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서 내 속에 구멍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그들은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언제나 너의 말을 들어줬다고, 그런 게 아니라고 할 것 같다. 누구나 그런 건 다 안고 산다고 할 것이다. 지금의 가족도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런데 내 마음은 아니라고 한다.
큰 아이가 대학에 간다. 행복한 고민이지만 합격한 학교를 두고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감사한 일이다. 판단의 근거를 놓고 반대의 의견을 가진 우리 부부는 다른 의견을 가진다. 의견이 다른 건 문제가 안 된다. 끈질긴 사람이 이긴다. 아이의 미래를 두고 부모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토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끈질기지 못한 나의 입장에서는 결론을 지어놓고 설득을 하는 상대를 이길 마음도 없다. 물론 선택은 본인이 한다.
문제는 여기가 아니다. 상대의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에서 나의 결핍을 다시 느낀다. 마음이 답답하다. 다른 의견이라 하더라도 수용받는다, 존중받는다는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일까. 이 가족은 그렇다 하더라도 저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서운함에 다시 어지럽다.
원가족에서는 수용의 태도로 마음을 안정시켰던 적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그래서 그런 거구나. 미처 알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내가 내뱉는 말들은 다시 단단한 가시와 함께 비난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문을 닫았다. 그래 대화를 시도해도 소용이 없구나. 혼자로 돌아가자. 이런 마음은 마음에 구멍을 만든다. 텅 비어서 허전한 마음은 시리기도 하고 무언가를 항상 갈구한다. 속이 채워져야 더더 원하는 것이 줄어든다. 허전하고 공허함은 물질, 음식, 혹은 다른 기쁨을 찾아 헤맨다. 혼자가 편해, 수용되지 않는 마음은 나 혼자라도 괜찮다며 모든 소통의 문을 닫는다. 그러다 혹시 다른 대상으로 속을 채울 수 있을까 기웃거린다.
어떤 기분일까? 때론 궁금하다. 아무 조건 없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가 수용된다는 기분은. 하늘을 나는 기분과 비슷할까. 행복하나. 가슴이 가득 채워지는 그런 기분은 어떤 건데. 그럼 성장과정을 지나도 그런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른 대상으로 마음을 채워야 하는 걸까. 다시 마음을 닫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번 문제는 도대체 답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