 누르면 영화가 시작되는 것처럼 그녀 자체가 나에게는 플레이 버튼 같은 존재다.



지난 그때 나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데에는 아무 미련이 없다. 욕지거리를 들었어도 모두 다 수용하겠다는 자세로 들었으니, 나는 할 만큼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그녀를 떠나 보냈다. 어딜 가서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언제 어디선가 그녀를 마주치게 된다면 인사는 할 수 없겠지만, 눈을 마주칠 생각도 없지만, 그냥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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