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고민, 다른 선택 굴원, 가의, 노자 이야기
공부를 하다보면 외롭다. 30-40대가 되어 공부를 하면 더 외롭다. 왜냐면 주변을 둘러보라. 주변의 사람들은 온통 부동산에, 주식에 여기 저기 투자를 하며 돈을 벌고, 또 화려하게 먹고 놀러 다니며 쓰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 홀로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심정이 노자가 도덕경에서 표현한 '아독민민(我獨悶悶)', 즉 나만 홀로 외로운 그 마음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왜냐면 살고 싶기 때문이다. '제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경쟁을 위한 공부, 시간 지나면 쓸모없어지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제대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 대학에서, MBA에서 힘들게 해왔던 공부는 과거일 뿐이다. 그래서 노자는 '절학무우(絶學無憂)'라고 말한 것일까. 그런 공부는 이제 그만하고 너의 근심을 없애는 그런 공부를 하라고 말이다.
나는 <<사기>>의 <굴원가생열전>을 읽었다. 굴원이라는 사람은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회왕의 신하로서 초나라를 위해 여러 간언을 했지만, 어리석은 초왕은 안타깝게도 굴원을 후진 장사 지역으로 내쫓았다. 이에 굴원은 망국이 되어가는 나라의 신하로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장사 지역 강가에 앉아 '굴원부(屈原賦)‘라는 글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만.. 돌을 껴 앉고 멱라수 강에 몸을 던져 죽어버렸다. 굴원의 선택은 한탄과 죽음이였다.
그리고 나서 훗날, 비슷한 상황이 된 한나라의 신하 가의라는 이가 그 지역을 지나다가 "조굴원부(弔屈原賦)"라는 명문을 지어 그를 애상했다. 그 또한 한나라 문제 때 20세 어린 나이에 박사로 임명되어 나라의 기틀을 강하게 하기 위해 <치안책(治安策)>과 같은 정책을 제안했지만, 보수 세력의 반대와 시기에 부딪치자, 효문제 왕은 개혁적인 가의를 일단 변방지역의 장사왕의 태부로 보낸 것이다. 그러자 가의는 장사지역으로 부임해 가면서 상수 강가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강가에 투신한 과거 시대 굴원에 빗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조굴원부(弔屈原賦)>라는 글을 지어 유명해졌다.
나는 예상했다. 가의도 굴원처럼 비관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후 그가 지은 <복조부(鵩鳥賦)>라는 글을 보면 가의는 또 달랐다. 그는 어느날 우연히 집안에 날아 들어온 부엉이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묻는 시를 짓는다. 복(鵩)은 부엉이를 뜻한다. 이것이 <복조부(鵩鳥賦)>라는 글인데, 이 글 마지막에 가의는 읊는다. “삶과 죽음은 하나요, 생에 집착하지 않으니 자신을 보존할 수 있고, 공허의 본성으로 속세에 자유롭도다“라고 말이다.
얼마 후, 효문제는 가의를 다시 조정으로 부른다. 가의는 다시 신하로서 소신 있게 여러 안을 올리며 절절히 왕에게 전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효문제는 그의 가장 아끼는 막내아들의 태부로 가의를 임명하며 그를 신뢰하였다. 하지만 가의는 자신이 모시는 어린 왕이 사고로 죽자 너무 괴로워하다가, 그만 그도 33세 나이에 죽고 만다. 가의의 선택은 달랐다. 그의 선택은 살아서 자신의 소신을 다하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연함이었다.
굴원과 가생은 모두 자신의 학문과 소신이 그 시대에 관철되지 못해 좌절했다. 하지만 그 둘의 결론은 달랐다. 굴원은 희망 없는 자신의 나라와 어쩌지 못하는 자신에 절망했지만, 노자를 공부했던 가의는 복조부(鵩鳥賦)에서 보이 듯 초연한 자세로 다시 자신의 소임에 임하다 일찍 생을 마감했다.
도덕경 20장에서도 나는 노자의 외로움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속인찰찰, 아독민민(俗人昭昭 我獨昏昏)', 즉 왜 자신은 다른 사람처럼 봄날의 등대에 올라 희희낙낙하지 못하고, 홀로 답답하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은 '아독이어인이귀식모(我獨異於人而貴食母)'라고 노자는 힘주어 말한다. 그는 이 '세상의 이치, 그 거대한 본질을 귀이 여기기고 있다'라고 말한다. 알 듯 모를 듯하지만 나는 노자의 힘, 그의 긍정을 느낀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당시에 도를 잃고 무너져내려가는 주나라의 대학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을 것이다. 거센 역사의 흐름을 혼자 거스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탄으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고, 소신껏 살기도 어려울 것 같고, 과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노자는 주나라를 떠나기로 한다. 그러다 가는 길에 함곡관 관문의 한 관리의 요청으로 <도덕경>을 써내려간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이것이 그의 선택이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탁월했다. 왜냐면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도덕경>이라는 책으로 노자는 우리 곁에서 살아 있고, 그가 쓴 <도덕경>은 동양고전 중 가장 많이 전 세계에 번역되어 읽히는 경전으로 우리 삶의 빛을 주기 때문이다.
절학무우(絶學無憂)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중인희희 여춘등대(衆人熙熙, 如春登臺)
뭇사람들은 희희낙락하고, 봄날의 등대에 오르는 듯하다.
루루혜 약무소귀(僂僂兮, 若無所歸)
지치는구나,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네.
속인소소 아독혼혼(俗人昭昭, 我獨昏昏)
뭇사람들은 밝은데, 나만 홀로 어둡구나.
속인찰찰 아독민민(俗人察察, 我獨悶悶)
뭇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만 홀로 답답하구나.
아독이어인이귀식모(我獨異於人而貴食母)
나 홀로 뭇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만물을 먹이고 살리는 어미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 도덕경 20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