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몰랐네.
내가 속한 모임에서는 요리 시연을 하기도 한다. 간단한 과정으로 요리가 근사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레시피로 하면 한 치의 오차가 없는 맛을 보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요리가 아니다. 한 팀에서 요리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 둘이다. 나와 그녀.
그녀는 월요일, 나도 월요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어쩌다가 월요일이 되어버렸다.
어떤 일이든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고, 물리적인 준비도 필요하다. 즉, 준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뭐든지 번갯불에 콩 볶듯이 하는 방식을 가장 싫어하는 나는 더욱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다. 무슨 일이든. 사실 나의 뇌가 그리 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한다.
집에서 요리과정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집의 청결상태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요리 메뉴를 생각해서 재료를 장 봐야 하고, 다듬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것에 앞서 요리도구들의 상태도 준비를 마쳐야 한다. 나의 방식대로 할 것 같으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메뉴가 결정되어야 그다음 재료구입, 손질 과정을 거친다는 계획이 선다.
하지만 나와 같은 요일에 요리를 하게 되어 있는 그녀에게선 연락이 없다. 그녀와 요일이 겹친다 아니다의 결론도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 나는 그녀의 성향도 모르고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런 와중에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요리시연하기 하루 전날, 즉, 일요일 오후에.
그녀의 집에 오겠다고 한 손님이 없는 것 같다. 그녀의 집에서는 요리시연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요리시연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놀랄 틈도, 당황할 틈도 없었다. 오케이, 그럼 준비하자.
요리는 끝이 났고,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었다. 중간에 다시 분노가 올라왔고,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집에서 요리시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오겠다는 누군가가 꼭 있어야 요리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나를 갸우뚱하게 했다. 오겠다는 누군가가 없는데, 나는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보았다고.
회사에서 상항관계가 있다면, 이 조직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미안하다, 설명은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다. 상하관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꼭 위에서 명령하달을 받아서 지시대로 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방식대로 하면 된다. 그들도 도와주려고 존재하는 것이니까 지시대로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고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밝히면 얼마든 지지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몇 번을 물어도 그녀의 대답은 같았다. 아무도 올 사람이 없어서, 자신의 집에서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고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답을 받았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미꾸라지처럼 나는 물어봤을 뿐이고 답대로 했을 뿐이고를 되풀이하고 있는 그녀의 대답에 분노가 일었다. 이 때도 나의 에고가 반응하고 있었다. 핵심을 정확히 말하라고를 외치고 있는 질문에 교묘히 벗어나는 그녀의 대답이 버튼을 누른 셈이다.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녀가 중심인 생각이 없다. 그녀가 중심이 되는 생각은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결정의 무게는 외부에 있었다. 자신이 내리는 결론 따위는 없었다. A가 이러하면 A가 말하는 대로 결정하고, B가 이러하면 B대로 결정하고. 어떤 결정의 중심에도 그녀 자신이 중심이 되는 결정은 없었다. 한 가지 사례만으로 내린 결론은 아니었고, 다른 일도 이와 유사하다.
성인이고 남는 사람을 나보다 나이가 좀 어리다는 이유로 나무라는 건 아니다. 의아한 부분은 자신이 중심에 없는 채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외부로 결정의 기회를 넘겨버리면 삶은 누구의 것인가. 자신의 생각을 물었을 때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걸 보니 자신의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럼 무엇을 따라 인생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상황에 이끌려 살다 보면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지 않고 살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도 그녀만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 그것까지 내가 다 알 수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