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삶의 연속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은, '넌 도대체 뭐가 문제냐'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으냐'였다. 나도 답을 모르는 질문을 듣는 것이 힘들어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오랜 시간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답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너 자신이 맘에 안 들기 때문이야'
맞다. 다른 데 원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의 환경, 가족도 원인이 아니었다. 단지 나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답은 찾았으나, 해결할 수 없었다. 시작을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해결을 미루어두게 되었다.
남편과 결혼하는 것이 살면서 가장 강하게 나의 고집대로 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살았다. 나는 결혼만큼은 나의 뜻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나름대로 가족이 가진 문제를 판단하여 남편과 결혼하는 것에서 해결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외부환경이 바뀌면 나의 내면도 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이 해외로 발령 난 후,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시댁과 친정을 왕복하는 생활을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몸으로는 독립했지만, 마음으로는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남편을 따라 해외로 나온 후에는 살아왔던 환경과 다른 곳에 적응하고 살아내기에 바빴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남편을 맞추어 살기가 버거웠다. 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남편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어했고, 나는 그걸 같이 겪으면서 힘듦을 나누려 했다. 보통 사람들은 한국인의 위상이 관리자로 인지되어 있는 동남아에서 생활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이들은 잘못했을 때 그냥 미소를 날린다. 진지한 한국인들은 이것을 자신이 조롱당하는 것으로 여긴다. 당해 보면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정확한 단어와 직설적 화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감정이든 느껴지면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머릿속에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 나의 두뇌를 사용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생각이 한 번 시작되면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람에 대한 판단이나 예전에 일어난 일도 다시 생각으로 올라왔다가 그때의 감정을 주고 사라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그것이 옳다고만 고집했다. 나의 기준이 혹시 틀리지는 않을까 점검도 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도 당연히 옳은 것이었다. 내가 만든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놓고, 감정의 처리는 받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에서 다툼과 해결을 반복하였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큰 충격을 준 그 일이 있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