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역사상 공자의 유교 사상과 노자의 도교 사상이 오래도록 전해 내려 왔다. 노자의 사상을 담은 도덕경은 위나라 학자 왕필이 주석을 달아 학문으로 체계화한 책인데 그 도덕경에 대기만성이 언급되어 있다.
‘아주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큰 탓에 귀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더디게 이루어진다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아누 소리가 없는 듯 들을 수 없고大音希聲, 아주 큰 형상은 모양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大象無形.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 단정하여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진짜 큰 그릇은 완성됨이 없다는 노자 자신의 도道에 대한 개념을 말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큰일이나 큰 인물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거치면서 비로소 빛을 본다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또 나이 들어 늦게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흔히 쓰인다.
삼국시대 때의 사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위魏나라 장수 최염은 기골이 장대하여 외모만으로도 호걸의 이미지가 강한 사람이었는데 풍모에 걸맞은 훌륭한 장수로 명성을 떨쳤다. 그에게 최림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볼품없는 생김새에 말도 어눌하여 주위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했다.
“큰 종이나 큰 솥은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내가 보기에 너는 대기만성형이라 완성이 더딜 뿐이다. 주위의 평에 마음 두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네가 큰 인물이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최염은 사촌동생의 숨은 재능을 꿰뚫어 보고 최림을 독려했다. 과연 최염의 말대로 최림은 후일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의 벼슬에 오르며 대정치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게 된다. 여기서 세상의 사물을 눈에 비치는 단편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대기만성의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차 대왕의 전횡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왕권을 교체하고 국상이 된 명장 명림답부는 당시 나이가 94세였다고 한다.
칠삭동이로 태어나 볼품없는 몰골로 노상 놀림감의 대상이었던 조선시대 때 한명회는 나이 예순이 되어서 세조의 눈에 들어 그를 왕위에 앉히고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정승 자리를 지켰다.
지금도 102세의 연세에 풋풋한 웃음을 잃지 않고 열정적 삶을 사시는 김형석 박사를 보노라면 부끄러움과 함께 인생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여 그걸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소심한 마음과 비관적 태도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참담한가. 대기만성은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실현해 나갈 때만이 취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많은 구슬이라도 그걸 꿰어 모양을 갖추려는 노력이 없이는 보배가 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