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산 19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협곡을 지날 때마다 우아한 자태의 노송들,
그 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더욱 깊숙한 풍모의 단애.
비록 몸집 큰 산은 아니지만, 팔봉산은 전혀 궁박하지 않다.
아니 작은 거인이다.
오늘 새벽 예고 없이 뿌려진 건 첫눈이 아니었나 보다. 때 이르게 찾아와 하얗게 분칠 하려던 걸 질시에 찬 햇살이 모두 거둬내고 만다. 고색창연 소나무 푸름이 아직은 더 머물러야 할 때라, 늦더위에 물러진 바위벽이 얼기엔 아직 이를 때라.
만추의 요염한 계절을 배웅하려 홍천으로 가는 길, 뿌옇던 아침나절과 달리 새순이라도 돋을 듯 따뜻하고 화창하다. 단풍만 졌을 뿐 왼손엔 여름을, 오른손에 겨울을 쥔 가을의 양팔 벌림이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소재한 팔봉산八峰山은 대부분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여덟 개의 봉우리를 스릴을 맛보며 올라 홍천 일대의 산들과 아래로 홍천강을 내려다보는 풍광이 일품이라 자주 오게 된다.
홍천강은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에서 발원하여 북한강으로 합류하는 북한강 제1지류이자 한강의 제2지류이다. 모곡, 마곡, 밤골유원지 등 강줄기 곳곳에 오토캠핑을 할 수 있는 유원지가 숱하게 조성된 수도권 최적의 물놀이 관광명소이다.
팔봉산 아래로 홍천강이 흐르지 않았다면 팔봉산과 홍천강은 둘 다 그 이름값을 떨어뜨렸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랬다면 붓과 캔버스처럼, 혹은 젓가락 두 짝처럼 반드시 둘이 함께 존재해야 함에도 하나만 멀거니 남아있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꼭 같이 있어야 하는데도 하나가 자기 짝을 두고 나 몰라라 훌쩍 사라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기 산과 강의 다감하고도 애틋한 조화로움을 보면서 그랬던 적을 떠올리게 된다.
올라와서 내려가기가 꺼려지는 산
길이 143km의 홍천강, 흐르는지 멈췄는지 모르게 고요히 움직이는 물살을 역시 소란스럽지 않게 여덟 봉우리가 어깨동무하고 내려다본다. 그다지 높지 않은 팔봉의 아기자기 이어진 모습이 한 폭 동양화를 펼쳐놓은 것처럼 수려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팔봉산 또 가보고 싶다.”
“가고 싶으면 가야지.”
작년 여름 홍천강 인근에 야영을 왔다가 8봉부터 1봉으로 산행을 하고 깊게 여운을 지니고 있던 영빈이 뜻에 맞춰 다시 왔다. 이번에는 병소와 노천이가 함께하여 네 명이 한 차에 동승했다.
주차장에서 내려 커튼처럼 펼쳐진 팔봉산을 마주하노라면 마치 자그마한 언덕의 이음 같은 산세에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겉보기와 달리 막상 산에 들어가면 무어든 붙들지 않고는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 뾰족 암봉과 급경사의 거친 암릉을 잔뜩 몸 낮춰 올라 홍천강을 내려다보노라면 물빛 노랗게 현기증 일다가 섞여 부는 강바람 산바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하다. 팔봉산은 늘 그렇게 여운으로 남았다가 불쑥 기억 밖으로 튀어나와 다시 끌어당기곤 하는 것이다.
1봉으로 오르는 들머리 입구엔 잘생긴 남근 목이 세워져 있다. 하도 만져서인지 나뭇결이 반지르르하다.
“이 산은 음기가 하도 세서 어떻게든 다스려야 해.”
가뜩이나 등산 사고가 빈발하여 생명을 잃는 예도 없지 않은지라 지나가던 노인이 내뱉은 말을 들은 이곳 상인회와 관광지 관리사무소에서 음기를 중화시키려 남근 목을 세웠다고 한다.
“이걸로 음기가 다스려진다 이거지.”
영빈이와 노천이가 남근 목을 만지작거리며 의아해하자 병소가 댓글을 단다.
“그렇게 만지니까 이게 윤이 나는 거야.”
“사고를 방지하려면 만져줘야지.”
음양의 여부를 떠나 일단 들어서면 곧바로 탄성을 흘리게 된다.
“역시 팔봉산은 이 맛이야.”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협곡을 지날 때마다 우아한 자태의 노송들, 그 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더욱 깊숙한 풍모의 단애. 비록 몸집 큰 산은 아니지만, 팔봉산은 전혀 궁박하지 않다. 아니 작은 거인이다.
봉우리 하나하나 지날수록 명산으로서의 요소를 두루 갖춘 팔봉산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돌올突兀 침봉들과 급준한 경사면의 바위벽들이 마냥 방심하게 놔두지 않는다. 한 사람 겨우 빠져나갈 만한 좁은 해산 굴을 우회하지 않고 부러 빠져나가기로 한다.
“왜 굳이 이렇게 좁은 데로 온 거야?”
키 큰 노천이가 유난히 힘들게 빠져나오며 투덜거리자 비교적 수월하게 해산 굴을 빠져나간 영빈이가 배낭을 받아주며 한마디 건넨다.
“네가 여길 나오면서 출산의 고결한 의미를 깨달아야 할 텐데.”
“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보다 더 힘드네.”
“네가 나오면서 이 산의 음기가 반은 줄었을 거야.”
먼저 빠져나간 영빈이와 노천이의 말에 웃음을 흘리며 병소를 먼저 빠져나가게 한다. 매끄러운 바위마다 사람들의 손자국이 묻어나는 것 같다. 잉태해서 출산에 이르는 경이로운 과정이 떠오르기 때문인지 손자국들은 짜릿한 전율을 일으킨다.
비좁은 바위 통로에서 손을 뻗으니 길이 끝나는 곳은 다시 열리는 곳이다. 길 따라, 혹은 길을 찾아 삶을 연결하게 한다는 건 어머니 뱃속에서의 꿈틀거림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홈통 바위라고도 부르는 해산 굴을 빠져나와 아무렇게 들쭉날쭉 솟은 바위들을 세세히 보면 결코 아무렇게나 자리 잡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있어야 할 자리, 놓여야 할 위치를 제대로 찾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기를 중화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자연적 조화로움으로 인해 팔봉산에서는 그다지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1봉에서 엄지를 추켜세우고 2봉에 닿아 검지와 중지를 세워 작은 정상석과 나란히 한다. 2봉에서 바라보는 3봉은 한 폭 그림이다. 거기 서서 손짓하는 산객들이 마치 무인도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내가 하나님이야.”
그렇다. 노천이 말처럼 3봉에서 반원을 그으며 굽이도는 홍천강을 내려다보면 세상을 호령하는 지존의 자리에 군림해있는 것만 같다.
4봉에서 손가락 넷을 펼치고 바윗길을 내려섰다가 다시 바위를 올라 5봉 정상석을 찾으려면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아주 작은 자연석이 절벽 위에 오롯이 박혀있어 인증 사진을 찍기도 쉽지 않다. 6봉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정상석을 세우려고 일부러 자연에 변형을 가하는 것보다는 현명하단 생각이다.
7봉으로 넘어가는 길은 지금까지 보다 더 험한 편이다. 그리고 마지막 8봉은 더 험해 노약자나 부녀자들에게 7봉에서 하산을 권유하는 팻말까지 달아놓았다. 8봉에서 손가락 여덟 개씩을 펼치는 것으로 팔봉산의 봉우리 섭렵을 마쳤다.
“참 멋진 산이야.”
두 번째 탐방인 병소가 곳곳을 둘러보며 그 소회를 간결하게 표현한다.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지.”
“겨울에 한 번 더 오자.”
“겨울 되거든 고심해보기로 하고 내려가세나.”
팔봉산은 1봉에서 올라 8봉으로 내려가든, 그 반대이든 마지막 봉우리에서는 내려가기가 꺼려진다. 아쉬움 때문이다. 여덟 번째 봉우리에서 하산 직전 홍천강을 비롯해 홍천의 보이는 곳을 죄다 눈에 담으려 멈춰 서게 된다. 멈춰 서서 둘러보면 저만치 가을 가는 게 보인다.
가을이 진다. 지는 가을, 까칠한 몸뚱이 비탈진 육신이지만 한 그루 나무라도 흘릴까 보아 부둥켜안은 모습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에 연륜 짙게 밴 부모님의 심지 넓고 자애로운 내리사랑을 읽는다.
가을이 뒤돌아본다. 겨울 오는 소리 들으려 수북한 고엽 숱하게 밟았거늘 올가을은 참으로 질긴 계절인가 보다. 잠자리에서도 화장 지우지 않는 술집 작부처럼 세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지 아직도 적갈색 피부를 씻지 않는다.
모두 주고, 모두 내던지고 떠나려는 게지.
그러기에 저처럼 홀라당 나신을 드러내는 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제 살을 바람에 떠억 내맡기겠나.
시린 가슴 부여안다가 젖어버린 설운 잎새
늦더위 물리치며 붉게 치장한 게 겨우 엊그젠데
어찌하다 가지 끄트머리에 아슬아슬
고독 견디지 못해 바싹 마른 이파리 되어
애당초 이별에 불과한 게 삶이 아니겠냐고 바스락,
몸 뒤틀어 바람에 항변하다 그예 스러진다.
드러누워서라도 천년만년 살 거라는 마지막 욕구마저
곧 몰아칠 초겨울 삭풍이 휘감아 버리겠지.
산아, 산아!
도야하고 또 도야한 수도승처럼
그댄 어이 한결 꼿꼿하기만 한가.
붉은 정열, 노오란 요염함을 끝내 지켜주지 못하느뇨.
빛에 젖고 바람에도 젖어
윤나는 치장을 그리 쉽게 벗어던지느뇨.
냉담한 진리만을 고수하려 홍진紅塵의 티를 씻고
가연佳緣을 알리려 청사초롱 밝히시는가.
다 벗어 헐거워진 몸에 하얀 분칠 하려 기다리는 중이신가.
그도 아님 변화무쌍한 세월의 반복에 짜증이라도 나셨는가.
육중한 몸 푹 덮어줄 푸른 지붕이 있으니 딴 맘
품을 새가 없으신가.
그대 찾는 길손들에게 뭐든 전할 작은 메시지라도
있지 않겠는가.
속절없이 지는 마른 갈잎이 가엾다는 입바른 소리라도
있어야지 않겠는가.
바람 그치고 햇살 숨어 어둠 내려온들 전혀
개의치 않겠지마는
지우고 또 지워도 내내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었노라고.
깔린 낙엽이 설워 속으로 속으로는 곡을 하고 있노라고.
산아, 산아!
그대 입 다물어 결코 들리지 않는 메시지, 그대 울음소리
넌지시 들을 수만 있다면 후끈 달아오르는 마음
가눌 수 없을 것 같구나.
어쩌다 그 소리 귓전을 스치기만 하더라도 머리끝 발끝까지
경련이 일 것 같구나.
산아, 산아!
이 계절은 차마 사랑 없인 살지 못할 잔인한
애모의 시절이 아니던가.
가득 꿈에 부풀었던 절정을 뒤로하며 흐르는 세월에
목이 멜 때가 아니던가.
일봉에서 이봉, 칠봉에서 팔봉, 내내 미지근한 햇빛
느릿하게 기울다가 산 그림자 길게 드리우니
그제야 물길 트였구나.
이때라, 입술 빗겨 물며 울먹이다 편하게 목 놓아도
홍천강 하류 센 물살이 감춰주누나.
때 / 늦가을
곳 / 팔봉교 - 1, 2, 3봉 - 해산 굴(홈통 바위) - 4,5,6,7,8봉 - 팔봉교 -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