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가리, 보릿가리, 밀가리의
세 봉우리, 가리산

강원도의 산 27

by 장순영

언제부턴가 산에 오면 빛의 정기를 받으며

자아실현의 고요한 기도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우주와 대자연은 성취를 위한 강렬한 실현 욕구에

동화한다는 걸 믿으면서부터다.



3월 말,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계절은 분명 봄으로 기우는 중이다.

친구 태영, 후배 계원과 아침 일찍 만나 가리산 자연휴양림에 내비게이션을 맞춘다. 산에 입문할 무렵, 가는 산이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온 적이 있는 가리산이다. 산세가 어떤지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 다시금 찾게 되었다.

홍천과 춘천에 모두 접한 가리산은 홍천강의 발원지이면서 소양강과 화양강의 수원水源을 이루고 있다. 가래나무가 많아서 가래산이라고도 불렀다는데 지금은 가래나무를 보기 힘들고 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다른 설에 의하면 산의 정상부가 수북하게 쌓아놓은 볏가리, 보릿가리처럼 생겼다 해서 가리산이라 이름 지었다고도 한다.



겨울 산정, 봄 휴양림


휴양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스팔트 길을 지나면 잣나무 숲 사이사이로 꾀꼬리, 뻐꾸기, 종달새 등 새 이름으로 문패를 붙인 펜션형 방갈로가 눈에 띈다. 내부를 들러보니 콘도 못지않게 갖출 건 다 갖춰졌다.


“아기자기한 게 하룻밤 연인들의 장소로 딱이군.”

“다음에 형수님이랑 같이 오시죠.”


태영이의 말을 계원이가 받았는데 되받는 두 사람의 말이 걸작이다.


“이런 곳은 가족이랑 오는 데가 아니지.”

“그럼 그림의 떡이겠네요.”

“얘가 날 띄엄띄엄 보는군.”


우중충한 사내 셋이 싱숭생숭한 기분을 정화하고 오르막으로 걸음을 내디딘다. 지난달 축령산과 서리산을 함께 다녀오고 한 달여 후에 다시 셋이 가리산을 왔다. 졸졸졸, 계곡에 겨울 녹는 소리 들으며 해동解凍의 질척한 자국을 내면서 오르는 걸음이 경쾌하다.

가리산으르오르면서 본 1, 2, 3봉.jpg 가리산 정상 일대. 1봉, 2봉, 3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30여 분 오르다가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에 채운다. 오를수록 겨울로 되돌아가고 있다. 올겨울은 참으로 많은 눈을 밟았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눈밭 다지는 러셀 산행도 여러 번 경험했다.

봄 마중하러 나왔는데 가리산은 아직도 겨울이다. 양지는 질척하고 음지는 눈길이다. 참으로 질긴 계절이다. 오래도록 입은 소복을 벗어던질 만도 한데 갈아입을 봄옷이 없는지 때가 묻도록 걸치고 있다. 합수곡 기점을 지나 무쇠말재 쪽으로 올라가면서는 무척 가파르다.


“1호선 전철 타고 가리봉동 가는 것보단 힘들어.”


태영이의 썰렁한 농담에 땀을 훔치고 겉옷도 벗을 겸 잠시 쉬기로 한다. 계절이 바뀌면 울창한 숲을 이룰 참나무 군락에서 막 떠오른 태양이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시게 빛을 뿌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산에 오면 빛의 정기를 받으며 자아실현의 고요한 기도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우주와 대자연은 성취를 위한 강렬한 실현 욕구에 동화한다는 걸 믿으면서부터다.


“동반한 이들에게도 강한 실현 의지를 심어주소서.”


조금 더 지나자 잔설 얹은 연리목이 한눈에 봐도 죽고 못 살 정도로 정이 깊어 보인다. 대개 같은 수종의 나무가 엉켜 연리목이 되는데 지금 보는 연리목은 침엽수인 소나무와 활엽수인 참나무가 세 번 상대의 둥지를 휘감고 자랐다. 소나무 송진에 죽지 않고 위로 솟구친 활엽수의 생명력이 대단하다. 태영이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사랑하면 안 되는 게 없는 거야.”

가리산-연리목.jpg 서로 다른 수종의 나무가 서로 엉켜있다


정상인 1봉과 그 옆으로 2봉이 나란히 솟아있다. 산은 대체로 육산인데 정상 일대 봉우리는 바위벽이다. 마구 흐트러진 나무계단을 오르자 무쇠말재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홍수가 났을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무쇠로 말뚝을 박아 묶어놓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는 거란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만한 높이까지 물이 찼었나 보다.

무쇠말재에서 정상 오르는 길이 여간 만만치 않다. 길도 미끄럽거니와 상당히 추켜세워진 고도인지라 무척 조심스럽다. 1봉 아래 바위벽부터도 가파르기가 꽤 고약하지만 그나마 철제 손잡이가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막바지 정상 등극을 도와준다. 자그마한 자연석에 1051m를 표시한 1봉에 도달하였다.

기상 탓에 오대산에서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까지 시야에 담을 수는 없지만, 춘천 쪽의 오봉산과 용화산이 멀지 않고 뒤로 화악산도 보인다. 산 밑 물노리 마을에는 청나라 천자의 선대 묘가 있었다고 한다. 저들 넓은 땅 놔두고 왜 여기까지 와서 묏자리를 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한 천자 이야기’라는 설화가 적힌 팻말을 읽으면서 더더욱 난해해진다.


“계란이 있으면 세 개만 얻읍시다.”

“겨우 삶은 달걀 세 개가 있습니다만.”


이 산기슭에 사는 한 씨 부부 집에서 하루를 묵은 도승이 그 집 아들에게 삶은 달걀 세 개를 얻어 그날 밤중에 산을 오르더니 하나는 산 정상에, 하나는 산 중턱에, 하나는 산 밑에 묻고는 조용히 산에서 내려와 아들 방에 누웠다. 동틀 무렵이 되자 삶은 달걀을 묻어두었던 그 자리에서 각각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누워있던 도승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축시에 울어야 제대로 된 묫자리인데 시가 맞지 않는구나, 천자는 못하고 임금은 하겠다.”


몰래 도승을 뒤따라가 달걀 묻는 광경을 목격했던 아들은 몇 년이 지나 아버지의 묘를 제일 먼저 닭이 운 산 중턱에 묻고 중국으로 떠났다. 마침 중국에서는 천자를 뽑는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는데 과제가 짚으로 된 북을 짚으로 만든 채로 쳐서 쇳소리를 내게 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들은 자신이 치면 꼭 쇳소리가 날 것만 같아 도전하였다. 아들이 짚으로 만든 채로 북을 쳐서 쇳소리를 내어 천자에 올랐다고 적혀있다. 이때부터 이곳의 묘소가 명당이라고 알려져 암매장이 성행했고 암장을 하다가 수많은 시체를 발굴했다고 전해진다.


“나라의 통치자를 수수께끼 풀이 같은 거로 뽑았다고?”

“암매장을 조장하는 설화가 되고 말았어.”

“날계란을 묻었으면 청나라에서 병자호란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텐데.”


2봉으로 가려고 내려가는 길은 눈이 녹지 않은 음지의 미끄럼 길이다. 2봉에서 1봉으로 올라오는 산객들과 겹쳐 좁은 눈길이 정체되고 만다.

2봉의 측면 바위는 알려진 대로 사람 얼굴과 흡사하다. 가리산 아래 두촌면에 살던 선비가 여기 2봉에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공부하여 스무 살에 장원급제하고 판서까지 오르게 되었단다. 그 후 선비가 앉았던 2봉 암벽이 얼굴 모습으로 변하자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최근에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이 바위벽 밑에서 절을 하고 기도도 올리는 진풍경이 생겼다니 큰 바위 얼굴을 다시 한번 더 대면한다.


“우리 조카가 운전면허를 취득하려고 한다는데 꼭 합격하게…….”


왠지 낯간지러워 기도를 얼버무리고 3봉으로 건너간다. 볏가리 1봉, 보릿가리 2봉을 거쳐 밀가리 3봉까지 세 군데의 가리봉을 모두 올랐다.

3봉에서의 하산 길은 겨우내 내린 눈이 그대로 쌓인듯하다. 종아리까지 빠지는 설원 지대를 천천히 조심스레 내려서자 나뭇가지 사이로 저만치 소양호가 보인다.

다시 젖은 흙길을 지나 닿은 합수곡은 휴양림까지 1.6km를 남겨둔 지점이다. 세 봉우리 넘어 내려오자 훌쩍 계절까지 건너뛰었다. 오후의 가리산 휴양림은 봄이다.

파르르 떨며 다가온 실바람이 간신히 겨울 넘긴 잎사귀에 연민 가득 애무를 한다. 짙게 묻어난 봄 향내에 살 추스르지 못하고 그예 고개 숙이고 만다. 나비라도 일찌감치 날아와 젖어드는 이파리 끄트머리에 꽃술이라도 떨구어 겨우내 목말랐던 갈구 조금이라도 해소해주었으면 싶어 진다.


“수고들 하셨네.”

“가리산에서 겨울 잘 보내고 봄까지 맞았어.”



때 / 초봄

곳 / 가리산 자연휴양림 - 무쇠말재 - 가리산 1봉 - 2봉 - 3봉 - 합수곡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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