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스스로를 급한 성격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도 그런 편이다.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의연하고 싶은데, 상황이 그러면 그럴수록 더 빨리 해결해버리려고 하고, 결과적으로 아쉬워 하거나 후회한 적이 많다. <사기>에 유명한 ‘와신상담’의 주인공, 월왕 구천을 보면, 그는 단순히 복수의 칼날만을 간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긴장되고 두려운 상황에서 '조급하게' 내린 자신의 결정으로 실패했던 자신의 치욕을 떠올리며, 아주 독하게 자신을 변화시킨 인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와신상담의 방법으로 어떻게 변했을까?
<사기>에 구천의 월나라는 여러 제후국 중에서 가장 남쪽 변방에 위치하고 있어 오랑캐로 취급받던 작은 나라이며, 대체로 그렇듯, 위쪽에 인접하고 있는 오나라와는 원수지간이다. 그러다 오나라 왕 합려가 월나라와 싸우다 죽자, 오나라 왕 합려는 그의 아들 부차에게 ‘월나라를 경계하라’는 유연을 남기고 죽는다. 이에 당연히 오나라가 복수해 공격해 올 것이 '두려웠던' 월나라 왕 구천은 차라리 오나라를 먼저 공격하고 싶었다.이때 신하 범려는 아직 열세인 월나라가 먼저 공격하는 것은 최선책이 아니라며 월왕을 설득했다. 하지만 월왕 구천은 과감하게 공격을 단행했다.
역시나 열세인 월나라는 오나라에 필패했다. 그래서 월왕 구천은 회계산에 포위당하고, 오나라 왕에게 신하라 고 자신을 낮추고 치욕을 겪었다. 그리고 신하 범려를 볼모로 오나라에 보내면서 겨우 회계산에서 풀려나 월나라로 돌아온 월왕 구천은 자신의 ‘조급함’으로 월나라와 자신의 목숨 모두를 잃을뻔한 그 굴욕적인 일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늘 쓸개를 바라보며, 또 맛보며 ‘와신상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 후로 월왕은 자신을 더욱 낮추고 백성과 수고로움을 함께하는 어진 왕이 되어 나라의 내실을 다졌다. 그리고 월나라가 점차 안정이 되자, 월왕은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다시 공격하고자 했다. 하지만 신하 문종은 당장 치는 것보다 오나라가 교만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제안했다. 월왕 구천은 따른다. 그리고 몇 년을 기다린다.
그리고 형세의 변화, 즉 기회가 온다. 제나라가 작은 노나라를 치려하자, 위급해진 노나라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오나라로 왔다. 자공은 뛰어난 말재주로 오나라의 '교만함'을 부추기자, 오나라는 지금껏 치려고 벼르던 월나라가 아닌, 대국 제나라를 공격하기로 하고, 놀랍게도 오나라가 승리하고 오나라는 더욱 교만해졌다. 그러자 제나라와 싸우는 것을 극구 반대했던 오나라의 신하 오자서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오나라는 더욱 간신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 때다 싶은 마음에 월왕 구천은 공격하고자 하여, 오나라에서 볼모로 있다 돌아온 범려를 부른다. 하지만 범려는 아직 때가 아님을 말한다. 그러자 월왕 구천은 또 기다린다.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다 춘추시대 패자가 된 오나라 부차가 득의양양하게 다른 제후들과 회맹을 하려고 북쪽으로 올라가고 오나라 수도를 비우게 되었다. 이때를 기다리던 월왕 구천은 책사 범려를 다시 불러 물었다. 그러자 범려는 이제는 동의했다. 그러자 월왕은 오나라를 공격했고, 전쟁에서 지친 오나라 군사는 월나라의 정예군대의 공격에 쉽게 패해버렸다. 위급해진 부차는 구천에게 강화를 청했고 그 후에 몇 년간의 싸우다 오나라 부차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해서 월왕 구천은 드디어 오나라를 멸했고, 춘추시대 다섯 번째 패자가 된 것이다.
와신으로 춘추오패가 된 월왕 구천
아래 노자의 도덕경에서 이르는 이치처럼, 월왕 구천은 '조급함'으로 왕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와신상담의 방법으로 자신을 단련했다. 그리고 그는 조급함이 아닌 '고요함'으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