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 후삼국 시대의 주인공들과 함께
단풍 물 빠졌다 해서 가을 서정이 시들해질까. 중추의 화려함은 많이 사그라졌지만, 자연은 때를 가리지 않고 나름대로 당시의 분위기를 한껏 연출해낸다. 늦가을 낙엽 수북한 운악산은 계절의 정점과 관계없이 수더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감성을 자극한다.
비장했던 역사의 현장, 궁예 성터
이번 운악산은 포천 쪽의 운주사를 들머리로 잡았다. 가평의 현등사를 기점으로 오르는 길을 오늘은 내리막 코스로 잡은 것이다.
가평 화악, 서울 관악, 파주 감악, 개풍 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의 하나로 꼽는 운악산은 특히 산세가 뛰어나 경기의 금강이라 불린다. 깎아지른 절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노라면 비록 절정의 자태가 아닐지라도 그 수식어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르지만 계속되는 바위 구간은 경사마저 급하다. 무지치폭포를 아래로 두고 약수터에 이르러 목을 축이고는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정상을 향한다.
이곳에 둘레 2.5km의 산성 터가 있다. 궁예가 왕건과의 싸움에 대비하고자 깊은 골짜기와 기암절벽을 잇고 또 이어 쌓은 궁예 산성이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궁예는 왕건에게 맞서 건곤일척의 전투를 치른다.
궁예, 신라 왕권 다툼의 희생양으로 강보에 싸인 채 던져진 아이는 집안의 몸종이자 유모에 의해 생명을 건진 후 승려의 신분으로 다시 태어났었다.
1100여 년 전, 고구려 부흥을 기치로 거센 바람을 일으킨 궁예는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방하며 바야흐로 신라, 후백제, 후 고구려를 일컫는 후삼국 시대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겨우 저런 애송이한테 당하다니.”
서기 901년 평양에서 충주 이남까지 한반도의 중앙을 장악하며 궁예의 태봉국泰封國은 전성기를 구가한다. 905년 개성에서 철원으로 천도하여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고쳤다. ‘커다란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로 후삼국 통일의 의지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지와 현실의 부합은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이가 할 수 있는 거였나 보다. 궁예는 호족 연합 세력의 반발을 견뎌내지 못하고 20년이 되지 않아 신흥 제국의 꿈을 접어야 했다. 918년 총애하던 부하 장수 왕건이 일으킨 쿠데타로 궁예의 미륵불 이상향은 미완未完의 제국과 함께 속절없이 무너졌다.
여기 운악산 전선에 성을 쌓고 반년을 버텼으나 왕건에게 패하고 만다. 궁예의 마지막 전조를 보인 여기 궁예 성터의 성벽은 대다수 허물어져 산비탈 아래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운악산 비탈길에서 숨이 차다 하여 고개 젖히지 못하고 오르거나, 미끄러운 내리막길 발 디딤에만 신경 쓰다 보면 이곳이 비장했던 역사의 현장임을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달랑 궁예 성터라 적은 노란 아크릴판 조각 하나가 걸려있으니 말이다. 마치 역사는 과거에 불과할 뿐이라고, 이미 천년도 더 지난 고린내 풍기는 얘기일 뿐이라고, 여긴 그저 등산로의 한 구간이고 그 표식을 걸어놓았음이라고.
성터에서도 길게 고도를 높여 올라가게 된다. 정상인 서봉을 앞둔 갈림길에서 왼쪽 100m 거리의 애기봉을 들러보기로 한다. 따사로운 양지에서 엄마한테 업힌 아가가 푸근히 잠들어 있다.
여기 애기봉에서 어머니 품에 잠든 아가의 모습을 그렸다지. 최고봉 만경대와 그 품속 애기봉의 모습처럼 운악의 암벽들은 저마다 땀구멍처럼 비좁은 공간을 비집고도 푸릇푸릇 광채 뿜는 소나무를 붙들어주고, 소나무는 절반이나 기울어진 몸으로도 하늘을 잡으려고 가지를 내뻗고 있다.
그리고 마저 올라 닿은 서봉(해발 935.5m)의 공터에 이미 많은 등산객이 가을 운악산을 즐기고 있으며 동봉(해발 937.5m)까지도 가는 가을이 아쉬운 양 여기저기서 만추를 카메라에 담는 중이다.
온산 붉게 물들인 가을 대향연의 시기는 지났지만 보듬어보노라면 산에서는 계절이 돌아가는 길목도 모퉁이가 아니며, 시간이 다 흐른 후의 파장도 전혀 있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세월 지난 후에는 미웠던 감정도 무디어지듯 갈라졌던 땅덩어리도 하나로 뭉쳐진다. 하나로 통일이 되고 나면 그걸 누가 이루어냈느냐는 역사의 기록만 남을 뿐이다.
936년 9월, 후백제의 신검이 고려의 왕건에게 항복함으로써 후삼국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900년에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워 후삼국 시대를 연 지 36년 만이며, 서기 676년 신라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발판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지 260년 만이었다.
후삼국의 통일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땅 일부를 정복한 형태의 통일보다 훨씬 완벽했고, 외세의 힘과도 무관한 통일이었다. 이렇게 하나로 합쳐진 한반도는 20세기에 들어 남북한이 갈라질 때까지는 물리적으로는 갈라지지 않았었다.
‘꽃 같은 봉우리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았고……’
양사언의 시에서처럼 구름을 뚫을 듯 바위 봉우리들이 높이 솟구쳐 있다 하여 운악雲岳이라 명명했단다. 운악산 석비를 보니 산허리 휘감아 운무 흐르는 날이었다면 거기 새긴 시구에 딱 부합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운악산 만경대는 금강산을 노래하고
현등사 범종 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 무우폭포에 푸른 안개 오르네
다시 하나로 통일되었지만 또 둘로 갈라진 터전
내려가는 길인데 다시 바윗길을 오르게 된다. 만경대의 암릉에서 사방 휘저으며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솔솔 하늬바람이 일어 폐부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면서 두루 보게 되는 운악산 단애와 기암들, 그리고 거기 박힌 소나무 분재들이 자꾸만 허리춤을 잡아끈다.
강건하고도 꼿꼿하게 솟은 미륵바위는 보는 이로 하여금 꽉 들어찬 충만감을 심어준다. 여러 갈래 세로 주름을 세운 병풍바위는 운악산의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운악산의 상징이랄 수 있는 수직 병풍바위의 깎아내린 절벽은 그 아찔한 느낌이 여기 왔던 이를 다시 오게끔 잡아끄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매 계절이 그러할 진데 본래 색깔을 아쉬워하는 만추 단풍이 매달려 있음을 보았을 때면 오죽하랴 싶다.
제 몸 살라 영혼 깃들었던 가을 잎
활짝 펼치었다 슬금 오므라들더니
진통 떨치려 함인가, 스스로를 떼어내네.
은빛 엷은 햇살 풋풋하여
만추 만경대와 하늘 사이 고즈넉 능선길
눈에 차는 것마다
깊은 오수에 빠진 듯한데
아아, 나만 그런가 보다.
가슴 뚫어질 듯
애수에 젖어드는 건.
능선과 암릉, 내리막길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다시 만날 것을 예정하게 만든다. 선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된 총각으로 의인화한 눈썹바위를 지나고 포장도로에 이르면 거기 현등사가 있다.
가평군의 향토 문화재 제4호이기도 한 현등사는 서기 527년에 신라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고, 그로부터 13년 후인 540년에 인도에서 불교를 전하기 위해 온 승려 마라 하미를 위해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의 도학자인 서경덕의 부도가 있고 임진왜란 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국교 교섭에 대한 선물로 보낸 금 병풍 한 점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6·25 한국전쟁 때 분실되었다.
지나가는 것은 없고 오직 남겨지는 것이 있을 뿐이며 다시 회귀할 약속 또한 분명하게 새김으로써 늦가을 해거름 내리막길에서도 진한 해후를 상념하게 된다. 어스름 노을의 날머리에서 운악산이 무척 큰 산이라는 느낌이 들어 다시 돌아보았는데 거기서 건국 고려의 너른 포용을 마저 읽게 된다.
천년 왕국 신라의 왕족과 호족들은 견훤의 강인한 위세에 꼬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왕건의 온유한 햇살 앞에서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굳게 닫혔던 빗장을 풀었다. 930년, 고려군이 고창에서 후백제군을 크게 이기고 마침내 힘에서도 우위를 보이자 신라의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을 결심한다.
후백제는 고창 전투 이후 935년에 피폐해지는 후백제를 일으키고자 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왕위에 오르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견훤은 가까스로 탈출하여 고려에 망명하고는 자신이 세운 후백제 타도에 앞장섰고 그 해에 마침내 신라가 정식으로 고려에 흡수되었다.
왕건은 오랜 라이벌 견훤을 아버지처럼 대하며 극진히 모셨다. 경순왕한테도 계속 경주를 다스리게끔 하고는 그의 조카딸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장인 대접을 하는 등 화해와 통합에 주력했다. 이보다 앞서 926년에 발해가 멸망하자 그 유민들을 받아들여 후하게 대우했다.
936년, 실로 삼국시대 이래 한민족의 여러 갈래가 고려라는 큰 틀 안에서 융합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의 역사를 되짚으며 지금의 남과 북이 어떤 모습으로 통일이 될 것인가를 상상해보게 된다.
때 / 늦가을
곳 / 포천 운주사 - 궁예 대궐터 - 애기봉 - 운악산 서봉 - 동봉 - 만경대 - 눈썹바위 - 가평 현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