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그릇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일반적으로 그릇 안에 무엇인가 가득하다면 다른 것을 담을 수 없다. 마음이라는 그릇 안에 욕심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다른 감정들을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도, 희망도, 배려도, 친절도, 슬픔도, 우리가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다른 좋은, 진솔한 감정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래서 그 욕심을 덜어내 마음의 자리를 비워야 다른 감정들이 자리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도덕경에서 “도충이용지 혹불영(道沖而用之 或不盈)”이라는 구절이 있다. “도는 비어 있어 쓰이며, 아마도 채울 수 없다”라는 뜻이다. ‘도(道)다운 마음도 비어 있어야 쓰인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혹불영’ 즉,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기에 채우려하지 않는 게 답 아닐까. 사실 우리의 마음을 무엇으로든 가득 채우면 어떨까. 욕심으로 가득차면 결코 행복하지 않다. 또 행복으로 가득차면 좋을 것 같지만 곧 불안해진다. 슬픔은 물론 가득차면 많이 불행하다. 이러니 무슨 감정이든 내 마음에 그것으로 가득차면 불행하다. 그래서 채우려 해도 다 채워지지 않고,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해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의 경지에 이르는 마음은 덜어내어야지 더 채우려하면 않되는 것이다.
그런 욕심을 덜어낸 빈 마음으로 살면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할 수 있다고 도덕경은 말한다. 즉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하고, 얽힘을 풀고, 강한 빛을 조화롭게 하며, 튀어나온 티끌을 고르게 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이런 경지를 느끼게 하는 인물이 있다.
한경제에서 한무제 시대에 호는 장유이며 양나라 출신인 한안국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두태후의 총애를 많이 받았던 효경제의 막내 동생인 양나라 효왕의 중대부 신하이다. 대체로 막내아들이 버릇없고 철없는 것처럼 양효왕 또한 두태후의 막내아들로 마치 자신이 천자인양 오만하고 사치스런 모습을 자주 보이자, 효경제는 동생인 양효왕을 못마땅해 했고, 두태후도 이를 자주 문책하고, 한마디로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에 양나라 사신으로 조정에 간 한안국은 책망하는 두태후가 만나주지 않자, 효경제의 누이인 대장공주를 대신 만나, 양효왕의 철없는 행동들을 이해시키고 용서를 구하는 말을 ‘울면서’까지 전했다.
그는 말한다.
“양효왕은 아버지와 형이 황제이기에 때문에 자라서면서 본 것이 다르다. 그래서 다른 제후들보다 더 과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황실의 권위를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며, 오초의 난 때 양나라가 기여한 점을 얘기하며 황실 가족으로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니 부족해도 어미와 형으로서 용서해 달라”라고 진심을 담아 잘 설명한다.
이에 효경제는 그의 말에 깊게 뉘우치고 형제가 서로 돕지 못하여 태후께 걱정을 끼쳤다며 두태후에게 사죄하였다 한다. 한안국은 이 일로 조정의 신뢰를 얻고 후한 상도 받았다. 이렇듯 자신이 모시는 왕과 조정의 평화를 위해 ‘갈등을 해결하는’ 해결사의 일을 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로운 신하의 모습이며 ‘해기분(解其分)’의 모습이다. 어떻게 그는 ‘해기분’의 경지에 다다라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사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안위와 출세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불화 원인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신하로서 최선을 다하는 의로운 마음 때문 아닐까. 그의 마음속에 욕심보다 의로움에 대한 열정과 진심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의로움을 드러낼 수 있게 하고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흉노가 화친을 요청해왔고, 조정은 이를 논의를 하게 되는데, 당시 연나라 사람으로 오래 군사를 맡아오던 왕희라는 신하는 한나라를 무시하는 흉노에게 위세를 보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안국은 선왕들이 아무리 분해도 흉노와 화친한 이유는 그들을 정벌해봤자 얻는 게 적었고 다스리기 힘들었기에 실리적으로 판단해서 화친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안정기에 들어선 한나라의 무제는 정벌 쪽에 마음이 가있었고 결국 정벌을 위한 왕희의 ‘유인책’을 선택했다. 그러나 왕희의 유인책을 알아차린 흉노는 도망갔고 왕희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죽임을 당했다. 결국 이 일로 옳은 판단력과 직언을 했던 한안국은 어사대부로 승진하였고 더욱 유명하게 되었고, 무제는 한안국을 다음 승상으로 임명하려 하려 했다.
드디어 한안국은 지방 신하에서 조정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마침 마차에서 떨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치는 부상을 당하게 되고 다리를 절게 되었고, 무제는 그런 그를 승상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는 아쉽고 실망스런 마음이 컷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시 상황이 흉노와 다시 전쟁을 벌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제의 명을 받아 그는 변경지역에 도위로 임명받아 전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문사이고, 군자인 한안국이 별로 성과를 못 내자 무제는 그를 책망하고 지방 호군으로 좌천시켰다. 이에 그는 ‘뜨는 별인 위청 대장군’과 달리 흡사 ‘지는 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울적한 마음이 커지고’ 결국 한안국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라고 역사는 기록되어 있다.
한서의 반고와 사기의 사마천 모두 한안국, 그에 대해 "장자이며, 군자였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추락하여 슬픈 운명"이라 평했다.
그는 의로운 언변과 용기 있는 직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그로 인해 명성을 얻었던 그이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인 승상에 운이 다르지 않아 못 오르게 되었고, 자신의 역량이 펼쳐지지 않자 그는 좌절감과 슬픔이 마음에 가득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역시 명성이 커지자 처음처럼 빈 마음으로 임하지 못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결국 슬픈 운명으로 남았다.
마음이란 비어 있어야 제대로 쓰이며, 채우려할 수록 채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 마음이 비어 그윽해질 때 비로소 제대로 쓰일 수 있음을 ‘한장유의 슬픈 운명’을 통해 배운다.
도충이용지 혹불영 (道冲而用之 或不盈) 도는 비어있어 그 쓰임이 있고, 가득차지 않는 듯하다.
연혜 사만물지종 (淵兮 似萬物之宗) 그윽하도다. 만물의 으뜸인 듯하다.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힘을 풀며, 그 빛을 조화롭게 하며, 그 티끌을 고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