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마지막 단계라고 해 주세요
인생에서 묵직한 한 방을 맞은 날이 있었다. 내가 만들어 온 관계,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 부모를 향한 원망, 미움, 모든 먼지덩이들이 모여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날아왔다. 나에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시작은 좋은 마음이었고 주변의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면 누구에게도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아는 사람 홍 씨가 있었다. 홍 씨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40대 중후반의 가장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었다. 적당한 자리가 빨리 나타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내 주변엔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이웃이 있다. 나의 아이가 고3인 상황에서 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그녀가 잘 알아주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작은 회사의 법인장이었는데, 회사 전반의 업무를 모두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즘에 국제학교를 다니던 그녀 아이가 캐나다로 유학을 원한다며 캐나다로 잠시 가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곧 현실화되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남편도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같이 떠나게 되었다고.
저녁에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의 이웃의 상황을 전했다. 떠나는 자와 구직을 원하는 자를 자연스럽게 연결 짓고 있었다. 남편은 물어나 보라고 나를 부추겼다. 앞서 말했지만 선한 의도를 가지고 물어보기만 하는 것은 나쁠 것 같지 않았다. 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혹시라는 말은 해 볼 수 있는 관계라고 믿었다.
사달은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저녁에 맥없이 한 작은 질문이 다음 날 아침까지도 나의 이웃을 분노케 했고. 그녀는 불쾌하고 황당하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것을 물어볼 수 있느냐고 따졌다. 이에 나도 아차 싶어 바로 사과했다. 내 생각이 짧았고, 경솔하게 말을 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는 사실만 빼고 다 말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내가 잘못한 바를 조목조목 말했다. 아주 공손한 자세로.
내가 아는 모든 조건을 갖춰 사과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음을 이때 처음 알았다. 내 공식- 내 마음을 다해서, 공손하게, 진심으로 사과하면 상대도 알아줄 것이라는- 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이 안 되는 상태로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사과할 기회를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나 읽고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 상태로 한 달쯤 지나도 그녀가 나에게 먼저 해 온 연락은 없었다. 그녀가 이전에 지인과의 관계를 단절해 버렸다는 것을 직접 말했기 때문에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나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있고, 나와의 관계도 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마주치지도 않던 그녀를 정면에서 마주쳤다. 순간 당황해서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하고 싶어서 차를 한 잔 청했다. 마주 앉은자리에서 그녀는 분노의 톤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자신의 남편자리에 누군가 면접 봐도 되겠느냐는 말이 어이없게 들렸고 이 말로 해서 부부가 모멸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나는 또 방어와 사과의 말 대잔치를 한다. 그녀는 처음의 분노상황으로 돌아가 쉬지 않고 감정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떤 이가 그녀의 남편을 대체할 것이냐고, 넌 아직도 다른 이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나를 윽박질렀다. 그러면서 '넌 아직 반성을 한 것도 아니잖아'라는 말로 나를 완전히 짓밟아 벼렸다.
가족과 대화에서 느꼈던 답답함, 공포, 가슴이 짓눌린 것 같은 느낌이 다시 올라왔다. 잘못은 네가 했잖아라는 전제를 깔고 나를 코너로 몰아넣는 그녀의 태도를 느꼈음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듣다 보니 더 이상의 대화는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뿐이었고, 눈물이 나는 와중에도 빨리 듣고 끝내야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겠다는 감이 왔다. 나의 입장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수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떤 생각이 있건, 사정이 있건 그건 나의 사정일 뿐이고, 그녀는 못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젠 보지 말자는 말로 마무리했던 것 같다.
사과는 받아줄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관계를 끊을 만한 것인지 나도 이해가 안 갔다. 물론 나의 부주의로
그녀가 분노한 건 맞지만, 이게 그럴 일인가 했다. 남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급했던 행동이었다고 인정한다. 나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사과를
나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상담을 받고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신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어떤 사과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던 그녀의 모습은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사과의 말을 하듯 엄마도 나에게 사과의 말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어떤 사과의 말도 용납이 안 되었다. 그냥 미워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했다. 나를 보아주지 않았고,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고, 엄마는 엄마로서 역할도 잘하지 못했고, 동생의 존재를 나보다 더 좋아했다는 모든 것은 나에게 엄청난 잘못을 한 것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어쩌면 삶이 끝날 때까지. 그게 나의 생각이었다. 미워하는 마음. 그건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이때부터는 나를 돌봐야 했다. 안아 주어야 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했다.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었던 생각을 바꾸는 일은 힘이 든다. 미움도 내가 만들었고, 용서도 내가 해야 했다. 나만 할 수 있었고, 나도 스스로가 변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남은 생을 다르게 살아가고 싶었다. 모든 열쇠는 내가 쥐고, 내 머리로 할 수 있고, 내 안에 뜨거운 것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걸 깨달아야 했다. 나에게 따듯한 손, 나에게 부드러운 미소, 나에게 격려의 말을 던져야 했다. 그리고는 미움의 집을 짓는 에너지로 나의 존재를 돌아보고 그것의 힘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