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28살.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임신 기간도 순조로웠고
출산도 진통을 길게 겪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제왕절개를 생각했으나 당일에 자연분만을 해야 했을 만큼 출산속도가 빨랐고
남들 다 쓴다는 도넛방석도 굳이 안 써도 될 만큼 회복하는 동안 크게 불편함도 없었다.
"지금 이런 기분이라면 못할 게 없을 거 같아!"
열 달을 무사히 버텨내고, 애가 나오는 건지 장기가 나오는 건지 분간이 안 갈 만큼 어마어마한 고통도 이겨낸 후 아이를 낳았을 땐 감동의 눈물보단 너무 기뻤다.
이제 무거운 배 때문에 불편했던 생활이 다 제자리로 돌아가겠구나!
시간이 좀 걸리면 어때 열 달도 버텼는데!
"1박만 입원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애를 낳았는데 2박은 해야 할 거 같아서 늘렸어."
K도 지극정성으로 나를 돌봐줬다.
오로가 묻은 패드도 척척 처리하고
배를 계속 마사지해줘야 빨리 들어간다는 말에 쉬지 않고 배를 만져주기도 했다.
잠자리에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보호자용 작은 침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챙김을 받는다는 건 사람 기분을 정말 붕~ 띄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애를 낳은 지 몇 시간 안 되었지만
몸에 곳곳이 남은 통증보단 기쁨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수유콜은 아마 수시로 갈 거 같아요. 밤에도 받으시겠어요?"
"모유는 좀 도는 거 같아요? 유축해봤어요?"
"모자동 시간은 이때부터니까 꼭 시간 맞춰서 아기 데리러 와주세요."
조리원으로 오자 숨 쉬는 것 빼곤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기를 위해서 선택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조리원은 아이를 낳은 산모가 쉬는 곳이라 생각해서 '아 여기가 내 마지막 휴식이다'라고 여겼지만, 의외로 여기서부터 산모는 쉴 수 없는 것 같다.
"여기 앉으셔서 수유 준비 해주세요. 아기 데려올게요?"
첫 수유콜을 받고 수유실에 가니 쌩 초면인 사람들이 맨가슴을 드러내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수유준비? 어떻게 하란건지.. 나도 일단 옷을 풀어야 하나?
"처음인가 보네요. 우선 손부터 씻어야겠죠?"
"아! 그죠.."
단추를 한 두 개 열었을 때 옆에 있던 다른 산모가 손부터 씻으라고 알려줘서, 앞이 약간 보일 듯 말 듯 한 몰골로 손을 씻고 아기를 기다렸다.
첫 모유수유는 신기함과 경이로움, 아이에 대한 사랑스러움 보단 너무나 낯설었다.
"저.. 밤 9시 이후론 수유콜 안 받을게요. 저는 꼭 모유수유만 하겠다는 입장도 아니고요."
내 아이긴 하지만, 나는 이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낯선 사람 앞에서 가슴을 훤히 드러 낼 일이 있을 수가 없었는데..
이 조그만 아기는 내가 아니면 진짜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두 마음이 섞이면서 내 양심의 가책 마지노선인 저녁 9시까지만 수유콜을 받기로 했다.
"어.. 어.. 저 좀 도와주세요. 속싸개를 아무리 해도 아기가 버둥거리고.. 그러니까 막 풀려요!"
첫 모자동 시간은 그야말로 대 혼란이었다.
정말 무슨 미친 생각인지 속싸개 한 아기도 팔은 좀 자유롭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호기롭게 속싸개는 풀었는데 다시 할 수가 없어서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도와주시는 분을 있는 호들갑을 다 떨며 찾아댔다.
수유와 모자동 그리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엔 마사지와 요가도 하며 내 몸도 회복해야 했고, 언젠간 집으로 돌아가 나 혼자 이 아이의 생사를 책임져야 해서 교육이란 교육도 죄다 들었다.
그랬더니 조리원이지만.. 의외로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깐이랑 9시 이후가 고작이었다.
"짠! 입맛 없다고 해서 초밥 사 왔어. 애 낳고 드디어 날 거 먹네!"
친정 엄마의 엄격한 관리감독에 임신 중엔 가려 먹는 게 많았는데 그중에 익히지 않은 것도 당연히 먹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조리원 생활 고작 이틀 만에 입맛이 뚝 떨어져서 저녁을 건너뛰었더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사들고 왔다.
"왜 안 먹어?"
"먹어도 되나... 수유하는데..."
초밥이라면 그 어떤 장정의 남자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잘 먹는 나인데
하나도 기쁘고 반갑지가 않았다.
아마도 아이가 먹을 모유가 걱정이 되는 마음과 나는 출산 후 아이가 내 몸에서 나갔지만 어쩐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 같단.. 내 상황이
이상하게 풀이 죽게 만들었다.
"있잖아. 애를 낳았을 때만 해도 그렇게 기쁘더니 이제는 내가 애 젖 주는 뭐가 된 거 같아."
"아무래도 이제 엄마니까? 먹는다는 사람도 있었던 거 같은데.. 내가 물어볼게!"
"그렇지. 이제 엄마니까. 남들 다 하는 건데..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쓰레기
이기적인 년
이 두 단어가 딱 떠오르면서 결혼 전부터 결혼 후, 그리고 지금까지 내 모습이 정의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해서 한 선택이어서 책임도 내가 져야 하는데
나는 내가 좋고, 나 편한 게 우선이어서 그렇게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만 했었나
고민하면서도 그냥 흘러가듯 다 내버려 둬서
아이까지 낳고도
애 젖 주는 뭐가 된 것 같단 말이나 내뱉고 있나
나의 운신에 좋은 선택인지 끝없이 생각하면서
저울질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면서도
결국은 흘러가듯 두다가 여기까지 와서 초밥 한 팩에 구질구질한 생각이나 하는 내가,
너무나 혐오스럽고 철딱서니가 없다는 걸 깨달은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