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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수 Aug 24. 2022

용기있는 사람이 되는 법_자고능용(慈故能勇)

완벽을 실행한 인상여 이야기


살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인생의 많은 것을 받쳐서라도 무엇인가를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요즘 나는 계속 고민만 하고 용기 있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왜 그럴까? 흔히 말하듯 나이가 들어 그런 걸까? 신중해져서 그렇다고들 쉽게 말하곤 하는데 정말 그럴까? 용기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젊다고 생기는 거라면 ‘용기’가 아니라 ‘패기’ 아닐까? 이런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사마천이 <사기열전>에서 ‘용기 있는 사람’으로 소개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름도 인상적인 인상여라는 사람이다. 그는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사람으로, 당시 신흥 강국인 진나라의 무리한 요구에도 ‘용기 있게’ 대처해서 조나라를 전쟁의 위험에서 구한 인물이다.    

화씨벽

구체적으로 조나라가 진나라와 관계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화씨벽이라는 보옥과 관련된 사건이다. 당시에 이 화씨벽을 손에 넣으면 그 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라고 사람들은 유행처럼 믿었다 한다. 그러다 어찌하여 조나라가 그것을 가지게 되었는데, 천하 제패를 욕심내던 진나라 왕은 조나라에게 그 보옥을 주면 진나라의 성 15개를 주겠다며 요구해 왔다. 하지만 조나라 입장에서는 진나라를 믿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진나라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보복을 해 쳐들어올 게 뻔해 난감해 했다. 그러던 차에 지혜로운 신하였던 인상여가 나섰다.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기에 그들의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나라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어기면 잘못은 진나라에 있는 것이기에
조나라는 그 책임을 묻는 우위의 입장을 취할 수 있기에,
화씨벽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상여는 나서서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 왕에게 갔다. 그리고 화씨벽을 전달하였지만, 역시나 오만한 진나라는 조나라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예는 갖추지 않고 단지 보옥을 손에 넣고 기뻐하였다. 그러자 인상여는 단호하게 행동했다. 일단 왕에게 보옥에 작은 흠이 하나 있어 보여주겠다며 다시 건네받고는, 재빠르게 화씨벽을 머리 위로 들고, 기둥 쪽에 기대며 엄청나게 화를 내며 말했다.     


진나라는 자신의 강대함을 믿고 조나라를 희롱했으며,
만약 진정 진나라가 조나라에 주기로 한 성을 주지 않으면,
나는 이 보옥을 기둥에 깨트려 버리고 나의 머리통도 박고 죽겠다.


같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렇듯 용기 있을 수 있을까. 약소국의 신하가 적지에 들어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이처럼 당당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대단하다. 그러자 진나라 왕도 그의 기개에 놀랐던지 그의 요구를 일단 들어주는 척 한다. 그러자 예상했던 인상여도 자신의 사인을 시켜 몰래 화씨벽을 품에 숨겨 일단 조나라로 돌아가게 조치한다. 이를 알고 화가 난 진나라 왕과 신하들은 인상여를 죽여 봤자, 화씨벽을 얻을 수도 없고, 조나라와 관계에서 자신들이 우스워질 것이라 생각하여, 결국은 인상여를 무사히 조나라로 돌려보낸다. 이것이 "완벽귀조(完璧歸趙)"이며, 우리 흔히 쓰는 '완벽하다'의 '완벽(完璧)'의 어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용기 있는 인상여가 정작 자신의 나라로 돌아와서는 자신을 견제하던 염파 장군의 눈치를 보고 슬슬 피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인상여를 따르는 부하들이 실망하여 그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들에게 물었다.      

염파 장군과 진나라 왕 중에 누가 더 무서운가?
 내가 염파 장군을 조심한 이유는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위태로운 나라에서 신하끼리 싸운다면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그러자 인상여를 의식하던 염파 장군도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고 인상여의 대문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고 한다. 진나라 왕 앞에서도 도리에 맞게 할 말 다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염파 장군의 눈치를 보고 피한 까닭은, 자국의 위태로운 상황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소국인 자신의 나라가 강대국에 휘둘려 전쟁으로 피폐되고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인상여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 마음을 한마디로 한다면 ‘()’, '자애로움',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내 가족, 이웃,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노자 도덕경에 “자고능용(慈故能勇)”이라는 구절이 있다.


자고능용 검고능광 불감위천하선고능성기장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爲天下先故能成器長)
 
“자애로워야 용기 있을 수 있으며, 검약해야 베풀 수 있으며, 감히 천하에 나서려하지 않아야 리더가 될 수 있다.”
                                                                                                        - 도덕경 67장 -     

나는 깨닫는다. 살면서 무엇인가를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내 마음에 그것에 대한 자(慈), 사랑이 있는가?
능히 용기 있을 만큼 그 사랑이 큰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비로소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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