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30살.
가출사태는 두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처음 일주일은 지내는 환경도 바뀌고 집에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까 좋아했었다.
3주부터는
나가는 곳만 산책을 가게 되고 동네에서 하는 루틴이 비슷해져서인지 낮잠을 죽어라고 안 자던 아이가 낮잠을 오히려 점점 더 길게 자기 시작했다.
한 달이 넘어갔을 땐 그렇게 미루던 미디어를 보여줬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눈을 탁 감고 안 보겠단 의지를 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애 어떡하지.'란 마음이 들었을 때 K에게 미안하단 연락이 왔고, 생활비를 타던 방식에서 월급명세서 공개가 추가되면서 집에를 들어갔다.
"거기 우리 동네 맛집이야~ 힘들 텐데 괜찮겠어?"
집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내가 한 일은
알바를 찾는 거였다.
정규직 일자리를 가기엔 아이가 너무 어리고
일에서 손을 놓은 공백기가 있기 때문에 당장 시작하려니 덜컥 겁부터 났다.
하지만
두 달간의 가출로 내가 얻은 확신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나에게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일이다.'
생활비가 당장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료한 면도 분명 있었다.
늘 듣는 동요, 집-어린이집-놀이터-(가끔) 마트
정해진 하루 동선과 비슷한 일과.
어떤 엄마는 이런 무료함이 갇힌 삶 같다고도 말했고
어떤 엄마는 이런 무료함이 다시 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냥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뭐라도 일을 하면서 오늘 일이 많니, 적니
어떤 사람이 힘들었니 같은
다른 시간이 필요했다.
"어.. 언니라고 부를까요? 이모..?"
처음 지원에선 떨어졌지만, 두 번째 지원에선 붙을 수 있었다.
집 앞에 맛집이라고 소문난 가락국수집 서빙을 하기로 했고 , 11시부터 3시까지 시간도 딱 맞았다!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손님이 붐비는 곳이어서 그런가 시급도 다른 곳 보다 약간 더 많기도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아.. 원하는 대로 불러요. 이모도 좋고 언니도 좋고"
"그럼 언니라고 부를게요. 언니 같아요!"
"하하 고마워요."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고, 함께 일 할 동료는 무려 20살 친구였다.
볼 살에 솜 털 같은 게 있는 것도 같고
온몸에서 나오는 앳되고 밝은 기운이 너무 귀엽게 느껴져서 일을 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들뜨는 기분이 자꾸만 느껴졌다.
"주문 한 번만 더 확인할게요. 00이랑 00 맞으.."
"아 말했잖아요.."
"네. 죄송합니다. 바로 주문 넣을게요!"
들뜨는 나의 기분은 1시간도 채 안돼서 바로 원상복구 될 수 있었다.
맛집인데! 이렇게 손님이 많은데! 어떻게 주문표가 없고 그냥 외울 수 있는 건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으로 주문받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 자연스레 설거지 파트에 서게 돼버렸고..
"아 단무지가 빠졌구나..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보내드릴게요."
배달 준비에서도 실수가 나서 안 그래도 바쁜 가게가 한 3배는 더 바빠지고야 말았다.
움직일 때마다 실수가 일어나는 것 같아서 고개를 들 수 없는 기분이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워서 미안하기만 했다.
"미안해.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천천히 해요. 천천히."
게다가 사장님이 나와 나이차이가 얼마 안나는 젊은 분이셔서 차마 나에게 뭐라 못하는 불편함이 느껴져 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마음은 무거운데 다리는 왜 이리 아픈 건지..
나 좋자고, 나 살자고 시작한 일이 엄한 가게 하나 잡는 건 아닌가 정말 별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00이 엄마. 오늘 알바 간다며! 어땠어?"
"오랜만에 일하려고 하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대단하다. 어떻게 알바 갈 생각을 해?"
"소소하게 벌어볼까 해서 갔는데, 소소하게 벌기 전에 뭐 하나 물어주게 생겼어요. 너무 사고를 많이 쳐서.."
친하게 지내던 동네 엄마와 아이를 하원시키고 놀이터에서 잠깐 얘기를 나눈다는 게
우리 아이 좋으라고 1시간이나 놀아버리고
늘 그렇듯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었다.
"어? 오늘 일찍 퇴근했네?"
"응. 팀장님 회식 가신대서 일찍 왔지. 알바 어땠어?"
우연찮게 마주친 K가 자연스럽게 아이도 받아 들고 유모차도 밀어주며 알바 후일담을 기대하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상하게 눈가가 약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뭐.. 울어?"
"오빠.. 애보고 돈도 벌어온다고 진짜 힘들었지.."
"뭐야. 오늘 엄청 힘들었나 보네."
"진짜.."
출산 후 근 2년 만의 출근으로
결혼 후 좋은 마음만큼 미운마음도 들었던 K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래.. 나만큼 너도 나름 고됐을 거야.
그러다 문득
아, 이래서 일을 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까지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