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29살._3
[0월 00일 이 달 결제 예상금액 90만 원]
취업을 해야겠다는 내 결심엔 출산을 하고 나서 부족해진 생활비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K와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맞벌이였고 나의 소득으로 생활을 하고 K의 소득은 저축과 대출을 갚는데 쓰기로 합의를 했었다.
하지만 출산과 함께 돌 까지는 감히 아이를 두고 어딜 나간다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고 자연스레 외벌이가 되었는데
문제는 K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며, 정말 딱 의식주만 해결할 생활비를 나에게 건네었다는 거였다.
"내가 돈을 안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이렇게 나 구직활동해서 연락 많이 오는 거 봤잖아. 대출금은 그렇다 쳐도 저축은 잠깐 중단하고 생활비에 더 몰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동수당도 아직 나오고 학원을 가는 것도 아닌데 생활비를 여기서 더 늘려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작년에 산 애 내복이 이만큼 줄었어. 애가 하루가 다르게 크고, 애 분유만 사는 게 아니라 우리도 밥 해 먹고살아야 하는데 이 돈으론 우리 삼시세끼 계란프라이랑 밥 먹어야 해."
"내가 저녁을 회사에서 먹고 올게."
"양쪽 집 경조사는? 얘는 맨날 집이랑 어린이집만 다녀? 어디 구경시켜 주고, 구경 나가려면 옷도 필요한데 이걸로는 진짜 안돼. 진짜 모자라. 달에 10만 원만이라도 더 올려줘."
"버틸 수 있을 때까지만 버텨보자."
목구멍에 뭐가 콱 걸린 것 마냥 속이 답답했다.
애가 열이라도 나면 어린이집을 쉬어야 하고
맨날 집에서 가만 앉아 책만 읽을 순 없어서 물감도 사보고, 전지도 사야 하는데!
비가 오면 이제 유모차 대신 우비 입고 장화 신고 다녀야 하는데 그건 다 돈 아닌가? 누가 우비 주고 장화 주나?
"와~ 진짜 날씨 덥다. 올해는 더 더울 건가 봐."
"이 정도면 참을만하지. 집에서 느끼는 더위랑 현장에서 느끼는 더위랑 같나?"
연애할 때는 K와 내가 서로 말을 골라하는 조심스러운 성향이어서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K와 결혼을 결심했었더랬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비슷함이 느껴져서 평탄하게 살 줄로만 알았는데
아이를 낳고 서로 볼꼴 못볼꼴 나 보고 나니 마냥 편해졌는지, 아님 K가 나에게 바라는 게 있었던 건지 내 귀엔 자꾸만 나를 긁는 소리를 해대는 것만 같았다.
"오빠~애 좀 잠깐 봐줘. 나 설거지 금방 할게."
"아... 내가 뭐 맨날 쉬는 것도 아니고 주말 잠깐인데, 이제 TV 좀 볼 때 안 됐나?"
"설거지만 하면 돼! 나 설거지하고 자!"
"..."
K장녀가 돈을 못 벌고, 집안의 기둥이자 분위기 메이커인 내 역할을 못하니 자꾸만 예민해지고 작아지는 게 나 스스로도 느껴졌었다.
예전 같았으면 K에게 필요한 선물을 했을 텐데 이젠 선물을 해도 결국은 내 돈이 아니니
최소한의 K돈으로 내 노동력을 왕창 갈아 넣자 싶어서 아침부터 멋들어지게 K의 생일상을 차린 날이었다.
대체로 혼자 잘 노는 아이가 이 날따라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길래 설거지할 동안만 봐달라고 부탁했지만
참 웃기게도 이 날따라 K도 조금 눕고 싶어 했다.
"저리 가서 기다리라고! 이걸 나 아니면 누가 해? 너네 아빠도 싫다 하고 내가 다 해야 하니까 오늘은 네가 기다려!!!"
결국은 애 먼 아이에게 불똥이 튀고 말았다.
화를 꾹 참으며 주방 마무리를 하다가 뭐가 불편한지 자꾸만 보채는 아이에게, K 들으란 듯이 짜증을 쏟아냈다.
"그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한 말인가?"
"뭐 중요해? 내가 너한테 한 말인 게 중요하냐고? 어차피 너는 내 말 들을 생각도 없잖아?"
"야."
"야? 내가 남에 자식 부탁했어? 네 자식 아니야? 설거지 뭐 한 시간해? 그걸 안 보고 핸드폰만 쳐 보다가 뭐? 야?"
"너는 양심이 없냐? 네가 뭐 맨날 그렇게 살림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왜 오늘 유난인데? 누가 생일상 차려달래?"
"... 미친 새끼."
"뭐? 야 너는 제정신인줄 아냐?"
"쓰레기 같은 새끼야. 그딴 말을 지껄여? 내가 왜 차렸는데."
"이렇게 지랄하고 성질부릴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고!!!"
뭔가가 '툭'끊기는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일이었다.
오늘 네 생일인데 나는 내 경제적 능력이 안되니 생일 상을 차려주고 싶다
근데 처음이라 좀 봐달라.
아, 그렇게 부담이 되는 거면 우리 서로 편하게 시켜 먹자. 오늘은 날이니까 배달 좀 해도 된다.
몇 초도 안 걸릴 이 말을 서로 안 해서
있는 대로 날을 세워서 서로 베어내기 바빴다.
내가 나가서 커피 사 먹을 돈 고민하고
K가 야근일 때 애 재우고 못 먹은 밥 한번 맛있는 거 안 먹고 대충 라면으로 때운 그 시간만 속상하고
분하고, 원통했다.
사실 K는 간절기 때 입는 플리스 등판이 다 비치도록 옷도 제대로 안 사 입던 사람인데
이땐 참 서로가 아니라 각자가 안타깝고, 안쓰러웠으며 어린 자식을 낳은 대가로 치른 자유가 사무쳤다.
"아빠. 나 데리러 와줘. 나 이 새끼랑 더 안 살아."
그래서 다시없을 무리수를 던졌다.
지금이야말로 좀 어렵더라도 잘못된 내 선택을 돌이 킬 수 있을 거라고
이 사람과 결혼한 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친정부모님께 한몇 년 신세 지면 내가 얘 하나 건사 못 할 리 없다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고작 생일 상 차린 거 치우다가 눈이 돌아서
친정부모님을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