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청 5산 종주(3-2)
바라산은 망산望山이라 불렸었는데 고려 수도 개성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풀어 바라산이라고 지었단다.
백운산과 바라산을 잇는 소담한 산길에 의왕대간이란 이정표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고려가 망한 후 충신들이 도읍인 개성에서 이곳으로 몸을 피해 왕王 씨를 모시고 기리고자 왕의 획이 들어간 의義자를 써서 의왕이라 했다는 설이 있구먼. 그래서 의왕시도 생겼고...
고려 때 안렴사를 지냈던 조견은 그의 형 조준이 이성계를 도와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청계산으로 들어갔다. 태조 이성계가 벼슬을 내리고 여러 번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여생을 마친다.
“내 묘비에 고려 때의 벼슬만 적고, 조선 때의 운명은 적지 말도록 해라.”
그렇게 유언하고 눈을 감았는데 자식들은 후환이 두려워 개국 이등공신 조견 지묘라고 묘비를 세웠다.
“그런데 그날 밤 벼락이 쳐 개국 이등공신이라는 글자만 부서졌다더군.”
“하늘이 조견의 손을 들어준 셈이야.”
살다 보면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고 해도 또다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실을 꺾고 뒤틀어서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필연이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다. 조견 또한 굴절된 삶에 휘둘리다 스러지는 걸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여 필연적 운명을 맞이한 인물이었다.
백운호수를 시계방향으로 끼고돌면서 우담산으로
잠시 고려와 조선의 간극에서 벌어지는 충절과 배신을 새겨보다가 바라산으로 향한다.
바라산(해발 498m)은 망산望山이라 불렸었는데 고려 수도 개성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풀어 바라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안개가 걷히지 않아 개성은 시야에 없고 산 아래로 백운호수가 보인다. 백운호수를 시계방향으로 끼고돌면서 우담산으로 향하게 된다.
약 10km가량 왔다. 이때가 오전 11시 30분경, 내려온 만큼 올라가는 곳이 산이다.
365 희망 계단이라고 명명한 이 계단은 1년 365일을 15일 간격으로 구분한 24절기를 소재로 이곳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건강과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니 감사한 일이다.
동지부터 소한까지 365개의 계단을 내려서서 돌아보면 성큼 한 살을 더 먹은 느낌이 든다. 광교산 들머리부터 대략 10km를 지나온 셈인데 아직은 다들 끄떡없어 보인다. 내려온 만큼 올라가는 곳이 산이다. 바라재에서 다시 고도를 높이게 된다. 뙤약볕 능선이 거의 없다는 것이 오늘 산행의 큰 복이다.
네 번째 우담산을 잇는 바라재
뙤약볕 능선이 거의 없다는 것이 오늘 산행의 큰 복이다.
더 큰 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볕 뜨거운 산정,
지치고 땀 젖은 억지 미소 짓지만
우린 서로를 다감하게 끌어안는다.
보이는 것마다 푸릇한 생동,
속에 들어는 것마다 환희의 빛이다.
아주 멀리 눈길 던져도 튕기듯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 되돌림 속에 시름과 한숨 사라지고
미소와 긍정, 그리고 삶의 참한 미소가
소담스레 담겼으면 좋겠다.
꽃은 아름답다. 꽃 보다 더 아름다운 건 신록이다. 신록은 산의 얼굴이며 상징이다. 그래서 5월에 아름답지 않은 산은 어디에도 없다.
“자, 여기서 점심 먹자.”
우담산 정상 지척에 자리 잡고 배낭을 푼다. 한 상 가득 진수성찬을 차려 점심을 먹는다.
“산에서의 즐거움 중엔 먹는 일도 크게 차지하지.”
“난 그게 전부인 거 같아.”
“그래, 넌 산에 다니면서 살이 더 붙었어.”
노동이나 훈련에 휴식이 없다면 얼마나 고되겠는가. 산행을 잠시 멈추어서 바리바리 챙겨 온 먹거리를 나눠 먹는 건 그럴듯한 만찬 못지않다. 산에서는 갈증을 느끼기 전에, 허기를 느끼기 전에 물을 마시고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먹는 모습들을 보니 식사가 조금 늦었나 보다. 너무 맛있게 먹는다. 어렸을 적 소풍 나와 먹는 것처럼 맛있다.
거리상으로 딱 반 정도 왔다고 할 수 있는 영심봉을 지나 하오고개로 내려간다. 그리고 폭 높은 나무계단을 내려가서 우담산과 청계산을 잇는 교각, 외곽순환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식사 후의 산행길이라 피로하고 지칠 법도 한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행을 이어간다.
여길 내려가면 다시 된비알 오르막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우담산과 청계산을 잇는 교각, 외곽순환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식사와 반주 후의 산행길, 이젠 지칠 법도 한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행의 다리를 건넌다.
저 아래가 청계 톨게이트, 다리가 세워지기 전엔 이곳을 무단 횡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