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호랑이의 해이다. 명리학적으로 임인년은 봄을 시작하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펼쳐지는 해이다. 겨우내 땅 속에 있다 봄이 되자 땅을 뚫고 올라오는 강한 새싹의 힘을 호랑이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호랑이는 평소 조용하지만 자기 판단이 서면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하는 동물이다. 새해에는 우리도 호랑이 같이 강한 기운을 낼 수 있을까.
한무제 시대에 급암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왕 앞에서도 늘 소신 있고 당당하게 직언하는 신하로 유명하다. 그래서 카리스마 강한 무제도 다른 신하들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그가 알현을 하러 올 때면 자신의 흐트러진 관을 고쳐 매기 위해 몸을 숨길 정도였다. 그렇기에 왕도 그를 나라를 지키는 신하라는 의미의 ‘사직지신’이라 칭했으며, 그는 직언을 하면서도 자신의 명을 다 살아 냈다. 그리고 그는 흉노 정벌로 당대를 호령하던 당시 위청 장군 앞에서도, 당시 왕의 외척 실세인 승상 전분 앞에서도, 다른 신하들은 아첨하기 바빴지만, 급암만은 더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왕이나 다른 실세, 그 누구 앞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늘 당당하고 강한 기품을 풍기는 사람이였다.
급암은 대대로 관직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관리로 발탁되었으며, 황제 노자 사상을 공부했다. 당시 한나라는 '문경지치'라 일컬어지는 안정된 시기를 지나, 한무제가 왕이 되면서 점차 흉노 정벌을 통해서 세력을 과시하고 영토를 확대해 나가려던 시기였다. 이때 <사기>를 쓴 사마천은 무제 앞에서 흉노 원정 중에 달아난 이광장군을 두둔하자 못마땅한 무제는 사마천에게 사형을 내렸고, 사마천은 사기 집필이라는 자신의 소명을 위해 궁형을 받고 겨우 살아났다.
이 시기에 무제는 급암을 월나라 인근 지역의 분쟁을 조사를 위해 파견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그는 지방에 백성들이 수해로 인해 궁핍한 것을 보고는 왕의 명령 없이 지방의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한다. 그는 복잡한 법 절차를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백성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제는 법을 어긴 것에 대해 죄를 물어 급암을 좌천시킨다.
지방 군수로 좌천되어 내려간 급암은 그곳에서도 관리로서 큰일만 챙기고 사소한 일은 크게 따지지 않는 정치를 하자 그 지역이 편안해졌다. 사실, 급암은 황제, 노자 사상에 따라 청정한 정치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그는 무위(無爲)라는 큰 원칙에 따라 문서나 법령을 복잡하게 하지 않았고, 행실은 의리와 지조가 있고 가식 없고 깔끔했다.
이런 급암이 가장 싫어하며 비판한 인물이 당시 장탕이라는 다른 신하이다. 그는 법의 적용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자로, 왕의 눈치를 보며, 법을 왕의 입맛대로 자주 바꾸고, 그것을 가혹하게 적용했다. 하지만 급암은 법률을 많이 바꾸고 가혹하게 적용하면 할수록, 백성들은 더욱 살기 어려워지고 도둑이 늘어날 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무제는 자신의 입맛대로 법을 시행하는 장탕과 예의로 자신을 따르는 공손홍 같은 신하들을 멀리할 수 없었다. 그러자 급암은 무제에게 대놓고 세게 말한다. 참 강단있다.
“왕이시여, 당신은 겉으로만 인의를 말하지만, 속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시 무제는 강성해진 한나라의 힘을 과시하고 더욱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 막대한 인력을 동원하고 세금을 걷어가며 흉노 정벌과 서역 원정을 단행했다. 또 이런 사업들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많은 무제는 유학자들을 관리로 대거 등용하며, 군신 간의 인의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실제로는 ‘왕의 욕망’을 위한 것이지, ‘백성을 위한 왕으로서 도리, 본질’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무제 시대에 백성들의 생활은 점차 피폐해져 갔고, 나라의 곳간은 점차 비어갔고, 결국 소금과 철을 전매하면서까지 세금을 늘려 정벌사업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래서 급암은 왕에게 더욱 강하게 말해야 했던 것이다.
아래는 노자 도덕경 한 구절이다.
허기심, 실기복(虛其心, 實其腹) 약기지, 강기골(弱其志 强其骨)
"그 마음(욕심)을 비우고, 그 배(본질)를 채우라” "그 뜻(생각)을 약하게 하고, 그 뼈(본질)를 강하게 하라”
왕은 자신의 '욕심과 생각'을 버리고, '백성을 보살펴야' 한다. 그것이 '본질'이다.
하지만 무제는 더 크게 과시하고 픈 자신의 욕망과 생각 때문에 왕의 본질인 백성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그래서 한나라는 점차 내리막길을 가게 됐던 것이다.
신하는 '출세, 재물에 대한 욕심과 생각'을 버리고, '왕을 바르게 돕는 것'이 신하로서의 '본질'이다.
그래서 급암은 다른 아첨하는 신하들과 다르게, '사심 없이', '가식없이' 신하로서 왕을 위해, 백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언을 했다. 그의 자신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 그를 '강하고 당당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리라.
그렇다. 호랑이 같이 강한 기운은 "허기심, 실기복", 즉 "욕심을 버리고, 본질에 충실한" 삶의 자세를 통해 길러지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