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29살.
'000-0000'
돌이 지나면서부터 대충 아이의 생활에 패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일정 시간에 산책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대략 1시간 정도 동네를 돌고 오는데 집에 돌아올 때마다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 전화번호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지만, 아이는 3살까지 엄마가 데리고 있는 게 정서에 좋다고 해서
정말 이를 악물고 아이에게 하루 몇 시간이라도 다른 경험을 주고자 부던한 노력을 했었다.
그냥 집에만 데리고 있는다고 아이한테 마냥 좋진 않을 테니
어떤 날은 전지를 크게 이어서 물감놀이도 하고
어떤 날은 김장매트를 펼쳐서 모래놀이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식재료를 전부 삶아서 진짜 먹을 수 있는 걸로 소꿉놀이도 해보았다.
하지만 조카라도 한 번 봐준 경험이 있다면 알 것이다
아이랑 하나의 놀이로 절대 길게 놀 수 없다는 걸.
길어봐야 30분이고 그 사이에 기저귀에 응가라도 하면 나는 그걸 갈아주고 싶고
저는 더 놀고 싶어서 버둥거리다가 서로 진을 다 빼야 뭔가 상황이 하나라도 정리가 된다.
참을 인을 수억 번 새기다가 터지는 날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말간 눈의 아이에게 바락바락 악을 써대고
또 내가 쓰레기인가 싶어서 울면서 남은 뒷정리를 하기 바쁘다.
그러다 보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 꼭 보이는 어린이집이 어찌나 좋아 보이고 그 전화번호가 금방 외워지던지..
"안녕하세요. 이제 19개월이고요, 입소시키고 싶은데 자리 있을까요?"
보통 아이랑 뭘 하며 놀지 전 날 생각해 두고 준비를 다 하고 자는데
그날따라 아무 준비 없이 잠에 들어버렸다.
나의 내적갈등이 불러온 대참사로 아이랑 보내는 한 시간, 한 시간이 버겁게 느껴지다가 결국 외웠던 번호로 전화를 걸어버렸다.
"나 내일 요 앞에 어린이집에 상담 가. 오전이라도 좀 보냈으면 좋겠어."
"벌써? 그래도 두 돌은 지나고 보내는 게 어떨까.."
"나 더 이상 쟤랑 집에서 못 있어. 하루 종일 보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오전이라도 잠깐 보낸다잖아. 이것도 안돼?"
"알겠어. 그동안 고생했지 그래.. 갔다 와."
다행히 0세 반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방문상담을 예약하고, 그날 저녁 K에게 어린이집 입소를 희망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간 육아를 한다고 우리 집의 경제는 K가 책임질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가정을 돌보고는 있었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게 어찌나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낳으면 우리나라에선 양육수당과 아동수당을 주는데 외벌이 가정엔 그것도 꽤나 큰 도움이다.
그 수당이 있으니 '생활비는 이만큼만 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잘 살아볼게!' 큰 소리를 쳐놨던 터라
그동안 아른 거리던 어린이집에 못 보낸 이유도 있었는데 이 이상은 나에게 한계였다.
남들처럼 아이를 위해 집에 더 데리고 있겠다고 기세 부리지도 못하고
내심, 양육수당이 빠지면 K에게 생활비를 더 달라고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그 찰나에 이 생각까지 하는 내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고 두 돌 타령 하는 K에게 말이 좋게 나가지 않아서 '아차'싶기도 하고
온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는 내가 어쩐지 초라하단 기분도 들었다.
"그럼 어머니. 오늘은 1시간 뒤에 데리러 오시면 됩니다."
내 아이는 문화센터도 가보지 않았고, 밤에 다닌 적도 없었다.
오로지 낮에 엄마와 함께하는 산책 한 시간 정도가 다였고 가끔 친정에서 놀러 오면 그때 타인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가 19개월 만에 또래 친구도 있고, 재미난 동요도 나오고, 넓은 유희실에 장난감도 잔뜩 있는 어린이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도 보지 않고 냅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
"1시간.. 뭐 하지."
*첫날엔 아이의 적응도를 본다고 1시간만 떨어져 있기로 했는데
아이를 낳고 19개월 만에 혼자 1시간을 보내려니 좀 어색하기도 했는데 때마침 강렬한 허기가 느껴져 뭐에 홀린 듯 집 앞 김밥*번지에 들어가 비빔국수를 하나 시켰는데 그때 그 비빔국수 맛은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냥 프랜차이즈 식당의 비빔국수인데 이렇게 시원하고, 달고, 새콤할 수가!!
비빔국수의 맛이 아니라 사실은 자유의 맛인가.. 싶어 혼자 고개를 까딱 까딱이며 정말 즐겁게 먹었다.
1시간이 지나고 약속된 시간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한 번도 울지 않고, 한 번도 앉지 않고 쉴 새 없이 놀았다는 말에 안타까운 마음은 새끼손톱만큼이었고 기쁘기 그지없는 마음만이 가득했다.
"길게 적응기간을 가지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내일은 점심까지 먹고 가볼까요?"
애 엄마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아이의 손 발 열개 모두 정상이라는 말 다음으로 출산 후 들은 말 중에 가장 나를 기쁘게 하는 말이었던 것 같다.
잘하고 있다. 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