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사도북 5산 종주(5-3)
신선대에서 새벽 북한산 국립공원을 쭈욱 둘러본다.
과연 울산바위에서 바라보는 설악산 대청봉에 비해 모자람이 있는가. 새삼 서울에 산다는 게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가운데 우이암부터 그 뒤 1시 방향 인수봉과 왼편의 백운대를 거쳐 뒤로 펼쳐진 북한산 곳곳 봉우리들이 지금부터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저렇게나 멀었던가?"
다른 때보다 유난히 멀어 보여 침이 마르는가 싶더니 힘이 쭈욱 빠지는 느낌이다.
"그다지 멀지 않군."
"젠장, 대빵 멀군."
흥미로움으로 시작한 산행이다. 그런데 불수사도북!!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이야.
난 또 어딜 찾아갈 것인가. 또 어떤 산이 날 끌어당길 것인가. 잠시 회상에 잠기는데 불현듯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이 떠오른다. 죽을 때까지 산을 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그래, 누가 뭐래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는 거야."
신선대를 내려와서야 뒤늦은 일출을 보게 된다. 아뿔싸~ 거기까진 좋았는데
하늘빛에 너무 심취했나 보다. 도봉 주능선 길을 놓치고 마당바위 하산로로 발을 들여놓게 되고 말았다.
기왕에 잘못 든 길, 마당바위를 질러 뛰다시피 내려오니
이마에 다시 땀이 솟기 시작한다.
"돌겠네. 또 2km는 힘을 낭비하게 생겼군."
성도원으로 내려갔다가 보문능선길을 타고 다시 우이암으로 오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자운봉에서 1.5km를 내려와 세밀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튼다.
되돌아가는 길은 훨씬 더 힘들다.
용어천교를 지나
만추의 산길이 호젓하다기보다는 무척이나 쓸쓸하고 썰렁하게 와닿는다.
아직 등산객이 없으므로 아무데서나 땀에 젖은 윗도리를 갈아입고....
우이암까지만 올라가서 식사하자. 허기가 지니까 더 힘들고 그래서 더 땀이 나는 것 같다.
"여기서도 우회했다간 오늘 해지기 전에 목적지까지 못가."밥도 먹었으므로 정면 돌파하기로 한다.
탈없이 암릉길을 통과했다.
가야 할 길, 왼편 인수봉, 백운대가 천리만리 아득하게 잡힌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일단 도봉산을 내려가고 보자."
소귀를 닮았다 하여 우이암이다.
우이암을 끼고도는 길도 꾸불꾸불 꽤 긴 편이다.
원통사 방향으로 튼다.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전혀 소귀를 닮지 않은 우이암이다.
도봉산 날머리인 우이동에 도착하니 졸음이 몰리고 몸이 축 처진다.
다섯 번째 북한산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 산으로
도봉산에서 내려와 청산가든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우이령 가는 길이 마지막 종주길 북한산 들머리이다.
"가지 않을 수가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11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는 가을임이 분명하다며 이파리 빛깔 바래지는 걸 거부하고 있다.
청운 산장 직전 왼편 용덕사 가는 길이 5산의 마지막이자 가장 긴 여정의 진입로이다. 영봉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군입대 시 까까머리 장정들을 마구 몰아넣는 교관의 지시봉처럼 보인다.
심리적 중압감 때문일까. 왼쪽 다리가 무릎 아래로 시큰하게 당기는 듯하며 기분 나쁘게 저려온다. 저 아래로 보이는 그린파크 쪽 사우나에 가서 온탕에 지친 몸을 푹 담그고 싶어 진다. 이쯤에서 걸음을 되돌리고 싶어 진다. 그런데 왜 돌아서지 못할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산, 인수봉이 있고 백운대가 있는 북한산. 그 북한산이 나로 하여금 등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수도 없이 만나 서로 정을 쌓고 진정한 의를 품게 한 북한산이기에 난 그의 품 곳곳에 다시 안기기로 한다. 그의 딱딱한 관절들을 마디마디 주무르기로 한다.
막 지나온 도봉산 암봉들도 고개 내밀어 유종의 미 거두기를 기원해주는 듯 보인다.
그래, 내 여행에 있어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친구가 아니던가.
벗이 있는 곳은 거기가 어디든 무릉도원이요, 유토피아 아니던가.
소피스트의 궤변 같은 혼잣소리에 그나마 힘이 솟는 듯했지만 다리는 더 심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다.
오른발을 내딛을라치면 왼다리가 잡아끈다. 스틱에 잔뜩 상체를 의존하고 올라와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한다.
눈 아래 보이는 세상, 연무 뿌연 공간, 그곳에서의 시리고 저린 인생 1막 2장을 되뇌다 보니 지금 이 정도에 겨워 갈등을 했었다는 게 부끄러워지고 만다.
"겨우 그 주제에 배부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아직 멀었어."
'자책은 사람을 곧바로 일어서게 하고, 반성은 그 즉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산을 오르게 한다.'
산은 역시 그 무엇에 견줄 수 없는 멘토이며 교훈의 산실임을 새삼 깨우치고 툭툭 엉덩이를 턴다.
영봉 가는 길, 고개를 지나면 보이지 않을 것을 아쉬워하는 오봉 다섯 형제가 담에 또 보자며 손을 흔들어준다.
"그러세. 하얗게 눈 덮인 그대 형제들을 보러 내 곧 오겠네. 그때까지 싸우지들 말고 오순도순 잘 지내시게."
신선대 - *마당바위 - 성도원 - 보문능선* - 우이암 - 원통사 - 우이암 능선 - 우이동 탐방지원센터 - 육모정 통제소 - 육모정고개
*마당바위 - 성도원 - 보문능선* :도봉산 정상 신선대에서 내려와 도봉 주능선을 따라 우이암으로 갔어야 하는데 또 시행착오를 겪어 성도원까지 내려갔다가 보문능선을 타고 우이암으로 오르며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