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광 5산 종주(3-1)
산행 / 나 홀로
때 / 겨울
곳 / 양재동 화물터미널 - 옥녀봉 - 매바위 - 매봉 - 혈읍재 - 먕경대(청계산 정상) - 석기봉 - 이수봉 - 국사봉 - 하오고개 - 영심봉 - 우담산 정상 - 바라산재 - 바라산 정상 - 고분재 - 백운산 정상 - 통신대 - 노루목 - 시루봉(광교산 정상) - 토끼재 - 종루봉(비로봉) - 형제봉 - 문바위 - 경기대학교
낙엽 수북히 깔아 놓고 양 옆으로 늘어서 오는 이들을 맞이하는 청계산 나목들이 대견스럽다.
청계산은 서울, 성남, 과천, 의왕시에 걸쳐 있는데 각 시내에서의 접근로가 가깝고 편리하다. 산세도 큰 편인데다 계곡도 적지않아 서울 위성도시의 많은 등산객들이 곳곳의 호젓한 코스를 택하여 산행할 수 있다.
들머리에서의 첫 봉우리인 옥녀봉은 다른 산들에도 같은 이름이 많은데 여타 옥녀봉들이 설화적 유래에서 기인한 것과 달리 청계산 옥녀봉은 봉우리 모양이 예뻐서 그렇게 지었다니 비주얼하고도 명료한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관악산을 중심으로 그 왼 편에 청계산이 있어 좌청룡의 형국이다. 그래서 고산지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에서 청계산이라 표기하기 전까지는 청룡산이었다. 이에 반해 수리산이 관악산의 오른 편 우백호에 자리하여 백호산이라고 불려졌단다.
계단의 숫자판이 일렬로 붙여져 있다.
안내표지판에 청계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가라고 적혀있다.
계단의 숫자는 1420에서 멎는다.
그러고도 덤으로 목계단을 올라야 매바위를 만날 수 있다.
양재동 방면으로 올라 만나게 되는 매바위는 도심과 주변 곳곳의 산세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매봉은 언제 와도 동네마당처럼 소탈하고 아늑하다.
한겨울 희끗희끗한 청계산 자락이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따각 따가닥"
내려다보이는 경마장 텅빈 경주로에서 말발굽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이렇듯 나홀로산행은 많은 상상과 공상을 동반하게끔 한다.
여기부터 과천에서 성남으로 넘어가는 경계점이다.
혈읍재血泣嶺의 유래에 대한 안내문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조선조 영남 사림의 거유巨儒인 일두 정여창 선생이 성리학적 이상국가의 실현이 좌절되자 은거지인 금정수터를 가려고 이 고개를 넘나들면서 통분해서 울었는데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하여 후학인 정구가 혈읍재라 명명하였다. 정여창 선생은 청계산 금정수金井水(망경대 아래 석기봉 옆)에서 은거하다 결국 연산군의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과 함께 유배 후 사사되었다. 그 후 갑자사화 때 종성땅에서 부관참시 당했다.
군사시설이 있는 망경대는 진입이 불가하고 이수봉 우회로는 거친 바윗길이라 자못 위협적이기까지 하므로 오늘 산행은 안전한 흙길을 택해서 가기로 한다.
헬기장에 발자국을 남기고
눈 녹은 평탄한 길을 따라 이수봉으로 올라 선다.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 정여창이 스승인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를 예견하고, 한 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 넘겼다하여 이수봉이라고 명명했다.
이수봉에서 청계산의 마지막 봉우리 국사봉으로 향한다.
고려 말기 청계산에 은거하던 조준이 조선의 개국공신이 된 동생 조견으로부터 새로운 나라의 조정에서 함께 일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이를 뿌리치고 날마다 이 봉우리에 올라가 고려의 멸망을 슬퍼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이 산에서 고려를 그리며 운 충신이 목은 이색이었다고도 한다. 전국에 국사봉이라는 산이 많은데, 대부분 선비 사(士) 자나 스승 사(師) 자를 쓰는데 반해 청계산 국사봉은 나라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생각 사(思) 자를 쓴 것이 독특하다.
중앙연구원 쪽으로 내려가면 청게산 날머리인 운중동, 하오고개로 향해 우담산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