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을 쌓아두기만 했던 시간들

by Min kyung

2016년에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항암도 힘들어하셨지만 집과 병원을 오가는 길도 아버지에겐 힘들었다. 기력이 떨어지고 아버지는 암과 싸움에서 지쳐갔다.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마음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으나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내가 사춘기에는 아버지가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내가 먼저 마음을 표현하기에도 어려웠다. 그래서 서로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초등 내내 피아노를 치는 딸을 위해 외국에서 피아노 독주, 협주곡 카세트테이프를 사다 주셨다. 이미 없어져 버린 테이프의 제목도 생각나지도 않지만 꽤나 오래 그것들을 들은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당시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혼자 삶을 살아나가는 동안 나는 과거를 곱씹었다. 잘못된 일의 원인과 그 책임을 묻는 물음들은 머리에 계속 돌아다녔다. 도돌이표를 몇 번이나 왕복하는 나만의 드라마는 시간이 날 때, 발단이 되는 생각이 날 때 시작되고, 처음과 끝, 잘못을 한 사람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 정해진 채로 반복되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엄마를 보게 되었다. 대화에서 의견을 수용할 줄 모르고, 타인을 깎아내려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고 다른 사람 탓을 하는 대화를 했다. 원래 엄마에게는 수용이나 존중의 마음이 없다. 즉,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본 적이 없고, 학습할 수도 없었다. 사교관계가 어려웠던 엄마는 항상 집안에서 혼자 생활했고, 그 영향이었는지 치매진단을 받게 된다. 정확한 진단을 받도록 설득하는데 1년이 걸렸다. 겹겹이 쌓인 두려움, 불안의 벽을 낮추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아마 지금도 본인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람을 붙잡고 나의 미움을 해소하려 했다. 엄마를 붙잡고 대화를 해 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옛날 일을 따져 물을 때면 엄마는 잘잘못을 가려 묻는 나의 태도를 싫어했다. 그러면 나는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결론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내가 다 지난 일로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느냐고 되물었다. 전화로 대화를 주로 하기 때문에 진지하고 오랜 대화를 못해서인지, 나는 동생과 엄마의 묶음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매번 내가 오해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들의 사이좋음이 나에게 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그들 사이에 나의 틈은 없었다. 그들이 나를 볼 때 나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남편, 아이, 크게 부족함이 없는 살림(그들이 볼 때), 그들이 보기엔 내가 그만하면 충분하겠다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단지 그것뿐이라고 이해할까? 그 안에 무엇이 더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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