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견딜 수 없으나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산에서 역사를 읽다_3

by 장순영

이야기가 있는 산 1

산에서 역사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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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ookk.co.kr/book/view/134061



<차 례>


1. 승자는 신화를 만들되 패자는 우울한 야사를 지어낼 뿐 / 7

2. 당대 최고의 선비, 멜로드라마의 주연으로 데뷔 / 18

3. “죽음은 견딜 수 없으나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 31

4. “나의 죽음을 적이 모르게 하라. 싸움이 시급하다.” / 43

5. 신라의 천년 고도, 서라벌의 선명한 발자취 / 54

6. 남부군 빨치산의 상흔이 서린 백두대간 호남정맥 / 69

7. “대왕께서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 80

8. 내 평생 탐욕을 지녔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다 / 90

9. 내 아내 평강을 위해, 그리고 내 나라 고구려를 위해 / 99

10.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처절한 상흔을 딛고 / 108

11. 대원군과 녹두장군의 밀월, 그 결과는? / 117

12. 길고도 험난한 피난길이지만 와신상담, 이를 악물고 / 125

13. 그들이 도둑이 된 건 그들 죄가 아니다 / 136

14. 한강 유역을 빼앗기며 주도권을 고구려에 내어주다 / 145

15. 상아덤에서 칠불봉에 이르러 탄생한 신화적 역사 / 154

16. 주초위왕 사건과 기묘사화로 끝내 뜻이 좌절되고 / 171

17. 지네와 뱀의 싸움으로 파로호에 수장된 희생양들 / 180

18. 수덕사에 도드라지는 신여성들의 강렬한 삶과 애환 / 192

19. 귀양살이의 불행을 고귀한 학식으로 승화시키다 / 205

20. 성공한 쿠데타라 해서 혁명으로 미화될 수는 없다 / 217

21. 부러질지언정 휘어져서 굽힐 수는 없다 / 233

22. 귀주대첩, 거란을 물리친 고려 영웅 / 243

23. “배갯머리에서 나랏일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습니다.” / 253

24. 시대 흐름에 굴절되지 않고 두문동으로 흘러들다 / 267

25. 남이장군의 요절과 그 죽음의 잔인성에 분노가 인다 / 279

26.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여인의 삶과 이념의 괴리 / 289

27. 그 시대의 다크 히어로, 이 시대의 진정한 레전드 / 301

28. 일개 범부가 취할 수 없는 극단의 판단과 행동 / 311

29. 제2의 한국전쟁, 북한의 침략이 코앞까지 다가왔었다 / 320

30. 산은 산 물은 물, 여긴 속세를 벗어난 신비경의 세상 / 330

31. 두 명의 천자를 낳을 수 있는 천혜의 묏자리 / 342

32. 역사를 거슬러서라도 세조의 왕위 찬탈을 막고 싶다 / 353

33. 근현대사를 소담스레 담은 익산의 숨결 / 362

34. 형언키 어려운 감명, 불뚝 선 자존감 한산대첩의 재연 / 373

35. 역사와 설화 그리고 현실이 신비롭게 버무려져 / 383

36. 충절인가, 애착인가! 살고자 시류에 편승할 수는 없어 / 392

37, 오청취당, 그녀의 혼은 결코 기구하지 않기를 / 401

38. 역사의 위인들, 이 산에서 거듭나다 / 412

39. 궁예성터에서 고려 건국에 이르는 흥망사를 읽다 / 424

40. 내 비록 귀양살이를 할지언정 아닌 건 아니다 / 433

41. 도학굴과 오형 돌탑을 보며 숙연해지다 / 446

42. 은인자중, 학문에만 몰두한 서인의 거두를 평하다 / 456

43. 김일성 왕조의 내리 세습을 이 산에서 예견하고 / 466

44. 의상대사 못지않은 내공, 홀로 돌탑을 쌓다 / 475

45. 1968년 1월 21일, 무장 공비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 / 483

46. 의문의 추락사, 이제는 진상을 명확히 규명해야 / 494

47. 백담사에 깔린 비참한 역사의 발자취 / 506




-3화 -

"죽음은 견딜 수 없으나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남한산성 - 지워지지 않는 삼전도의 굴욕>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과 하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南漢山은 남한산성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온 사방이 평지라 밤보다 낮이 길어 주장산晝長山 혹은 일장산日長山으로 불러왔었는데 지금은 대다수 지도에 청량산으로 표기되고 있다.

광주산맥에 속하는 남한산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 침식되어 형성된 고위평탄면高位平坦面을 이용하여 쌓은 대표적인 산성 지역으로 성곽길이는 12.4km에 이른다.

1963년 남한산성의 성벽이 국가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고, 1971년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니 명함상의 직함만으로도 화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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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비견한 삼궤 구 고두례三跪九叩頭禮의 치욕


수도권 지하철 5호선인 마천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차도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남한산성을 일주하기에 적합한 출발점이 있다. 버스 종점이 있는 남한산성 만남의 장소이다.

성골 마을 들머리로 상가 지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잘 정비된 등산로가 나온다. 첫 갈림길의 오른쪽은 유일천 약수터와 수어장대로 갈 수 있는 길인데 왼쪽의 서문을 먼저 오르기로 한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으로 네 곳의 성문이 있다. 동문(좌익문)과 서문(우익문), 규모가 가장 크고 통행량도 많은 남문(지화문), 그리고 북문(전승문)이다. 그리고 16곳의 암문이 있는데 우리나라 산성중 문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서문으로 올라가는 길엔 계단이 많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짙게 깔릴 무렵이라 붉고 노란 단풍이 화사하게 하늘을 가렸다. 오르면서 숲이 비켜나자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게끔 시야가 트인다.

초록 붉게 물든다고 그게

무어 그리 대수일까

초록 물 다 빠지기 전에

따로 떨쳐낼 게 있어 흠이지

내내 지니고 다니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잖은가

손닿지 않아 더 가려운 등짝처럼 내내

움찔거리게 했잖은가 말일세

이제 저 산자락 너머로 훌훌 날려버릴 때도 되잖았나

지녀 병 되고, 안아 독이 될

그 해묵은 집착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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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남짓 걸려 우익문右翼門이라고 현판이 걸린 서문에 닿는다. 묵연한 시선으로 서문의 통로를 바라보노라면 영화 ‘남한산성’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수치스러운 역사의 수많은 기록 중에서도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은 수백 년 세월이 지나서도 떠오를 때마다 치욕스러워 이를 앙다물게 한다.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이곳에 갇히고 말았었다.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침입하며 일어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여진족, 즉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새로운 군신 관계를 요구한다. 청과의 화친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파와 청과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자는 척화파가 한 치 양보 없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죽음은 견딜 수 없으나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조판서 최명길로 분한 배우 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의 배역을 맡은 김윤석이 당시 상황을 그럴듯하게 재현했다.

“일국의 왕으로서 어찌 오랑캐의 신하 노릇을 하겠느냐.”

조선 16대 왕 인조는 갈팡질팡 고심에 휩싸이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 청의 요구를 거부한다. 그러자 청 태종 황태극은 1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였다.

조선은 먼저 봉림대군, 인평대군 등의 왕자를 강화도로 피신하게 하고, 조정 또한 피난하려 했으나 청군의 선발대가 이미 길목을 가로막았다. 가까스로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을 버티다가 그예 항복하고 만다.

백성의 안위보다 왕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웠던 인조는 결국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신하로서 청을 섬기겠다고 맹세한다. 이미 조선의 수많은 백성이 죽어 나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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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궤 구 고두례.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소복 차림으로 세자와 신하들을 이끌고 남한산성 문을 나와 지금의 탄천인 삼전도에서 여진족의 의식에 따라 청의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의 예를 갖춘다.

한숨을 내쉬며 허공을 올려다보는데 색깔 고운 단풍이 그 당시의 핏빛처럼 느껴진다. 패자가 받아들여야 할 피눈물 나는 고통의 농도는 다시 밝아지지 않을 짙은 어둠 그대로였으리라.

첩첩이 드리워진 어둠 속 먹구름이 이 나라의 앞날에 얼마나 더 많은 비를 뿌릴 것인지, 별조차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까만 어둠이 응어리져 굳어버린 나라의 미래처럼 느껴졌으리라.

“임금이시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吾君吾君 捨我以去乎.”

인조실록에 항복 의식을 끝내고 강을 건너는 인조를 향해 청나라군에 인질로 붙잡힌 1만여 명의 백성이 울부짖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전도에 청 태종의 승첩비를 세워라. 그 비문은 조선이 알아서 지어 바쳐라.”

굴욕은 단지 항복 의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섯 달이 지난 1637년 6월, 청나라는 이렇게 다그치며 알아서 기지 않으면 더 큰 수모를 안겨줄 수 있음을 공포하였다.

서문에서 성벽을 따라 걸으며 견디기 힘든 서러움이자 통한의 곤욕을 가늠하니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리게 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백성이 서러움을 당한다. 정묘호란 때도 그랬고 병자호란 때도 청군의 군사들은 철수하면서까지 곳곳의 우리 백성들을 수탈하였다.

노산 이은상 선생도 남한산에 왔다가 국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것 같다.


남한산 돌아올라 헌절사 뜰에

삼학사 충혼 그려 이마 숙일 제

서장대 바람결에 피 묻은 소리

굳세라 뭉치어라 힘을 기르라

59. 남한산성 성곽 길은 패자의 한이 서린 처절한 슬픔의 길이다.jpg 성곽에도 패자의 서러운 흔적이 짙게 밴 것만 같다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 청에 끌려가 갖은 곤욕을 당한 후 참형에 처한 오달제, 윤집, 홍익한의 삼학사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이 바로 인근에 있다. 1688년 조선 숙종 때 남한산성 내에 세운 현절사顯節祠이다.

1700년 척화 대신이었던 김상헌과 정온을 함께 배향하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지었다. 현절사에서는 매년 음력 9월 10일에 제향을 올린다.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성곽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축성하여 길도 오르막과 내리막의 굴곡이다. 걸으며 산 아래로는 광주 일대를 내려보고 검단산과 용마산 줄기를 눈에 담는다. 위례신도시 뒤로 바늘처럼 솟은 롯데월드타워도 보게 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역사의 슬픈 궤적


수어장대에 이르면서 단풍은 절정의 색감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높은 하늘 아래 펼쳐진 주변 분위기가 완연한 가을임을 느끼게 한다.

지휘와 관측을 위해 지은 남한산성 다섯 개의 장대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수어장대守禦將臺(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성안에 남은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중앙군이 5 군영 체제로 정비되면서 수어청이 남한산성을 담당하여 수도 외곽의 수비를 전담했고 그 수장인 수어사가 장대를 관장하였다.

60. 수어장대도 새기고 또 각성해야할 것이 많은 곳이다.jpg 남한산성 장대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수어장대守禦將臺


단층 누각이었던 것을 조선 영조 때 2층으로 다시 축조하여 2층 내부에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을 달아놓았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훗날 선조들의 불행에 대한 영조의 한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누각 옆에 세워진 비석을 보고 우지끈 속이 비틀리고 만다.

‘리 대통령 각하 행차 기념식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뜻은 아니었을 거로 생각한다. 응어리진 역사의 현장에 아직도 이런 아부의 산물을 자취로 남기고 있음에 시장기가 싹 달아나고 말았다.

수어장대 담 오른쪽 모서리에 수어서대守禦西臺라고 큰 글자를 음각으로 새긴 일명 매바위가 있고, 수어장대 입구에는 청량당淸凉堂(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이라는 사당이 있다.

수어장대가 있는 산 이름이 청량산(해발 497.9m)이고 그 옆에 지은 사당이어서 청량당이라 하였는데 남한산성의 동남쪽 축성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과 그 부인 송 씨, 그리고 서북성을 쌓은 벽암 스님 김각성의 혼령을 모신 사당이다.

이회 장군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완벽히 하기 위해 철저하게 공사를 진행하다가 그만 공사기일을 넘기고 말았다. 설상가상 공사비용까지 부족하게 되자 이회 장군이 주색잡기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조정에 나돌아 결국 참수형에 처하고 만다.

“내가 죽은 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한테 죄가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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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형에 처하게 된 이회가 죽기 직전에 하늘을 쳐다보며 한 말이다. 이회의 목을 베자 그의 예언대로 어디선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바위에 앉아 구슬피 울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매가 앉았던 바위를 매바위라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회의 부인 송 씨는 남편이 하는 일을 돕기 위해 영남지방에서 돈과 곡식을 구해오다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에 투신했다.

뒤에 벽암이 쌓은 곳은 무너졌으나 이회가 쌓은 곳은 튼튼한 성벽으로 남았다. 사후약방문, 나라에서는 이회를 위해 사당을 지어 억울함을 위로하였다.

수어장대에서 남문으로 가는 길에 은은한 가을 햇살과 여전히 고운 단풍 틈으로 행궁이 보인다.

서글픈 불행으로 결말지어진 병자호란의 흔적은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행궁에서 오른쪽으로 수어장대를 향해 오르면 숭렬전崇烈殿(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이다.

백제의 시조이며 남한산성을 처음 축조한 온조왕의 넋을 기리는 초혼각招魂閣이 있던 곳인데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 축성에 힘쓰고 병자호란 때 적과 싸우다 병사한 수어사 이서 장군을 함께 모시고 있다.

역사를 길게 오가다가 지화문至和門의 현판이 걸린 남문에 닿으면 더 많은 탐방객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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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정문인 남문으로 들어온 인조가 가장 작은 서문으로 나가 청에 무릎을 꿇었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우울해지고 만다.

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동문으로 간다. 단풍철이라 입구부터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어 붐빈다.

동문에서 동장대 터 아래로 내려가 남한산성에서 제일 높은 벌봉(해발 515m)으로 올라간다. 길게 이어진 산성이 피아彼我의 긴 전쟁터처럼, 지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수단처럼 단조롭게 여겨진다.

조선 시대 때 개축한 남한산성은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연주봉, 동쪽으로 망월봉(해발 502m)과 이곳 벌봉 외에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 데 비해 안쪽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 등 세 개의 외성과 다섯 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 남의 문루와 장대, 돈대, 보堡, 암문 등의 군사 방어시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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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으로 향한다. 남한산성 산행로는 외길이 아니라 얽매이지 않고 들를 수 있다. 시간만 맞는다면 이곳저곳 발길 닿는 대로 들러 맘껏 가을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북문에서도 높이 달린 현관의 문패가 씁쓸함을 안겨준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의미로 전승문全勝門이라 칭한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기습공격을 감행할 때 사용하던 문이지만 쓰라린 패전의 아픔을 지닌 곳이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300여 명의 군사가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군과 맞붙었으나 적의 계략에 넘어가 전멸하고 말았다.

법화골 전투라고 불리는 이 싸움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 규모의 전투이자 가장 큰 참패였다. 이후 문의 이름을 패전의 경험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전승문戰勝門이라고 문패를 고쳐 달게 된다.

북장대 터를 지나 다시 서문을 통과한 후 오른쪽으로 올라 전망대에서 서울 도심과 하남 일대를 바라보고 성곽 바깥쪽을 따라 연주봉 옹성에 닿았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는 이중의 성벽을 옹성이라 하는데,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근접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하여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구조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주봉(해발 467.6m)에서는 아차산과 남양주 일대의 한강을 내려다보고 성불사 갈림길로 내려선다.

왼쪽으로 내려가 능선을 따라 성불사를 거쳐 처음 왔던 곳으로 내려오면서 가슴 쓰리고도 슬픈 궤적의 역사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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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 가을

곳 / 마천역 - 만남의 광장 - 서문 - 수어장대 - 청량산 - 남문 - 동문 - 동장대 터 - 벌봉 - 북문 - 연주봉 옹성 - 서문 - 성불사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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