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답을 찾았다. 나를 괴롭히던 물음, '넌 도대체 문제가 뭐냐'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으냐' 들은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 했다. 힘들게 하다 못해 아마도 질문이 다시 내면에서 올라왔다. '넌 왜 그러는데'. 답을 찾고 싶었다. 오랜 시간 같은 물음에 대한 시간을 가지다가 드디어 답을 찾았다. 갑자기.
'그건 너 자신이 맘에 안 들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나의 모습이 맘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예쁜 모습을 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것도 아니고, 공부도 잘하는 모습이기를 바랐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의 기준치는 너무 높고, 실제 나는 그 기준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할 때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칼로리가 높은 식단에 식사는 불규칙적이었다. 공부로 받는 스트레스는 단 것들로 날려버린다는 말도 안되는 규칙을 정하고 습관화했다. 그냥 먹고 싶을 때 먹었다. 야채와 과일 섭취는 줄고 운동은 당연히 생략했다. 그러면 몸의 상태는 상상하는 그대로 나타난다.
먹고 싶은 대로 먹는 식단이 몸에도 좋지 않겠지만 뇌에도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다. 학습방법도 제대로 몰랐던 것 같고 집중도도 떨어졌다. 책상에 앉으면 집중보다는 졸음이 나를 덮쳤다. 계획은 항상 계획일 뿐이었고 결과는 좋을 수가 없었다. 결과에 실망하고 다시 마음을 잡지만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도 모를 반복을 했다. 그렇게 나의 학창 시절은 흘러갔다.
졸업을 하고 한 해 더 공부를 했다. 이미 기초가 약한 상태에서 재수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발악이었다. 또 재수 생활이 끝나고 일단 나는 모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학교보다도 영어가 좋았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다시 아쉬움을 토로하는 나의 모습은 계속되었다.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볼 힘이 부족했다. 마냥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모습으로 나는 대학생활을 했다. 좋지 않은 과정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성공의 경험이 많이 않은 상태에서 그 굴레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문제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해소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런 삶은 계속되었다. 학생이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나이가 되었으니 직장을 구해야 했다. 그냥 때가 되었으니 해야만 하는 굴레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분명하게 '나는 탈출, 이별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단, 나의 미래를 걸고 탈출하는 것이니 함부로 아무나와 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참으로 다행인건 나는 그동안 나는 어떤 인간인가 계속 탐구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주는 독한 피드백도 받아들였다. 나는 나만 아는 인간이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나는 받는 것만 좋아한다. 그래서 나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버지가 딸을 주면서 내세우는 자잘한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는 누군가를 만났다. 딱, 이 사람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건은 검소함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건 아니지만 나는 자기 옷을 스스로 사 입는 남자가 싫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다. 원단, 소재, 디자인을 비교해 가며 할인율을 따져서 똑똑한 쇼핑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겉으로 보이는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남자가 싫었다. 내 남자는 내가 사다주는 아무 옷을 아무 말 없이 입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 다른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 부분은 정확히 남편이 이랬다. 가난하지만 검소함과 절약으로 충분히 티끌이 태산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이때부터 엄마는 나를 말렸다. 정확히 말하면 괴롭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