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월

한림 단문

by 장순영

음성 소학교를 일등으로 졸업하며 꿈의 도회지 청주로의 유학에 부푼 소녀에게 펜 대신 주걱이 쥐어졌다.

이모 집으로 가출해 펑펑 울다 돌아온 소녀는 등 뒤로 애리 늘어뜨린 교복이 아닌 행주치마를 걸쳐야 했다.

자고로 여자란 집안일 잘하다가 시집가면…….


음성 땅 대지주인 외할아버지는 외동 장녀인 엄마를 봉건적 여자의 틀에 가두고 만다. 훗날 삼남 일녀 앉혀놓고 막걸리 한잔 취기에 얼굴 붉어지셔서 절대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 당신 소녀 적 시절의 단 한번 회고.

원망을 담고 살기가 버거우셨던 걸까. 엄마의 당신 친정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그게 첨이자 마지막이었다.

엄마를 바라보며 코흘리개 둘째 아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주 오래도록 엄마가 측은했다.


골수 봉건주의자, 꼴통 노인네…….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유월 생이신 엄마의 여름, 팔십 평생 엄마의 세월은 그 후로도 그다지 행복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유월은 녹음 우거지고 하늘 창창해도 어딘가 슬픈 빛이 고여 있다.


넌 사내애답지 않게 손이 고와 펜대 잡고 살 거야.

그윽하지만 허망한 눈빛으로 이 땅 내려다보실 엄마와 눈 마주치기 두려워 창가 사면으로 몸 숨기게 된다.

엄마의 기대와 달리 진득하게 끌어안은 혼돈의 삶의 감추고픈 오늘, 공허하고도 비애스런 느낌이 가슴 깊이 스며드는 건 아마도 유월에 들어서서 일게다.

이달, 엄마가 태어나신 유월엔 당신 무덤 앞에 막걸리 가득 부어놓고 살갗 타들어 갈 만큼 뜨거운 유월 볕 쪼이며 오래도록, 모처럼 아주 오래도록 당신 곁에 엎드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싶다.


유월은 그렇게 슬퍼해도 괜찮을 만큼 하늘빛 서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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