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의 생애와 사상
『분서』제3권에 이탁오 자신의 성품에 대해서 말하는 「고결설(高潔說)」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고결(高潔)’이란 성품이 고상하고 깨끗함을 말합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고상함(高)’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태어나면서 높고 고상한 것을 좋아했다. 높고 고상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만하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겸손해할 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지 못한다는 것은 저 권세나 부를 등에 업고 편히 지내는 놈들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한 패거리들이 아니라, 보통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좋은 점이나 착한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비천한 사람들이나 하인들일 지라도 좋고 착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경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자신은 고상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만하고 겸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낮추지 못한데, 그것은 권력자나 부자들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보통사람들, 특히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데 만약 비천한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인 경우에는 오히려 존경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은 휴머니스트로 인간다운 따뜻한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깨끗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또 태어나면서 깨끗한 것을 좋아했다. 깨끗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성격이 너무 급하고, 너그럽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을 넓게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널리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저 권세나 부에 아첨을 떠는 놈들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패거리들이 아니라, 진실로 조금이라도 착하고 좋은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를 들면 그가 높은 사람이건 왕이건, 귀족이건 상관없이 존경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자신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너그럽지 못한데 그것은 권력에 아첨하고 부자들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존경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자신을 잘 낮추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비어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넓다. 받아들이는 것이 넓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품은 점점 더 고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천하에서 자신을 가장 잘 낮추는 사람은 천하에서 고상함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높고 고상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자신은 자신을 잘 낮추고 마음이 비어있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넓고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고상하게 되고, 고상함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물론 부자들과 권력자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사람들까지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잘 받아들이기는 것은 사람들을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고르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은 행동이 없다. 그렇다면, 천하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은 천하에서 깨끗함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깨끗함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어제(2023년 10월 26일) 대구 범어도서관에서 이탁오에 대해서 강연을 했었습니다. 청중 가운데 한분이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탁오는 ‘사람들을 고르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앞의 말과 모순되지 않는지요? 스스로 ‘권세나 부에 아첨을 떠는 놈들’에 대해서는 포용하지 못한다고 하면서요.”
물론 그렇습니다. 이탁오의 말은 모순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려면 부자건 권력자건 모든 사람을 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탁오는 자신이 모든 사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말할까요?
아마도 부자나 권력자들은 극소수고 또 그들에게 아부하는 자들도 극소수이지만, 이탁오가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자신은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만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열린 가슴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런 점을 강조한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권력자나 부자에게 아부하는 그런 사람들까지 용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