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말했지만 우리 엄마는 정리를 잘 못한다. 주방 살림은 물론이고 집에 필요한 모든 물건, 자신이 자주 쓰는 물건도 정리라는 개념을 잘 모른다. 그냥 주변에 혹은 눈에 띄는 곳에 널부러 져있는 것이 정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정에서 자라 다른 집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기 전까지 그런 정리가 일반적인 줄만 알았다.
남편을 만나고 나의 생각과 경험들은 모두 뒤집어졌다. 아니 처음부터 싹 뜯어고쳐야 했다. 남편은 나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 정리와 청소라는 부분에서 그러하다. 남편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아주 가난하게 자랐지만 어머님이 그 환경을 깔끔하고 말끔하게 가꾸어 놓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친구들이 한 말 중에 "너의 집은 밖에서 볼 때 기대가 없었는데 안에 들어와 보니 다르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래. 어머님은 있는 것을 정리하고, 뭉치고, 닦고, 더욱 깨끗하게 말끔하게 보이도록 해 놓는 분이다. 그래서 내가 남편의 집을 보기 시작하면서 완전 다른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완전 극과 극의 비교군이 생긴 셈이다.
처음엔 내가 가진 정리습관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문제가 무엇인지 몰랐다. 단지 정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정리를 하기 위한 마인드 셋이 덜 생긴 것이다. 모든 생활습관이 삶이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기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남편이 다 옳고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나 어머님도 극도로 성격이 급하고 불안과 걱정이 많기 때문에 모든 일을 서두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주변을 깨끗이 하고 어지러운 것을 정리한다는 습관은 당연히 배워야 한다. 20년간 같이 살며 훈련한 결과 나도 완벽히는 아니지만 얼추 그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정리하는 마음이 어떤 것이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길 수 있나 이젠 안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부모의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배운다는 것도 충분히 안다. 나 개인을 놓고 보면 나는 못 본 것이다. 본 적이 없다.
남의 집 주방을 들여다보는 경우는 드문데 최근에 기회가 생겨 지인의 주방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것도 확실한 비교군 2곳으로. 비교, 판단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은 자랄 때 어떤 모습을 보고 자랐는지 정도는 그들이 사는 집의 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의 경우도 그러했으니까.
나도 모를 땐 몰랐지만 알고 나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편적으로는 놀랍겠지만 사실 오랜 반복과 누적으로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시선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 보여주기 아름다운 모습도 좋지만 나만의 취향이나 방식이 묻어나는 모습이라면 좋겠다. 맘에 드는 모습을 자꾸 상상하고 그려보게 된다.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날 거라는 기분 좋은 느낌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