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여주인공인 줄 알았다.

20대) 28살._3

by 라미

100일의 기적이란 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지만 진짜 애를 낳기 전까진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이 말을 나도 겪었고

나는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진작에 모유수유를 끊고 아이가 집에 온 순간부터 침대를 따로 줘서 분리수면을 했기 때문에 100일이 지나고부턴 적어도 해지고 나서 몇 시간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날은 너무 더워서, 또 어떤 날은 바람이 세게 불어서 외출조차 쉽지 않은 날이 많았지만

그럭저럭 나는 아이 엄마의 삶에 적응해 나갔다.

갓난아기 엄마의 삶은 몸이 많이 고되고, 사람이 좀 그립고, 또 아주 작은 새로움에도 행복함을 느끼는 아주 단조롭고도 잔잔한 삶이었다.


"엄마. 아빠랑 우리 집에 좀 와주면 안 돼?"


아이가 아프면 내가 대처를 잘하지 못할까 봐

양가 부모님은 삼칠일이 지나고 오시도록 했고,

바깥 외출은 100일이 지나고 했다.

이외에도 어지간하면 외부인은 잘 안 만나려고 하며 최대한 안 아플 수 있는 환경을 주고자 했다.

이렇게 하는 게 아이를 건강하게 지키는 일이라 믿으며 참고 버텼는데 친정 엄마를 부를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겨버렸다.


"방광염입니다. 어.. 이건 나이랑 상관없고, 출산 후에 겪는 엄마들이 있어요."


소변을 볼 때마다 아랫배가 사르르 하게 아프더니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그리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의 잔뇨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증상을 검색하니 대충 방광염이란 견적이 나왔는데 제발 제발 아니길 바라며 크렌베리주스도 먹어보고

괜히 아래를 더 깨끗이 씻어보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니 소용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왜? 뭐 심각한 건 아니지?"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야 엄마가 돕지."

"아니.. 그냥 어지러움이 심해서"

"어지럽다고? 아이고 이놈아 너네 엄마가 너 키운다고 골병이 든다 들어."


친정 부모님이지만 차마 방광염이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대충 어지러움이 심해졌다고 둘러대고

그날은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타온 약을 먹을 수 있었다.

문득 든 생각이, '애를 가지고 낳기까지 다 했는데

왜 난 아직도 하의를 내릴 일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였다.

환자를 위해 가림막도 해주고, 진료를 보는 의사나 간호사가 단 1의 사적 감정도 가지지 않을 거란걸 너무나 잘 알지만 내 인생에서 이렇게 하의를 많이 내릴 순간이 또 있을까 싶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K. 나 계속 여기 굳은살이 생겨. 벗겨내면 새 살이 날 줄 알았는데 똑같이 굳은 살만 올라온다?"

"왜 그러지? 내일은 내가 좀 일찍 퇴근할 테니까 피부과 가보자. 굳은살이 좀 커진 거 같기도 하고?"


이번엔 손가락 옆에 자란 굳은살이 걸렸다.

아무리 파내도 굳은살이 보란 듯이 자라는 건지 파낼수록 점점 커질 뿐인 게 마음 한편이 불안하기만 했다.

이번엔 내가 또 뭘 해결을 해야 할까..


"사마귀요?"


이번에 받은 과제는 사마귀였다.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이번에도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간 김에 냉동치료라는 걸 했는데, 상처 부위를 얼려서 그 살을 깎아내면서 새 살을 돋게 하는 원리인데 사마귀가 생기면 잘 낫지 않는다고도 하고 살을 얼리는 액체질소는.. 정말 이를 꽉 깨물어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정말 출산의 고통에 맞먹을 만큼의 고통!


"아니. 왜.. 뭐래? 왜 울어?"


집 가까운 피부과여서 치료를 마치고 걸어가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났던지

여름이 다가오면서 해는 길어졌고

약간 후덥지근한 공기에, 미약하지만 살랑 부는 바람이 너무나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느껴져서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나 서글펐다.


이미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방광염에다 사마귀까지 얻어버렸다.

병원을 나와서 계속 집에만 있었던 탓에 아는 사람도 없는 데다 말할 수 있는 상대는 친정부모님과 K뿐인데.. 이제 좀 어디가 이상하단 얘긴 그만하고 싶었다.

내 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애 기저귀 몇 번 갈았는지랑 어디가 아프단 말 밖에 없어서 너무 재미가 없었다.


"아니.. 이제 사마귀래. 방광염 괜찮은지도 병원 또 가야 하고! 사마귀는 계속 병원 오래! 오지 말랄 때까지!! 쟤를 어디다 맡기고! 나는 계속 병원만 가네 병원만!! 2월부터 지금까지 쭉!"


2월에 출산해서, 외출은 아이 주사 맞을 때와 내 몸이 고장 나서 간 병원이 대부분이었다.

결혼 전엔 아이를 낳고 나면 일도 마음껏 못할 테고 일을 못하니 경제적 사정을 남편한테 의지해야 하는 가장 나약한 시기가 바로 이때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난 이 시기는 가장 인내를 많이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몸이 맛이 간 것도

짜장면을 시켜서 제때 못 먹는 것도

속옷 사이즈가 또 달라져 어깨는 눌리는 것 같고 컵은 남아서 기분이 나쁜 것도

모두 다 인내해야 하는 그 시기.

출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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