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28살._2
"이렇게 절간 같으면 아기 엄마한테도 안 좋은데.. 뭐 좋아하는 거 없어요?"
내가 쓰레기 같단 생각을 하고 나니 이상하게 정신이 바짝 들었다.
단유약으로 수유를 바로 끊고 분유수유에 필요한 용품과 분유를 택해서 조리원을 나오기 전에 분유수유를 시작했다.
내 아기는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 엄마와는 달리, 젖꼭지 거부도 없었고 분유거부도 없는 착한 아기였다.
"그냥 쉬고 싶기도 하고.. 딱히 지금 뭘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럼 책 좋아해요? 내가 읽으려고 빌려 왔는데 읽어볼래요?"
다만 남들 다 말하는 등센서가 있는, 그것도 아주 예민하고 재빠른 등센서는 나를 조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속으로 한 300까지 세면서 거실을 천천히 걸으며 돌아야 겨우 눈꺼풀이 덮이는 아기였고
여기서 침대에 눕히는 것까지 성공하면, 소파에 앉지도 않고 바닥에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다행히 산후도우미님이 나에게 아기를 어떻게 케어하길 원하는지 질문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었고,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권해도 서로 선이 있어야 오히려 편해진다고 꼭 존대를 해주시는 정중한 분이셨다.
그런 산후도우미님이 아기가 아닌 나에게 처음 건넨 질문은 뭘 좋아하는지였다.
아기가 있어서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고..
내가 성인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지는 순간이 바로 신생아와 함께하는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의미가 있나.. 좋아하는 게 있은들 소용이 있나? 싶어서 너무나 무기력했다.
"나 밥 먹고 빨리 씻고 올게."
"다 먹었어? 얼른 씻고 나와."
"잘 자!"
이런 데다 집에서 마주치는 남편은 몇 달 내내 딱 저 세 마디만 할 뿐이었다.
칼 같이 퇴근해서 씻고 밥 먹고 최대한 빨리 나에게
아기를 받으려는 K가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이런 나날이 언제까지 이어지지? 하는 마음에 그냥 천장만 또 바라보다 잠깐 잠에 들고 새벽엔 K와 교대를 하고..
그렇게 아기를 낳고 한 서너 달을 보냈다.
"조심조심.."
아기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날부터, 자가호흡 말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아기가 무사히 크길 바라서 옛날옛적에 들었던 게 생각이 나서 100일 동안은 외출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혼자 데리고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감에 주사 맞는 날 외엔 집에서만 생활했더랬다.
100일 만에 처음으로 사 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외출을 나가려니 뭐에 씐 사람처럼 조심만 그렇게 찾았다.
2월에 세상에 나온 아기가 집 앞 공원에 엄마랑 나온 날은 따뜻한 바람이 살랑 부는 봄이었다.
아기가 그간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외출도 성공적이어서 기쁜 마음에 커피도 한 잔 사 마시는데 때 마침 잠에 들기까지!
"아유~ 아기 너무 귀엽다. 몇 개월이에요?"
"얼마 안 됐어요. 오늘 딱 태어난 지 100일이라 기념 삼아 산책 나왔어요."
"어머 그럼 그간 한 번도 안 나왔어?"
"네.. 친정이랑 시댁이 다 멀어서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애가 아프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 해서요"
"요즘 누가 그래!"
때마침 카페에 사람이 없어서 여사장님과 잠깐 담소도 나누고, 덤으로 주시는 병 음료수도 하나 받았다.
남편과 산후도우미님 외엔 아이를 낳고 오랜만에 타인이랑 대화도 나누니 기분이 더 들뜨는 것 같았다.
"고생했네. 이제 날도 좋으니까 아기랑 잠깐씩 밖에도 나오고 그래요."
100일쯤 되니 300까지 세면 얼추 잠들던 아기가 500까지 세는 날이 늘어갔는데,
신기하게 밖에 나와서는 오히려 깊이 잠들어서 한참을 깨지도 않았다.
집에선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게 제일 큰 편안함이었는데, 밖에 나오니 따뜻한 날씨와
사람이 많이 없는 한가한 공원, 그리고 커피 한잔.. 이 모든 게 다 즐거웠다.
신생아와 함께여서 나는 성인이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줄었다.
그렇지만 신생아와 함께여서 별 것 아닌 것에도 기쁨이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