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 5산 종주
두 번째 속세로 내려왔다가 또다시 산으로
여기서 도보로 한 시간 거리를 이동하여야 한다. 수락산 입구 동막골 들머리까지의 구간이다. 북한산에서 시작하여 불암산을 종점으로 하는 5 산 종주 중 가장 힘들고 가장 갈등하게 하는 곳이 이 지점이다. 체력이 바닥을 보이고 눈꺼풀이 무거울 즈음 세 산을 타고 도심으로 하산했다가 또 올라가려니 망설임이 없을 수 없다. 지난 종주 때도 그랬었다. 뜨끈한 사우나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때처럼 똑같은 마음을 담아 속으로 기도를 올려본다.
“신이시여! 끝까지 가고 못 가고의 여부는 신께 맡기겠나이다. 다만, 제 의지가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힘을 주소서!”
그리고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린다.
“아직 힘 남았지?”
두 사람이 대답 대신 배낭을 짊어진다. 택시를 탈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걸어서 완주하기로 한 애초 계획대로 이행한다.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가 지금 오르는 수락산행을 더욱 고되게 할 것 같다. 더구나 동막골에서 수락산 주봉까지는 그늘이 거의 없이 기복 심한 능선의 연속이다.
뙤약볕 등로를 치고 오르는 것도 고되거니와 도정봉과 홈통바위의 슬랩 암벽, 주봉을 찍고 도솔봉으로 내려서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힘든 걸 알고 시작했던 거였고 지금까지도 무척 힘들었다.
계단을 올라 도로를 건너면 동막골 수락산 진입로가 나온다. 거긴 또 다른 루비콘강이다. 저걸 건너려니 로마로 진격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된 느낌이다.
“왔노라, 보았노라, 정복했노라.veni, vidi, vici.”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평정하고 카이사르가 개선했을 때, 저 유명한 3V의 표현이 나왔었다. 그처럼 나머지 두 산, 수락과 불암을 정복하고 두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승리감을 만끽할지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결국, 강을 건너서 배를 돌려보내고 나니 그나마 갈등은 사라졌다. 역시 도정봉 긴 계단을 오르는 게 버겁다. 130m의 계단이 천릿길처럼 느껴진다. 도정봉에 올랐을 때는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다.
“밤길에 저길 다 지나왔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군.”
북한산부터 오른쪽으로 도봉산과 사패산, 지나온 북한산 국립공원 내의 세 산이 아득하게 펼쳐있다. 힘들게 먼 길을 와서 돌아보는 그 산은 마치 지난 삶을 돌아보는 기분이다. 오늘처럼 긴 여정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가야 할 길은 더 멀게 느껴진다. 올려다본 수락산이 유난히 높고 마루금도 아주 길어 보인다. 도정봉의 태극기는 조금도 펄럭이지 않는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가 야속하다.
“아까 백운대에서의 바람이 그리워.”
한기를 느껴서 얼른 내려왔는데 지금 그 바람을 맞고 싶은 것이다. 장암역으로 하산하는 석림사 방향 내리막길을 그냥 지나치는 걸음걸이가 무겁다 보니 가야 할 주봉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수락산이 이렇게나 먼 길이었다니.”
가파르고 미끄러운 바윗길, 숱하게 나타나며 시험 들게 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데가 산 아니던가. 매번 그런 데라는 걸 알고 왔지 않은가.
“아무리 멀어도 이젠 기어서라도 가야지.”
마주쳐 피할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바위벽에 손바닥 문질러가며 기어올라 새롭게 길 내야지. 넘어지지 않고 산 오르내리길 바라는가. 자빠진 발길마다 교훈으로, 엎어진 흔적마다 지혜로 되새길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그렇게 해야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끝을 보는 데가 산 아니겠어?”
깨지고 멍들면서 예까지 온 거 아니었던가. 산이나 인생이나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얼음물 한 모금에 씻기는 게 갈증 아니던가. 지나고 나면 죄다 한바탕 봄 꿈같은 게 사는 일 아니었던가.
전신에 힘이 빠져 밧줄을 놓칠까 싶어 우회로로 빠지려다가 홈통바위(기차바위)와 한판 맞붙어보기로 한다. 숱하게 오르내렸던 홈통바위의 기다란 밧줄이 오늘은 더욱 굵고 무겁게 느껴진다.
다리보다 팔의 힘이 더 요구되는 슬랩 구간인데 체력이 소진되는 시점이라 올라섰을 때는 땀이 철철 흐른다. 바위 위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홈통바위 상단 바로 위로 608m 봉이다. 여기부터는 그나마 그늘숲이라 조금은 힘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독립운동이 이만큼 힘들까.”
수락산 주봉(해발 637m)의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고 병소는 3.1 만세운동이라도 떠올렸던가 보다.
“독립운동은 탑골공원 같은 데서 하니까 이보다는 덜 힘들겠지.”
주봉에서 마주한 도봉산 사령부가 깃발을 펄럭이며 성원해준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보며 또 지켜주겠네. 힘들 내시게나.”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등 도봉산 바위 봉우리들이 하늘 찌르며 장대하게 솟아올랐다면 철모바위, 배낭바위, 하강바위 등 수락산 바위들은 오밀조밀 조경을 위해 배치한 소품들처럼 여겨진다.
수려함과 웅장함으로 비교하려면 수락산은 촌색시 같아서 강퍅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수락산 바위들이 그렇다는 건 도봉산과 다르다는 것일 뿐, 그 다름은 상호 동등한 가치의 특색이며 뚜렷한 개성일 뿐 우열을 헤아리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서울시와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솟은 수락산은 등산로가 다양하고 계곡도 수려한 데다 교통이 편리해서 휴일이면 수도권의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돌산으로 화강암 암벽이 노출되어 있으나 산세는 그다지 험하지 않다. 수락산이 힘든 건 바로 지금처럼 연계 산행을 하며 인색한 수림을 걸을 때이다.
휴일이라 코끼리바위, 치마바위에도 등산객들이 붐빈다. 다들 우리보다는 싱싱한 안색이다. 그들과 달리 숙제하듯 산행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무리 숙제인 불암산으로 장을 넘긴다.
한점 두점 떨어지는 노을 저 멀리 一點二點落霞外
서너 마리 외로운 따오기 돌아온다. 三个四个孤鶩歸
산봉우리 높아 산허리 그림자 덤으로 보네. 峰高剩見半山影
물 줄어드니 푸른 이끼 낀 돌 드러나고 水落欲露靑苔磯
가는 기러기 낮게 맴돌며 건너지 못하는데 去雁低回不能度
겨울 까마귀 깃들려다 놀라 도로 날아간다. 寒鴉欲棲還驚飛
하늘은 한없이 넓은데 뜻도 끝이 있나 天外極目意何限
붉은빛 머금은 그림자 맑은 빛에 흔들린다. 斂紅倒景搖晴暉
- 수락잔조水落殘照 / 매월당 김시습 -
무사 완주, 눈빛 가득 기쁨이고 무한한 감동이다
아래로 수락산과 불암산을 연결하는 덕릉고개 동물이동통로가 보인다. 이제 총 목표 지점의 9부 능선쯤 온 셈이다. 여기서 수락산 쪽을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뜨끈해진다.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솟는 느낌이다.
“스틱을 접을 때까지 지켜주시고 또 지켜주옵소서.”
마지막 남은 불암산을 오르며 겸허히 그리고 숙연하게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제 불암산만 남았네. 힘내서 승리의 기쁨을 맛보자고.”
수락산 날머리이자 불암산 들머리 덕릉고개를 넘어서면서는 되레 힘이 솟구친다. 구간이 가장 짧은 불암산만 남겨뒀기 때문일 것이다. 숲이 우거져 수락산보다 덜 덥고 걷기도 수월한 편이다.
‘삼각산은 현 임금을 지키는 산이고, 불암산은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다.’
근원지는 모르지만 북한산과 불암산을 두고 이렇게 말들을 한다. 경복궁에서 가까운 북한산이니 살아있는 왕을 지킬 것이고, 태릉을 비롯하여 광릉, 동구릉 등 많은 왕릉이 불암산 가까이 있으니 그런 표현이 나왔을 법하다.
본래 금강산의 한 봉우리였던 불암산이 한양으로 오게 된 건 건국 조선 도읍지의 남산이 되고 싶어서였다. 한양에 남산이 없어 도읍 정하기를 망설인다는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으나 이미 남산이 들어선 후였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한양을 등진 채 머물고 있다. 금강산이 되고자 했던 울산바위와 달리 금강산을 떠난 불암산의 설화다.
큼직한 바위 봉우리가 중의 모자인 송낙을 쓴 부처 형상이라 그 이름을 불암산佛巖山이라고 지었단다. 1977년에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암벽등반을 하려 많은 애호가가 즐겨 찾는 산이기도 하다.
어림잡아 3000개 이상의 계단을 걷지 않았을까. 다람쥐광장으로 불리는 석장봉에서 지척에 펄럭이는 정상의 태극기를 보노라니 광복의 순간처럼 감동을 자아낸다.
세 번째지만 여기 다섯 산을 잇는 행보는 늘 똑같은 감동을 안긴다. 이제 정상 오르는 계단이 오르막으로서는 마지막 계단이다. 불암 지킴이, 쥐바위가 고개 쳐들어 환영의 고함을 내지른다.
“몰골은 거지 같지만 그대들은 진정한 부자들일세.”
“고양이나 조심하게. 수락산 고양이들은 사납던데.”
또다시 태극기를 접한다. 불암산 정상(해발 508m)의 게양대 옆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을 때는 다들 형언키 어려운 희열을 맛보게 된다.
“결정했노라.”
“시작했노라.”
“해내고 말았노라.”
그랬다. 그렇게 힘든 결정을 했고 시간 맞춰 세 사람이 모였으며 마침내 마칠 수 있었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학도암을 지나고 불암산 날머리 중계본동 진입로까지 와서 악수하고 포옹한다. 3V, 무사 완주의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며 서로를 위안하고 격려한다. 눈빛 가득 기쁨이고 무한한 감동이다.
2011년 11월 말, 나 홀로 불수사도북 5 산 종주에 이어 1년 반이 지난 이듬해 여름 다시 그 길을 반대로 걷는 북도사수불을 역시 홀로 종주했었다. 당시 새벽 영하의 추위와 30도가 넘는 무더위를 견디며 길고도 먼 고행을 자청했던 건 무모하지만 그마저 감수하려 했던 객기 실린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두 해를 넘긴 2014년 10월 초, 이번 세 번째 산행은 사랑하는 친구와 후배가 함께 함으로써 큰 힘을 얻고 버거움을 덜 수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때 / 초가을
곳 / <북한산 구간> 불광역 - 대호 매표소 - 족두리봉 - 향로봉 - 비봉 - 승가봉 - 문수봉 -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대동문 - 용암문 - 위문 - 백운대 - 위문 - 백운산장 - 하루재 - 영봉 – 육모정 매표소 - 우이동 - <도봉산 구간> 북한교 - 원통사 - 우이암 – 도봉 주능선 - 칼바위봉 - 주봉 - 신선대 - 포대능선 - <사패산 구간> 사패능선 – 범골 삼거리 – 사패산 정상 - 범골 삼거리 - 범골 능선 - 호암사 - 회룡역 <수락산 구간> 동막교 - 의정부 동막골 들머리 - 500m 봉 - 도정봉 - 기차바위 - 주봉 - 철모바위 - 코끼리바위 - 하강바위 - 도솔봉 하단 - <불암산 구간> 덕능 고개 - 폭포 약수터 갈림길 - 다람쥐광장 - 불암산 - 깔딱 고개 - 봉화대 - 공릉동 갈림길 - 학도암 - 중계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