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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단풍 찬연한 양평의 명산
도일봉과 중원산

경기도의 산 29

by 장순영

깊은 가을을 보러 왔으니 산속 깊이 들어가 행보를

길게 잇기로 한다. 빨강은 핏빛처럼 새빨갛고

초록은 연하다. 단풍은 나무뿐 아니라

계곡 수면에서도 곱게 피어나고 있다.



양평에 가면 더 깊은 가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원점 회귀할 수 있는 중원산을 택해 곧바로 배낭을 차에 싣고 양평으로 향한다. 양평군 용문면 중원리와 단월면 향소리 사이에 솟은 도일봉은 중원계곡을 사이에 두고 중원산과 갈라진다. 도일봉과 중원산 모두 용문산과 맥락을 같이하는 명산으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구름밭 드넓게 펼쳐진 가을 풍경에 흠뻑 젖어


용문산을 전면으로 바라보며 양평 중원리로 들어가는 도로 양옆의 황금 들판은 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기분이 들게 한다.

주차장에서 잘 정비된 길을 따라 5분여 올라가 산으로 들어선다. 오랜만에 보는 중원폭포다. 수량은 많이 줄었어도 여전히 옥수가 고인 담에 빛깔 고운 단풍이 담겨있다. 가을 햇빛에 더욱 화사한 단풍나무와 빽빽한 덩굴 숲 사이로 흐르는 계류는 연중 마르는 일이 없이 아기자기한 폭포들을 이루어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을 불러들인다.

중원산과 도일봉으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많은 이들이 왼쪽 중원산으로 향하고 일부는 직진하여 도일봉 쪽으로 길을 잡는다. 여기서 중원산은 2.48km, 도일봉은 3.41km이고 도일봉을 거쳐 중원산까지는 8.495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이 작은 담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으로 물길은 더 보이지 않는다.

깊은 가을을 보러 왔으니 산속 깊이 들어가 행보를 길게 잇기로 한다. 빨강은 핏빛처럼 새빨갛고 초록은 연하다. 단풍은 나무뿐 아니라 계곡 수면에서도 곱게 피어나고 있다. 주황과 갈색이 같이 어우러진 숲은 이미 찬연하고도 깊은 가을이다.

70. 도일봉 자락에 가을이 활짝 열렸다.jpg 도일봉 자락에 가을이 활짝 열렸다


대체로 완만한 경사로에서 단풍을 즐기며 걷다가 능선에 이르면서부터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돌 반, 낙엽 반인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바위 구간을 지나고 또 고도를 높여가면 중원산 쪽으로의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전망이 확 트인 곳에 섰는데 높은 가을 하늘을 살포시 얹은 중원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도일봉으로 오르는 비탈의 바위 너덜길이 숨을 몰아쉬게 하지만 힘에 부치기보다는 노랗게 물든 색의 향연을 즐기게 한다.

전망 바위에서 중원산과 용문산 가섭봉을 눈에 담고 다시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올라간다. 낙엽 밟히는 바스락 소리가 듣기 좋다. 한껏 가을을 밟으며 오르는 게 운치 가득하다.

예전에 왔을 때는 도일봉(해발 864m)에 정상석도 없었는데 커다란 자연석이 도일봉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 같아 반갑다. 도일봉은 모산인 용문산의 주 능선에서 이어진 지봉 중 하나지만 주봉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하나의 산 괴로서 독립된 존재감을 지닌다. 이어가게 될 싸리봉이 멀지 않고 그 뒤로 문례봉 혹은 천사봉이라고도 하는 폭산과 용문산까지 장쾌하게 조망이 열려있다.

도일봉을 뒤로하고 중원산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내리막은 시작부터 경사가 심하다. 산음리 비슬 고개 방향의 갈림길까지 가파른 비탈을 내려왔다가 낙엽 풍성하여 더욱 아기자기한 능선을 따라 싸리봉(해발 811m)에 다다른다.

안내 표지목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싸리봉에서 500m를 더 걸어 싸리재에 이르러서야 잠시 휴식을 취한다. 도일봉과는 또 다른 가을 모습을 연출한다. 헐벗은 참나무들과 노송이 곧 뒤바뀔 계절의 변화를 예비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중원산과 용문산이 갈라지는 길까지 다시 울긋불긋한 오색단풍이 향연을 펼쳐 힘을 덜어준다. 폭산을 거쳐 용문산으로 향하는 길을 비켜나 중원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755m 봉에서 돌아보니 산 위로 펼쳐진 구름밭이 멋진 가을 풍광을 돋보이게 한다.

한여름이었으면 하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했을 활목 수림지대다. 어느새 도일봉은 저만치 건너편으로 물러나 있다. 아까 저쪽에서 부드럽고 완만하다 싶었던 이 지역은 뾰족하게 각진 바위 투성이다.

용문사 입구로 하산하는 신점리 조계골 갈림길을 지나 중원산 정상(해발 800m)에 도착한다. 여기도 정상이 헬기장으로 조성되어 공간이 널찍하다. 몇몇 등산객이 풀어놓았던 배낭을 둘러메며 하산할 채비를 하고 있다.

71. 중원산 정상에서 친근한 가평과 양평의 산들을 둘러본다.jpg 중원산 정상에서 친근한 가평과 양평의 산들을 둘러본다


용문봉이 우뚝 눈앞에 다가섰고 가섭봉에서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용문산 스카이라인이 가깝다. 어디로 시선을 던져도 첩첩 강인하고 듬직한 산세의 거듭된 이어 짐이다.

양평군은 경기도 내 시·군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지녔고 인구밀도는 가평군, 연천군과 함께 매우 낮은 편이다. 저처럼 높은 산지에 둘러싸여 산업 발달이 더디고 서울과 가까워 인구가 감소하는 탓일 것이다. 어쨌거나 자연에 훨씬 근접해있어서 양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 땅이었는데 고구려의 남진으로 고구려에 복속되었다가 6세기 중엽 이후 신라가 점령하게 된 양평이다. 주변의 산들을 치고 올랐다가 내려서며 양평의 소유권이 두루두루 바뀌었을 것이다.

잠시 양평과 가평의 친숙한 산들과 고대 역사의 연결고리를 상상하다가 풀어놓았던 배낭을 짊어진다. 하산로는 용문사 방향으로 가는 길과 중원계곡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아주 가파른 내리막이다. 중원계곡을 통해 원점으로 하산하는 이 내리막은 올라와 봤던 길이라 그 험상궂음을 잘 알고 있다. 거친 바위와 애추의 너덜지대, 그리고 암릉 밧줄 구간을 거쳐야 한다.

멋진 노송 한그루가 서두름을 자제하라며 잠시 멈춰 세운다. 숨을 고르고 수분도 섭취하며 저도 모르게 빨라진 걸음을 늦춘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낙엽 내리막은 울창한 숲 지대에 이르러 다혈질 성질이 수그러든다. 다시 단풍을 보면서 내려가다 숯가마 터에 이른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원산에 많은 참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구워냈던 전통 숯가마 터이다. 계곡을 빠져나가 주차장에 닿으면서 깊은 가을 다소 버거운 서정에서 벗어난다.



때 / 가을

곳 / 중원 2리 주차장 - 중원폭포 - 도일봉 - 싸리봉 - 싸리재 - 중원산 -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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