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기록
아침에 눈을 뜨면 늘 같은 다짐을 한다.
오늘을 마지막 하루처럼 살아보자고.
운동을 가야지, 카페에 가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사랑하는 부모님께 안부도 물어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운동은 미뤄지고, 카페는 가지 않고,
손에는 어느새 휴대폰이 들려 있다.
폰에서 수 많은 짧은 영상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정신을 차리면 몇 시간이 지나 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올라온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오늘 하루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더 괴롭다.
어쩌면 내 인생 전체가 이런 하루들로 쌓여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될 수 있었던 시간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날들,
그 모든 가능성들을 나는
스스로 흘려보내 온 것은 아닐까.
가끔은 그 생각이 너무 커져서
과거의 기억들마저 전부 같은 색으로 물들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들.
미뤄두었던 계획들.
시작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은 사실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의 삶은 늘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고, 아무 성과도 없는 것 같고,
그저 시간만 흘러가는 것 같은 구간이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아주 가끔,
그 모든 시간이 쌓여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가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인생을 멀리서 보면
마치 꾸준히 잘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수많은 정체의 날들이 숨어 있다.
그날들도 다 인생의 일부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날들.
의욕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던 날들.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밤들.
이상하게도 사람은
지금 마음이 무거울 때 과거까지 같은 색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어.”
하지만 그건 사실이라기보다
지금의 감정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완전히 무의미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서는
이런 후회를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고,
하루를 아쉬워하고,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는 사람들은
이미 그 질문을 할 만큼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쩌면 오늘 같은 하루도
완전히 헛된 날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하루에
나는 내 삶을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어쩌면 인생은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 것보다
가끔 멈춰 서서 그런 질문을 하는 시간으로도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완전히 망가진 날처럼 느껴지더라도
아직 끝난 하루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문자 하나를 보내거나
내일 아침 운동화를 문 앞에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오늘이라는 하루의 마지막 장면은 달라질 수 있다.
인생은 거대한 결심으로 바뀌는 것보다
그런 작은 장면들이 쌓여 바뀌는 경우가 훨씬 많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내 인생이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후회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