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산, 가라산, 노자산, 선자산, 계룡산 5산 종주
가던 길 멈추고 뫼 바위에 올라 학동 포구를 내려다본다. 학동 몽돌 해안에서 올려다보면 노자산의 기암괴석이 꽤 볼만하다. 오래전 저기서 해상 식물공원 외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47000평 규모의 외도 해상공원은 3000여 종이나 되는 식물들이 심겨 있고 지중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이국적 정취를 물씬 풍긴다. 아직도 외도 유람선에서 돌아본 해금강의 사자바위, 촛대바위 등이 눈에 선하다.
노자산 전망대로 향하는 막바지 바윗길이 제법 날카롭다. 노자산 전망대에서 노자산 정상까지 800m, 거꾸로 가라산 정상까지는 3.4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밤샘 피로가 몰려오는지 노자산 정상이 실제 거리보다 멀게 느껴진다.
몇몇 친구들도 조금씩 지친 기색을 보인다. 오기 전부터 마음 다지고 소망했었다. 아홉 명 다 같이 무사히 완주하여 오랫동안 추억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전망대에서 간식을 먹으며 한 번 더 다짐해보고는 정상으로 향한다. 너덜 오르막길을 올라 송신탑에 이르면 바로 정상이다. 거제도 동남쪽 위치인 동부면 구천리, 부춘리와 학동을 끼고 있어 각 마을에서 올라올 수 있게끔 등산로가 나 있다.
노자산老子山 정상(해발 565m)에서 내려다보는 조망도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도해는 섬과 바다와 바람까지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불로초와 절경으로 인해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신선에 비유하여 노자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니 우리도 건강수명이 연장되지 않을까.”
“계룡산 찍을 때까지만이라도 건강하게 걸어야 할 텐데.”
가을 단풍이 멋질 뿐 아니라 희귀조인 팔색조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희귀 동식물도 서식한다는 노자산에서 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다시 진행한다.
멀리 선자산 정상이 보이고 그 왼편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10시 방향의 끝 봉우리가 계룡산 정상이다. 여기서도 다시 내려갔다가 또 올라야 한다. 이 두 산으로 가기 위해 해양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하산로 초입은 상당히 가파르고 비좁은 편이다.
“이제 두 개의 산이 남았어. 친구 따라 억지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친구를 못 볼 수도 있어.”
“오늘 너희들 보는 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남은 산을 아홉 명 모두가 동반한다.
선자산과 계룡산, 바다를 끌어안은 하늘길을 걷는다
선자산 들머리로 가는 거리 곳곳에 만개하지는 않았어도 동백꽃이 피기 시작한다. 평지에서 차분하게 시작되던 선자산 등로는 갈수록 가파르게 고도가 높아지고 너덜 바위 가득한 험로로 이어진다.
“노천아! 내려가지 못하고 쓰러지면 우리 집사람한테 사랑했었다고 전해줘.”
“마지막까지도 친구한테 거짓말하라고 시키는 거냐.”
“하하하!”
수차례 쉬었다가 땀깨나 흘리며 도착한 정상(해발 507m)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곧 어둠이 내려앉을 것처럼 묵직해졌다.
계룡산 남쪽 줄기로 이어진 선자산은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아름답고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며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단다. 이 계곡의 물이 굽이굽이 모여 구천 댐을 이루고 있다.
오르면서 둘러보는 남쪽 나라, 노을을 살포시 품기 시작한 바다, 그 바다를 끌어안은 잿빛 하늘, 하루를 접어야 한다는 신호처럼 마음을 바쁘게 한다. 친구들과 함께 왔으면서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생성된다.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사실에 대한 무한한 공감대, 그 느낌은 바로 함께 있으면서도 마구 솟구치는 그리움이다. 이처럼 맛깔스럽고 낭만 가득한 곳에 함께 왔으므로 해서 끝까지 함께 하고, 함께 이루고픈 본능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푸르른 날 / 미당 서정주 -
네 군데의 방향으로 갈라지는 고자산치를 지나고 6.25 한국 전쟁 당시 포로 관리를 위해 세웠다는 통신대 건물의 잔해를 보게 된다.
아파트 단지와 자그마한 마을에 불이 켜졌고, 어두워 실체를 구분하기 어려워진 농지와 저수지를 아래에 두고 걸으며 계룡산까지 왔다.
“우리가 해낸 거야?”
“해냈어.”
“마지막 하산 길만 조심하자. 모두 랜턴 꺼내서 켜.”
대단하고 대견하다. 가슴이 울컥했지만, 축배는 내려가서 들어도 늦지 않다.
거제도의 중앙에 우뚝 솟은 계룡산(해발 506m)은 산정이 닭 볏과 흡사하고 산이 용트림하여 구천계곡을 이루었다 하여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정상에는 신라 의상대사가 지었던 의상대의 절터와 불이문바위, 장군바위, 거북바위, 장기판바위 등이 있다.
왼편 아래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도 불빛이 보인다. 거제도는 조선 산업의 메카로 잘 알려져 왔다.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거제도 섬 전체의 경제가 엉망이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조선소에 에너지가 쑥 빠진 느낌이다.
내려오다가 비켜서서 보니 정상의 바위들 실루엣이 닭 벼슬을 닮은 것처럼도 보인다. 더 내려와서는 거제 시내와 공설운동장이 가깝게 보인다. 갈림길에서 계룡사를 지나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까지 내려온다.
“수고들 했어.”
“모두 자랑스럽지만 나 자신이 제일 자랑스럽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해냈다. 고맙다, 친구들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악수하고 서로서로 포옹하며 해피엔딩을 만끽한다. 경험해보니까 혼자 긴 연계 산행을 했을 때보다 여럿이 할수록 그 기쁨과 감동은 훨씬 커진다. 그 큰 감동을 잠시 가슴에 여며두고 이상 유무를 점검했는데 아무도 탈이 생기지 않은 것 같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유엔군에 의해 설치된 포로수용소에는 1951년 6월까지 북한군 포로 15만 명과 중공군 포로 2만 명 등 최대 17만 3천 명의 포로를 수용했었고, 그중에는 여성 포로도 300명이 있었다.
현재는 잔존건물 일부만 남아서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이나 모습, 의복, 무기 등을 전시해 놓았으며, 기존의 시설을 확장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여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된 바 있다.
예약한 통영의 콘도로 향하면서 대장정의 뿌듯함도 있지만 마음 한구석 허전함이 고여 드는 걸 의식하게 된다. 아홉 명이 총 도상거리 27km, 실제 30여 km를 걸으며 바다를 품고 산을 만끽했는데도 말이다.
혼자나 두서너 명이 아닌 아홉 친구가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마쳤다는 사실이 이곳 거제도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때 / 초봄
곳 / 명사 포구 - 칼바위등 - 전망대 - 망산 - 전망 바위 - 해미장골등 - 내봉산 - 호연암 - 여차등 - 세말번디 - 각지미 - 저구 고개 - 작은 다대재 - 다대산성 - 학동재 - 망등 - 가라산 - 진마이재 - 뫼 바위 – 노자산 전망대 - 노자산 - 해양사 - 임도 - 부춘마을 – 동부면 사무소 - 구천댐 - 암석지대 - 선자산 - 고자산치 - 포로수용소 잔해 - 통신탑 - 절터 - 계룡산 - 434m 봉 - 임도 – 김실령 고개 - 계룡사 –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장순영소설가
'산과, 삶과 사람과' 라는 비교적 넓은 테마를 첫 글로 잡았습니다. 국내 명산의 유적, 문화, 설화 등을 소개하며 필자의 소견을 덧붙인 에세이 형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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