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산 19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동반자란 서로 공감하는 이상이 시선 머무는
그곳에 있어 함께 가는 것이리라.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해발 1468m), 명지산(해발 1267m), 국망봉(해발 1168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주변에 유명산을 비롯하여 중원산, 도일봉 등과 육중한 산세를 이루며 남한강, 홍천강의 흐름과 어우러져 있다.
국내 최고, 최대의 은행나무가 거기 있다
넓은 주차장에 식당과 상가, 숙박업소 등 각종 위락시설과 편의시설이 갖춘 용문산 관광단지로 들어서게 된다. 서울에서 수시로 대중교통이 운행되는 데다 뛰어난 산세와 경관을 갖추고 주변의 유서 깊은 유적까지 더해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관광단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크게 나눠 용문봉을 거쳐 정상인 가섭봉으로 가거나 용문사를 지나 가섭봉으로 직접 오르는 코스가 있다. 어느 쪽이건 고도가 높고 거친 편이다. 용문봉을 택해 올랐다가 호되게 애를 먹은 기억이 있어 오늘은 그나마 난이도가 덜한 용문사 길로 향한다.
북한산에서 불암산까지 서울 강북의 다섯 산 종주를 계획해놓고 몸 다지기 차원에서 온 용문산이다. 함께 종주할 병소와 가섭봉에서 장군봉을 거쳐 백운봉까지 갔다가 내려오기로 했다. 용문봉까지 코스에 넣어 길을 늘려 잡는 건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용문산 관광단지에 들어서는 길 양옆으로 늘어선 은행나무들이 초록에서 노랑으로 물들고 있다. 하늘이 너무 푸르고 높아 채 오르지 못한 뭉게구름 몇 점이 살포시 가섭봉을 누르더니 장군봉 쪽으로 흘러간다.
관광단지로 들어서서 친환경농업박물관과 독립운동 기념비를 지나 용문사 일주문을 통과하고도 용문사까지 1km를 더 걸어 들어간다. 용문사 대웅전 앞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가 역시 초록과 노랑의 두툼한 갑옷을 걸치고 우뚝 서 있다.
“헐~ 대박!”
해마다 100여 가마니의 은행알을 수확한다니 입이 벌어져 다시 올려다보게 된다. 이 은행나무에 대한 문화재청의 기록을 요약해서 인용해본다.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67m, 뿌리 부분 둘레 15.2m로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1907년 정미 의병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고도 하며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조선 세종 때 정 3품 당상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왔고 생물학적으로도 자료 가치가 높다고 한다.
“대단하시군요. 천태산 영국사, 운길산 수종사, 치악산 구룡사에서도 내로라하는 은행나무들을 보았지만 여기 용문사 은행나무님한테는 견줄 상대가 못되네요.”
“그럼. 그 애들은 손 주뻘도 안되지.”
나이로나 풍채로나 최고, 최대인 용문사 거목을 우러러보다가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리고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간다. 좌측 상원사 방면의 능선길이 아닌 우측 마당바위 쪽을 택한 건 400여 m 더 긴 코스이긴 하지만 다소나마 고도를 낮춰 오르려 함이다.
“어느 길로 가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데가 용문산이야.”
“산에 들어서면서부터 위압당해버린 거 같아.”
계곡의 울퉁불퉁한 바윗길은 낙석으로 인해 더욱 거칠고 험상궂은 너덜 길이 되었다. 내려오는 산객의 걸음도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흐르는 계류는 티 없이 맑고 투명하다.
상원사 갈림길부터는 붉은 단풍이 보이고 조금 더 오르자 시원스레 트인 조망이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약간 비스듬한 기울기의 넓적한 마당바위는 평균 높이가 약 3m, 둘레 19m 정도라고 적혀있다. 서너 명의 산객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마당바위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모난 돌길이 이어진다. 밧줄 난간 길을 걸으면서 맺힌 땀을 훔쳐내지만, 더욱 심한 고도로 호흡마저 거칠어진다.
“들은 대로 사납기가 이만저만이 아니군.”
힘들기는 하지만 용문산 등산은 하늘을 오르는 기분이 들게 한다. 돌길, 수림 속에서 힘겨워하다가 하늘이 열리고 세상이 트이면서 하늘에 닿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저기 저 산은?”
“추읍산이야. 저 산에 오르면 양평군 내 일곱 개의 읍이 내려다보인다고 해서 칠읍산이라고 불렸었지. 재작년 산수유축제 때 갔었거든.”
뾰족하게 솟은 추읍산 뒤로 은빛 남한강 물이 반짝이고 용문사도 저만치 내려다보이니 부쳤던 기운이 보충된다. 다시 장군봉 삼거리에서 긴 나무계단을 치고 올라 펜스에 달린 수많은 리본을 보고 정상인 가섭봉(해발 1157m)에 닿는다.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에 모두 접한 용문산龍門山은 우람한 산세와 울창한 수림에 걸맞게 산 아래에 두 군데의 자연휴양림을 거느리고 있다. 동북쪽 기슭의 산음 자연휴양림과 남서쪽 기슭의 설매재 자연휴양림이 그곳이다. 본래 미지산으로 불렸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날개 단 용이 드나드는 산이라 하여 용문산으로 바꿔 불렀다.
유명산, 중미산과 방향을 바꿔 중원산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 또 왼편으로 용문봉, 전면 아래로 상원사 방향의 감미봉이 이곳 정상을 향해 능선을 뻗고 있다. 곧 만나게 될 백운봉은 한국의 마터호른이란 수식어에 어색하지 않게 우뚝 솟은 자태가 카리스마를 풍긴다.
가섭봉 지나 함왕봉과 장군봉 찍고 백운봉까지
가섭봉에서 장군봉으로 향하는 주 능선 정상 일대에는 군부대와 통신기지국을 비켜 우회해야 한다. 1.5km 거리의 장군봉까지 비교적 편안한 능선을 따라 걸어서 기지가 세워진 함왕봉을 지나고 그늘을 찾아 자리를 폈다. 꿀맛 같은 식사다. 산에 안겨 가까운 친구와 맛난 식사에 두서없이 나누는 대화도 꿀맛이다.
“주말에 친구가 같은 취미 생활을 한다는 건 큰 복이야.”
“기쁨을 같이 나누면 두 배가 된다잖아.”
“오래오래 건강해야 한다.”
참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상대를 배려하며 긍정적으로 살아온 친구다. 그런 친구가 오래도록 참한 건강을 유지하며, 또 오래도록 함께 산행했으면 마음이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동반자란 서로 공감하는 이상이 시선 머무는 그곳에 있어 함께 가는 것이리라. 덕담을 나누면서 다시 길을 나서 장군봉(해발 1085m)을 지난다.
이어 밧줄 난간과 긴 나무계단을 올라 백운봉(해발 940m)에 이르자 사나사 쪽에서 올라온 산객들이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석비에 굳은 암석을 세워놓았는데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백두산 천지에서 옮겨놓은 흙과 암이라고 적혀있다.
“양평 인근을 지나다가 우뚝 솟은 삼각 봉우리를 보면 여기 백운봉이라는 걸 기억해둬.”
“지나치면서 궁금했었는데 산세가 마터호른에 비유될 정도로 유난히 튀는군.”
구름을 벗어난 태양이 창연한 햇살을 뿜어낸다. 유명산과 중미산 쪽으로는 붉게 가을이 번져가고 있다. 지나온 용문산의 봉우리들도 기지와 통신탑과 함께 파란 하늘을 뚜렷한 선으로 그어놓았다. 중원산과 도일봉, 추읍산 등 양평 일대의 산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자연휴양림 쪽으로 하산 코스를 잡는다.
백 년 약수터를 지나고 백안산 수양원을 지나 새숙골이라고도 하는 백안 3리로 내려와 내처 6번 국도를 따라 양평터미널까지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다음 달에 다섯 산 종주할 때도 아스팔트 길을 꽤나 걷게 되지?”
“후후, 오늘 충분히 예행연습하는 셈이지.”
양평 도심에서 올려다보는 백운봉은 역시 야무지고 단단하면서도 가히 위압적이다. 양평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에 오르니 이미 어스름 노을이 지는 중이다.
때 / 가을
곳 / 용문산 관광단지 - 용문사 - 가섭봉 - 함왕봉 - 장군봉 - 구름재 - 백운봉 - 삼태재 - 백 년 약수 - 용문산 생태공원 - 새숙골 – 6번 국도 - 양평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