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 1-1. ‘태워버릴 책’

이탁오의 생애와 사상

by 임태홍

이탁오(李卓吾, 1527-1602)의 본명은 임재지(林載贄)입니다. 나중에 이지(李贄, 중국어 발음은 리즈)로 개명했지요. 임씨 성을 가진 집안 출신인데 성씨와 이름을 모두 그렇게 바꿨습니다.


‘탁오(卓吾)’는 그 뜻이 ‘탁월한 나’, ‘뛰어난 나 자신’입니다. 스스로 만든 호(號)인데, 어떤 자료를 보면 자(字)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는 남이 만들어준 것입니다. 대개는 부친이나 선생님 등 윗사람이 만들어준데 ‘탁오’가 만약에 ‘자’라면 윗사람이 이탁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라.’라는 의미로 만들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스스로 지었기 때문에 그런 뜻은 아닙니다.


스스로 자존감에 넘쳐 자기 자신이 아주 뛰어나다고 자부한 의미의 호칭입니다. 이러한 호에서 보듯이 그는 매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고, 어느 면에서는 ‘똘기’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광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탁오가 남긴 저술은 매우 많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2권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들 책 제목이 그 자호(自號)만큼이나 심상치 않습니다. 하나는 『장서(藏書, 감추어 둘 책)』이고 다른 하나는 『분서(焚書, 태워버릴 책)』입니다. 이상한 이름의 책이지만 두 권 다 그가 살아생전, 즉 명나라 말엽에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는 『분서』 서문에 자신의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네 종류의 책을 썼다. 그 중의 하나가 『장서(藏書)』이다. 그 책에서 상하 수천 년의 역사에 대한 시시비비를 논했다. 그 내용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감추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산 속에 감추어, 후세에 자운(子雲)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주1)


이탁오가 남긴 저술은 매우 많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2권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들 책 제목이 그 자호(自號)만큼이나 심상치 않습니다. 하나는 『장서(藏書, 감추어 둘 책)』이고 다른 하나는 『분서(焚書, 태워버릴 책)』입니다. 이상한 이름의 책이지만 두 권 다 그가 살아생전, 즉 명나라 말엽에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는 『분서』 서문에 자신의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 했습니다.


이탁오(李卓吾, 1527-1602)의 본명은 임재지(林載贄)입니다. 나중에 이지(李贄, 중국어 발음은 리즈)로 개명했지요. 임씨 성을 가진 집안 출신인데 성씨와 이름을 모두 그렇게 바꿨습니다.


‘탁오(卓吾)’는 그 뜻이 ‘탁월한 나’, ‘뛰어난 나 자신’입니다. 스스로 만든 호(號)인데, 어떤 자료를 보면 자(字)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는 남이 만들어준 것입니다. 대개는 부친이나 선생님 등 윗사람이 만들어준데 ‘탁오’가 만약에 ‘자’라면 윗사람이 이탁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라.’라는 의미로 만들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스스로 지었기 때문에 그런 뜻은 아닙니다.


스스로 자존감에 넘쳐 자기 자신이 아주 뛰어나다고 자부한 의미의 호칭입니다. 이러한 호에서 보듯이 그는 매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고, 어느 면에서는 ‘똘기’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광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탁오가 남긴 저술은 매우 많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2권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들 책 제목이 그 자호(自號)만큼이나 심상치 않습니다. 하나는 『장서(藏書, 감추어 둘 책)』이고 다른 하나는 『분서(焚書, 태워버릴 책)』입니다. 이상한 이름의 책이지만 두 권 다 그가 살아생전, 즉 명나라 말엽에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는 『분서』 서문에 자신의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네 종류의 책을 썼다. 그 중의 하나가 『장서(藏書)』이다. 그 책에서 상하 수천 년의 역사에 대한 시시비비를 논했다. 그 내용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감추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산 속에 감추어, 후세에 자운(子雲)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주1)


‘장서(藏書)’란 ‘숨겨둘 책’이라는 뜻입니다. 『장서』의 내용은 중국 역사에 관한 것인데 그 내용이 어려우니 일반인에게는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자운(子雲)은 한나라 시대의 사상가이자 문장가인 양웅(揚雄)의 자입니다. 양웅은 『법언(法言)』, 『태현경(太玄經)』 등을 지었는데, 그 문장이 난해하면서도 고풍스러워 당나라 때의 고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탁오는 이런 대학자가 나와서 자기 글을 읽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장서』에 어떤 내용을 담았길래 그는 자신의 책에 대해 이러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까? 『장서』의 내용 일부를 소개해봅니다.


“유학자들이 출현하면서부터 뜻을 구하고 도를 이루려는 학문이 일어났다. 유학자 관료라는 무리도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 관료들은 학문을 한다고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학문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학문의 방향을 잃어버리기가 일쑤이기 때문에 그들의 발길은 학문의 영역에 닿지 못하여 끝내는 훌륭한 관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과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한 노릇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학자들이 문학을 이름 하여 ‘유(儒)’라고 하였기 때문에 무인(武者)들은 문아하지 않는 것을 일러 무(武)라고 하니, 문과 무가 이로부터 나뉘게 되었고, 무신(武臣)이 나타나게 되었다.”(주2)


유학자들과 유학자 관료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학문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책을 출판하면 이렇게 공무원 집단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 되니 책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학을 비판한 것이 참으로 과격합니다. 그들이 세상과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원래부터 불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리가 된 이탁오 자신도 사실은 유학자 관리였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당시는 명나라(1368-1644) 말엽에 해당되는 시기로 유학자들이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탁오의 이러한 문장이 세상에 발표되면 문제가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책을 숨겨놓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기탄없이 써내려간 책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분서』에 대해서도 이렇게 소개합니다.


“또 하나는 『분서』이다. 이는 주로 친한 친구들에게 답장으로 보낸 편지를 모은 것으로, 여기에서 논한 내용은 근래 학자들의 폐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그들의 고질병을 비판한 것이 많다. 이걸 알면 그들은 반드시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태우려는 것이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다.”


이 책도 당시 사람들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비판하였기 때문에 위험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책 이름을 ‘태워버릴 책’, 즉 『분서』라고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분서』도 간행하였고, 『장서」도 부분적으로 간행하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는 『분서』 서문에서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태워야 할 책인데 더 이상 태우지 않게 되었고, 감춰야 할 책인데 더 이상 감추지 않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정말 그렇다면 책이름을 『분서』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물의 이름은 그 실상에 알맞아야하고, 사람의 말은 그 행실에 맞아야 한다.”는 말에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허허! 내가 어찌 알 수 있겠으며, 그대가 또한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태우려고 했던 것은 사람들의 귀에 거슬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요, 간행하려 했던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에 거슬리면 반드시 죽이려 할 것이니, 이는 매우 두려운 바이다. 그러나 내 나이 이제 64세가 되었다. 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라도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혹시 한명이라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러리라 기대한다. 그래서 간행한 것이다.”


책이름과 달리 『분서』도 간행했고, 『장서』도 간행했음을 말하고 그 이유로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라도 자신을 이해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기를 기대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을 가능성을 기대하고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모험을 한 것입니다.


『장서』가 전국 시대 이후 원나라 때 까지 중국 역사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주로 했다면, 『분서』는 그의 편지 글, 시문, 수필 등 다양한 문장을 수집, 정리한 것입니다. 전체 5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추가로 5권이 『속분서(續焚書)』라는 명칭으로 간행되었습니다.


『분서』의 집필 시기는 그가 은퇴하고 마성현(麻城縣) 용호(龍湖) 지선원(芝仙院)에 거주하고 있을 때 10여 년간입니다. 이때 쓴 편지며, 시, 수필 등을 모아 출판한 것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수호전』이나 『서상기』 등 속문학이 오히려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유교 경전인 6경(六經)이나 『논어』, 『맹자』 등은 위선자를 만드는 도학자들의 책으로 평가절하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부처이며 우리가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일이 바로 인륜이며 만물의 이치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주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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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지, 김혜경 옮김, 『분서Ⅰ』, 한길사, 443쪽 원문 참조. 이하 『분서』 관련 모든 번역은 이 책에 수록된 『분서』원문과 김혜경의 번역, 그리고 중국학@중심(www.sinology.org)의 『분서』 원문과 번역문 등을 참조함.


주2) 이 문장은 『장서』의 「세기열전총목후론(世紀列傳總目後論)」으로 이지 저, 김혜경 옮김, 『분서Ⅰ』, 37쪽에서 각주를 참조하여 인용함.


주3) 이지, 김혜경 옮김, 『분서Ⅰ』(권1 答周西嚴) 80쪽, (권1 答鄧石陽)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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