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인간관계에서 바닥을 찍고 올라가는 일 밖엔 없었날을 지나니 셀프 고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고 정리를 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나의 과거도 버렸고, 내면아이도 들여다보았다. 비우고 나니 채울 것이 다시 들어오긴 했다. 그러던 중 가장 큰 수확은 상황을 통찰하는 능력이 생기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자꾸 단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해결 미션을 자꾸 받는 느낌이라 할까.
문제는 언제나 생긴다. 어느 상황에서나 잠재된 갈등은 있다.
남편은 성격이 강한 사람이다.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무겁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고 불안의 정도가 높다. 감사하게도 내가 해야 할 걱정을 그가 해 주고 있고, 불안도 내 몫까지 안고 있는 듯하다.
대신 우리에게도 갈등이라 하면 갈등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에겐 평생을 두고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영어권으로 가서 석사를 마치고 싶다. 적당한 시기는 모르겠고, 그것이 끝나야 내 일이 끝날 것 같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남편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나 보다.
예전에 남편이 먼저 이 나라에 와 있을 때 2년을 떨어져 지냈다. 3개월에 한 번씩 휴가는 나왔지만 2년을 떨어져 지내다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남편은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인데, 나도 같은 강도로 목소리를 내면서 힘든 적이 있다. 실제로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치열하게 했었다. 둘 다 서로 감정을 순화해서 전달하기에 미성숙했고, 남편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이젠 그때 그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가 어떤 것이고 어떤 강도인지 파악이 가능하지만, 그땐 몰랐다. 남편이 모두 다 설명해 주지도 않았고, 혼자 앓고 이겨내려고 했었다. 생소한 나라에서 나도 그땐 회사들이 어떻게 근로자에게 대우해 주는지 몰랐었다.
마음속에 오래 지내던 말을 그냥 맥락 없이 해 보기도 한다. 심각하게 고민만 하다 접기를 백 번 정도 했었다. 그런데 뱉어 보기라도 하는 것은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 나이가 좀 드니 각 잡고 말하는 것보다 뜬끔없이, 맥락 없이 나와지기도 하더라. 그래서 물었다. 우리 한국에 돌아갈 즈음에 1년 정도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안 되겠냐고.
그랬더니 아주 반응 시큰둥하다. 2년 떨어져 있다가도 난리가 났었는데, 다시 떨어져 있으면 그 이후가 더 걱정되어 안 되겠다고 한다. 이때부터 나의 머리는 여러 생각으로 풀가동된다. 내가 제때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용납해 줄 수 없다고 한다니. 1차 실망. (분명 사기다. 결혼당시에도 알고 있었던 나의 바람인데, 그땐 나의 뜻대로 하게 해 주겠노라 해 놓고 이제와 딴 소리)
남편은 아주 요란한 갱년기를 겪었다. 무어라 갖다 붙여도 갱년기라고만 하는 남편의 그 시기는 꽤 오랜 시간을 갔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남자의 갱년기가 그렇게도 요란 법석이고 예민한 시기인 지는 알아서 모셔 드려야 했다. 벌써 잊으셨나. 그대는 갱년기고 나는 그런 게 없을 줄 아는 건가.
아직 내가 원하는 것을 결정해야 할 시간은 아니다. 미리 한 번 던져본 말에 NO라는 대답을 받았다고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그럴 수 있냐고 따져야 할 건 아니지만 마음으로는 나도 그 대답이 맘에 들지는 않는다.
다시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 생각해 본다.
불안하다. 우리가 떨어졌다 함께 살게 된 그 시간에 갈등을 떠 올리기 때문에.
걱정된다. 한국 말고는 좋아하는 나라가 없는 자신의 입장에서 그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붙잡는 중이다.
다시 불안하다. 본인이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 때 내가 성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한 명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앗, 그러면 이별이 필수인데. 가장 가까이 적이 있었나를 의심했다.
다시 생각을 끌어왔다. 한 순간에 파투나는 결혼생활도 많지만, 함께 한 시간을 의리라고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그 사람을, 그가 가정을 위해 희생한 시간들을 존중해 주자. 그리고 그가 가진 불안과 두려움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으로 이해해 보자.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랜 소망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목적이 있고, 꼭 그 길뿐인 것도 내가 정한 것인데. 무엇을 위해 결정을 해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될까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해 봤다. 접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적당한 때에 얘기해 보던지, 상대방도 수용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