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과 속리산
이른 새벽, 다시 혼자다
둘째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밥까지 먹으니 어제의 피로가 싹 가셔져 무척 상쾌하다. 산장에서 함께 머문 몇 명의 등산객들과 길을 나선다. 속리산 천왕봉까지는 동행이 될 것이다.
안개 뿌옇게 낀 이른 새벽 바윗길에서도 싱그러움을 느낀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지한 한남금북정맥 구간에서 방향을 틀어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058m)에 이르자 속리산 주 능선을 따라 왼쪽 끝으로 문장대가 선명하게 시야에 잡힌다.
“안전 산행하세요.”
잠깐 함께 걸었던 일행들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 다시 혼자다. 수차례 속리산을 왔었다.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올라와 천왕봉까지 왔다가 원점 회귀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길을 역으로 걸으며 속리산을 파고든다.
장각동 갈림길 헬기장에서 신선대와 문장대로 이어지는 암릉 군의 민낯들이 산뜻하다. 종종 느꼈듯 이른 아침에 바라보는 바위 봉우리는 화장기 없이 비누 내음 가득한 여인의 얼굴처럼 싱그럽다.
“이게 얼마 만인가, 다들 잘 지냈지?”
원숭이바위와 거북바위를 다시 만나자 이만저만 반가운 게 아니다.
“지도 잘 있었구면유.”
이어 곰바위도 얼굴 잊지 않고 아는 체해준다. 그리고 우뚝 세워진 입석대를 마주한다.
1618년인 조선 광해군 10년에 25세의 충민공 임경업은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경업 장군에 대한 야사 혹은 전설은 전국 여러 곳에서 전해지는데 여기 입석대와 경업대도 그의 기개와 용맹에 대한 설화를 지니고 있다.
임경업 장군이 불과 7일 만에 입석대를 세워 수련을 연마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겨우 7일? 7개월이나 7년이 아니었을까.”
걸음 멈춰 입석대를 바라보며 크기와 무게를 가늠하니 그 과장됨을 조금만 줄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존경하는 장군의 역발산기개세에 인식을 고정한다.
경업대 역시 장군이 무술 연마를 위한 수련 장소로 삼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경업대에서 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뛸금바위는 임경업 장군이 바위를 뛰어넘는 훈련을 하였다고 하며, 장군이 머물며 공부하던 토굴 밑의 명천약수는 장군이 마시던 물이라 하여 장군수라 부른다는데 경업대를 찾는 이들이 즐겨 마신다고 한다.
훗날 정조대왕은 당대의 화백 김홍도에게 자신이 특히 존경했던 임경업 장군의 초상화를 새로 그리게 시켰다고 하니 입석대와 경업대의 모양이 새롭게 각인된다. 속리산의 명물들을 두루 만나고 내처 걸어 신선대(해발 1026m)에 이르렀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냉커피 한 잔을 마시고 곤두박질하듯 내려섰다가 가파르게 솟구친 문장대에 다다른다. 문장대(해발 1054m)는 휴일을 맞아 산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보다 문장대가 인기는 훨씬 많다.
단종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불치병에 걸렸는데 신하들과 산을 찾아 삼강오륜을 논하면서 병을 고쳤다는 곳이 여기 문장대이다. 임경업 장군의 전설에 귀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었는데 세조의 치장에는 미간이 좁혀진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고?”
철제 계단에 올라서서 둘러보는 칠형제봉과 우측 끝으로 천왕봉까지 다양한 화강암 암릉과 단애의 멋진 풍광을 보며 세조의 역사에 반기를 든다.
“쿠데타는 쿠데타일 뿐이야. 아무리 미화하고 시간이 흐른다 한들.”
다소 뿌옇던 연무가 말끔히 걷히자 늘재에서 조항산과 희양산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선명하다. 오늘 걸어온 천왕봉부터 곧 마주할 관음봉을 살펴보고 문장대를 내려선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초행길이다. 묘봉까지 4.9km, 온통 암릉 구간이다.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삼각 형태의 근육질, 관음봉이 다가갈수록 위압감을 준다. 바위를 꺾어 돌고 휘어 감으며 오르내리길 반복하여 올라가서 세로로 갈라진 거대한 바위 꼭대기에 심어놓은 관음봉 정상석(해발 985m) 앞에 섰다. 밧줄도 없는 최정상까지 간신히 올라 인증을 하고 둘러보는데 이곳이야말로 최고의 전망 장소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첩첩 골골, 겹겹 산봉…… 과연 충북알프스란 말이 무색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희덕 시인의 ‘속리산에서’에 평탄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가도 가도 제자리를 배회하는 것만 같은 산길이다.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가도 가도 나아가지 못하는 삶, 시인은 바로 어제부터 마냥 걷는 내게 충언해주고 응원을 보내주려 이 시를 지었나 보다. 세속의 숱한 경쟁에서 밀리고 넘어지다가 찾은 산에서도 스스로 경쟁을 자초하는 걸 지적해주는 듯하다.
나무마다 가늘게 휘어졌고 고개 젖혀 바라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주름졌다. 굽은 산등성이, 허리 굽혀 오르는 산길. 불의와 비리에 물든 세상, 고개 돌려 외면하는 비틀림. 굽은 인생, 휜 처세……
“세상도 삶도 곧은 걸 찾기가 쉽지 않아.”
관음봉을 내려와 다시 능선을 걸어 여적암과 미타사로 갈라지는 북가치에 이르고 600m를 더 걸어 묘봉(해발 874m)에 도착하였다. 관음봉에서 여기 묘봉까지 거친 암릉은 없지만 굴곡이 심하다. 배낭을 풀고 정상석 옆에 앉으니 이마에 맺혔던 땀이 턱밑까지 흘러내린다.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이곳 묘봉에는 산악인 고상돈을 기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1977년 9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를 등정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고상돈에 의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국가가 된다. 세계 최고봉의 정상에서 무전을 통해 더 오를 곳이 없다고 소리친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1979년 북아메리카 최고봉인 알래스카 산맥의 매킨리산(해발 6191m) 원정 대장으로 정상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중 안타깝게도 웨스턴 리브 800m 빙벽에서 이일교 대원과 함께 추락해 사망하였다. 그의 묘소는 죽어서도 산악인임을 강조하듯 한라산의 해발 1100m 고지에 있다. 표지목을 어루만져보고 여정을 이어간다.
가야 할 상학봉까지도 멀지는 않지만 길이 곱지 않아 보인다. 역시 쉽지 않다. 숱한 오르내림을 거듭하게 된다. 석벽에 가라진 틈새, 바위가 막아서고 그 틈으로 비좁게 길을 내준다. 밧줄이 지겨울 때쯤 되어서야 상학봉(해발 834m)에 다다랐다. 묘봉에서 상학봉까지 겨우 1km인데 훨씬 긴 길을 온 것처럼 버겁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상학봉에서 어제부터의 행로를 되짚어본다.
“다시 그 길을 반복하라면?”
절대 못 할 거란 생각이 든다. 군대를 두 번 가라는 거나 다름없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전역, 아니 하산을 준비한다. 100리가 넘는 종주 중 가장 반가운 구간이 더는 고도를 높이지 않는 최종 봉우리일 것이다. 물론 그 지점에서 이미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신정리와 활목재 갈림길에서 신정리로 방향을 잡는다. 좁은 바위굴을 통과하고, 암봉의 사면을 조심조심 올라섰다가 밧줄을 잡고 내려서며 길을 줄여나간다. 그리고 최종 날머리에 도착하면서 긴장이 풀어지고 다리에 근근이 남아있던 근력도 풀어지는 걸 느낀다.
충북알프스. 1박 2일의 대장정을 마치고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는데 평소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이 마구 솟구친다. 얼른 손등으로 눈가를 훔친다. 왜 눈물이 맺히는 걸까. 누가 볼세라 생각보다 손이 앞선다.
다소 암울한 마음을 지니고 찾아왔던 산에서 무언가를 덜어냈나 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일었던 듯하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내려온 산을 올려다보며 진정 뉘우치게 된다. 원怨은 잘못된 상황을 남에게서 찾아 풀고자 함이며, 한恨은 잘못된 처지를 제 스스로에게 돌리는 비애라 했던가.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학대하며 맺힌 한을 풀겠다는 것은 빈 곳에 욕구를 채우려는 이기에 다름 아니기에, 그런 마음으로 찾아온 속리산과 구병산에 죄책감이 들고 말았다.
툭툭 엉덩이를 털고 도로를 걷는데 산길을 닦아 혼자서도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도록 해 준 충북 보은군에 보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때 / 늦봄
곳 / 서원리 - 백미지재 - 구병산 - 신선대 - 장고개 - 동관음고개 - 못재 - 갈령재 - 피앗재 - 피앗재 산장 - 속리산 천왕봉 - 신선대 - 문장대 - 관음봉 - 북가치 - 묘봉 - 상학봉 - 신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