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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Jul 20. 2022

1. 나는 의료사회복지사입니다.

선생님만 눈감아 주면 됩니다.

"병원에 간다."


짧고 단순한 문장인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감염의 위기로 병원이라는 곳이 친숙하게 느껴지기 직전까지만해도 병원에 간다는 일은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보통은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만, 나는 병원 갈 일이 잘 없는데, 보험료만 많이 나가는 것 같아. 이런 말을 듣는 일이 자주 있다.

내가 혹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병원에 가게 되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 큰 충격과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이고, 걷잡을 수 없는 불안한 나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사건이 된다.



의료사회복지사는 병원에서 그런 불안과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과 상담을 한다.



병원에 오면, 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주로는 의사와 간호사가 제일 많이 상주한다. 우리는 분주한 그 분들의 모습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 분들 틈에, 의료사회복지사라는 직종이 있다.


하루종일 상담실에 앉아있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인생영화를 듣고 본다.

모두가 다른 표정으로 입장해서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 순간부터 나는 그림을 그린다.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계신지

나는 그들의 기나긴, 고된 삶의 중간에 갑자기 만난 인연으로 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하는 그런 그림들을.


털어놓고보니 자신의 삶이 더 보잘 것 없다며

더 살아뭐하겠냐는 사람에게도

이렇게라도 도움을 받아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사람에게도

나는 들어주고, 지지해주고, 공감해주고 때로는 나아가야 할 방향에 함께 나란히 서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독려한다' 라든지, '심리적 지지' 라든지 하는 너무나도 간결한 단어로

나의 상담을 정리하자니 마음이 시려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나의 고민이 헛되지 않기를 소원해본다.


내가 귀찮게 맞이한 오늘을 또 의미있게 만들어준 사람들

나의 기상에 대한 이유를 마련해준 사람들을 위해 힘을 내보게 된다.


의료사회복지사가 풀어내는 상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오래전 만났던 환자 한 분이 떠올랐다.


"저의 이전 생활에 대해 선생님만 모른척 해주시면 됩니다. 눈감아주세요."


이 분은 실제 아르바이트처럼 유흥업소 도우미를 하면서 비공식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꽤나 발생하던 분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희귀질환 진단을 받게 되면서 평생 치료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말에 다시 이전처럼 일을 할 수없다는 생각에 당장에는 의료비 걱정이 앞섰던 상태였다.


그리고 여전히 갚아나가야 할 부채가 주는 압박감과, 밀린 월세, 이미 몇번이나 더, 더, 더 작은 방으로 이사를 해 짐이 켜켜이 쌓여있는 단칸방이 떠오르고, 돌봐줄 수 있는 탄탄한 가족 지지체계가 없다는 심리적인 불안감이 더해져 만들어진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대뜸 그런 부탁의 한 마디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선생님만 모르는척 해주면 되지 않느냐 하는 말.


우리나라는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사실 복지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그건 맞다.

나머지는 양심의 문제이고, 도의적인 측면에 기대는 부분이라 의례 우리는 상담을 오시는 환자분들이 진실만을 말해주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말이

오후 내내 마음에 무겁게 떠다니던 하루였다.

뭐가 맞는 걸까.


정답은 없겠지만 흥청망청 살아왔던 그의 과거를 마냥 질책하다보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할 걸 알고 있었다.

병들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제서야 간절해질 것이다. 흥청망청 살아왔던 과거를 후회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분의 몫이된다. 


하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부분을 눈감고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찾아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사람의 인생도 다시 세우고, 사회적인 손실도 막으려면 아파서 망가지는 건 막아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몇일 지켜봤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다.


그 환자분이 다시 상담실로 찾아오셨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냥 지원 신청을 취소하는게 좋을 것 같다 하셨다.

지금 잠깐 어렵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눈감아 달라한 것이 영 맘에 걸린 모양이었다.


"떳떳하게 살고 싶어요. 퇴원하면 일을 해서 친구에게 빌린 돈도 차차 갚고, 병원비로 직접 해결하고 싶어요."


하늘이 도와 병원비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웃으며 퇴원하는 그분을 보고, 그리고 감사했다는 그분의 인사를 받고 돌아서며 

내 마음에 단비가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것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방향이라는 개념 자체를 상실한 사람에게 자그마한 조언은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언을 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조언을 했던 나 또한 그 이후에 혼자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한층 성장했던 기억이 있다.

무려 5년여 전의 기억이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어떤 자원을 연결하고, 결과치가 수식으로 도출되어야만 의미있는 상담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날 깊게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주로 그런 일을 한다.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삶이 막막해진 환자나 가족들을 만나고

그 분들이 이러한 위기로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상담하고 지원한다.

나는 그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매일 또 성장하고 있다.

당분간 이런 이야기들을 좀 남겨보려고 한다.


상담실에 앉아 하루에도 수십명씩의 서로 다른 삶을 보며

우리는 어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 생각하면서, 또 이런 나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힘이 되기를 바라보면서. 첫 글은 이렇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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