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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Mar 19. 2024

계절별 수목 관리 - 나무의 한해 살이

지난해 가을의 이야기입니다. 

2년쯤 전에 대추나무 묘목을 텃밭 한쪽 비탈에 심었습니다. 대추나무 중에서도 개량된 왕대추나무라고 합니다. 대추나무를 심은 것은 원래 그 자리에 커다란 대추나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나무는 높이 4미터 정도에 직경, 즉 지름은 15cm 정도로 아주 잘 큰 나무였습니다. 해마다 추석 때쯤에는 달콤한 왕대추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다 따면 아마도 4, 5포대 정도는 될 정도로 많이 열렸습니다. 저는 한꺼번에 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자연히 떨어질 때까지 두고두고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땅의 주인이 나타나 다른 데로 옮긴다고 뽑아 놓고 경지작업을 하더니 말려서 죽여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땅을 제가 관리하게 되었는데 그곳을 보면 항상 그 대추나무가 생각나 그 자리에 왕대추나무를 심었습니다. 빨리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처음에는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2년쯤 지나 관심이 사라지고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가을에 잡초를 제거하면서 문득 그 대추나무가 생각났습니다. 아, 이 자리에 대추나무를 심었었는데 어디 갔지? 잡초 속을 뒤지면서 찾았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아니, 죽어서 잡초 더미 속에 있다가 썩어버렸나?' 하면서 허리를 폈습니다. 잠시 허리에 손을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그 하늘에서 대추나무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반가운지 "대추나무야! 너 어디 갔다 왔어?"하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추나무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1.5m 정도 자랐는데 덩굴풀이 그 목을 감아서 힘껏 지면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 위에 길게 자란 개나리 줄기 두 개가 무거운 몸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마치 대추나무를 책상으로 삼아, 책상 위에 발을 걸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대추나무는 구부정한 노인이 되어 그 밑에서 풀 속을 헤치고 있던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주인을 원망하고 있었을까? 급히 모든 것을 헤치고 풀어놓으니 그제야 몸을 좀 폅니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곧바로 줄기를 펴지는 못합니다. 그 대추나무를 보면서 묘목 관리가 엉망이었던 자신을 질책했습니다. 여름부터 저렇게 있었다면 대추나무는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창고를 정리하다 <월별 수목 관리>(주1)라는 자료를 봤습니다. 어떤 조경회사가 묘목을 보내면서 같이 보낸 팜프렛입니다. 그것을 읽고 여기에 계절별로 수목 관리 요령을 정리하면서 나무의 한해살이를 생각보고, 각오를 새롭게 다집니다.


< 봄날의 나무 관리> 

2월, 3월, 4월의 나무 관리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기준으로는 보통 3, 4, 5월이 봄이지만 나무는 농작물처럼 2월이 봄입니다. 추위에 얼었던 만물의 미묘한 변화는 2월 초 입춘(立春)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2월 중순의 우수(雨水), 3월 초의 경칩(驚蟄), 3월 중순의 춘분(春分)을 거치면서 봄날이 완연해지다가 4월 초의 청명(淸明)과 중순의 곡우(穀雨)를 거치고 봄이 끝납니다.


나무는 눈도 없고 귀도 없습니다. 사람이 만약 그런다면 다른 감각이 발달합니다. 그러니 나무는 조용히 한 곳에 서서 자연의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도록 발달했습니다. 지하의 뿌리에서 하늘의 이파리까지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동물들보다 빨리 감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와 호흡을 맞추려면 24 절기를 잘 기억해야겠습니다.


봄날의 나무 관리는 첫째 건조 예방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기후의 특징 중 하나로 봄가뭄이 있습니다. 뉴스에 봄가뭄이야기가 나오면 잘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을 주거나, 뿌리 부분에 잡초나 지푸라기를 덮어주어 습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그리고 3월에는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더 풍성한 꽃을 보려면 꽃나무뿌리 주변에 빙 둘러 구덩이를 파고 유기질 비료나 무기질 비료(화학비료)를 주면 됩니다. 과일나무도 이때 적절한 거름 주기(시비)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점은 병충해 방제입니다. 나무 상태를 잘 보고 병충해 피해가 있는지 겨울 동안 벌레들이 동면한 곳은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필요하면 나무별로, 벌레별로 방제약이 따로 있으니 조사해서 조치를 취합니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날씨가 완전히 풀리면 나무 옮겨심기를 합니다. 식목일이 4월 5일인 것은 나무 이식 작업을 하기에 좋은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묘목을 구해서 심는 것도 수액이 올라오기 직전인 이때가 가장 좋습니다. 수액이 특히 빠르게 올라오는 단풍나무는 4월 초에 옮겨 심고 낙엽이 떨어지는 다른 나무는 4월과 5월 중에 옮겨 심습니다.


< 여름날의 나무 관리 >

여름은 5월, 6월, 7월입니다. 절기를 보면 5월 초순의 입하(立夏)와 중순의 소만(小滿)이 있고 6월에 망종(芒種)과 여름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하지(夏至)가 있습니다. 그리고 7월의 소서(小暑)와 대서(大暑)로 여름이 끝납니다. 


소나무는 5월에 부드러운 새순이 자라면서 차츰차츰 가지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새순일 때 소나무 가치 치기나 순 지르기(적심)를 하면 좋다고 합니다. 순 지르기란, 줄기의 맨 위 생장점을 제거하여 그 아래에서 잔가지가 발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년 봄이나 그다음 해에 이식을 해야 할 나무는 5월 중에 뿌리 돌림을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뿌리 돌림이란 뿌리 주변을 돌아가면서 조금씩 파내려 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름이 되면 벌레들이 극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병충해 피해도 많아지니 병충해 방제를 이때 실시합니다.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벌레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그 상태를 잘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동시에 나무 아래에 잡초가 자라고 있는지, 혹시 덩굴풀이 올라오고 있는지 잘 봐서 제거해야 합니다. 특히 키 작은 묘목은 잡초와 덩굴풀이 최대 위협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여름철 거름 주기를 실시합니다. 산림용 고형복비(고체로 된 복합성 화학비료)나 농업용 화학비료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자연물로 만든 유기질 비료가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여름철 기후 특징은 장마와 태풍입니다. 나무도 이때가 위기입니다. 작년에 비가 많이 오니 비탈에서 잘 자라던 아카시아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졌습니다. 아카시아는 뿌리가 얕게 자라는 천근성 나무인데 땅이 물을 먹어 흐물흐물하니 바로 자빠졌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나무뿌리가 물에 잠겨 있지 않은지, 태풍에 나무가 휘어지거나 부러지지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미리미리 대비를 해 두는 것입니다. 기상 뉴스를 듣고 대처하는 것이 좋겠지요. 태풍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지 속기와 지지대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 가을철의 나무 관리 >

가을은 8월, 9월, 10월입니다. 절기를 보면 8월 초순의 입추(立秋), 중순의 처서(處暑)가 있고 9월에는 초순의 백로(白露)와 가을이 절정에 올랐다는 추분(秋分)이 있습니다. 그리고 10월, 차가운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있습니다. 


8월은 나무 다듬기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태풍이 지나가가 난 뒤의 가지 상태를 정리해 주고 새순이 늘어진 등나무 줄기는 짧게 잘라주고 향나무는 솎음 전정이 필요합니다. 9월부터는 나무 옮겨심기가 좋은 때입니다. 10월 말 혹은 11월 초까지 옮겨심기가 가능합니다. 옮겨심기가 가능하다는 것은 묘목을 구해서 심기가 좋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필요시 거름 주기를 실시합니다.


10월부터는 월동 준비를 합니다. 기온이 떨어지고 서늘해지면 나무는 성장이 정지되고 낙엽 활엽수는 이파리도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때 웃자란 가지들이나 불필요한 가지들은 잘라내서 다듬어 줍니다. 가을 전정 방법은 나무별로 다를 수 있으니 인터넷 등을 통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거기에 따라 전정 작업을 해줍니다.


< 겨울철의 나무 관리 >

11월, 12월, 1월의 나무 관리입니다. 11월은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있고, 12월은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과 겨울이 가장 깊다는 동지(冬至)가 있습니다. 1월에는 조금 춥다는 소한(小寒), 아주 춥다는 대한(大寒)이 있습니다. 이 시기만 지나면 봄이 지척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이 시기만 지나면 하루하루 지나면서 날이 풀립니다. 메뚜기도 한철이지만 겨울도 한철입니다. 그렇지요, 우리 인생도 한철일 뿐입니다. 


나무에게는 겨울에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추위이고 다른 하나는 폭설입니다. 내한성이 약한 나무 예를 들면 배롱나무(백일홍 나무)나 란타나는 뿌리와 가지를 잡초나 짚, 부직포, 비닐 등으로 잘 보호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파리가 많은 상록수는 눈이 많이 내릴 경우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가지가 부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을 털어주거나 그전에 미리 가지치기를 해두면 됩니다. 


나무는 겨울에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겨울잠을 잡니다. 그렇다고 뿌리를 마르게 두면 버티지 못하고 죽습니다. 겨울에도 땅이 어느 정도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합니다. 겨울 눈이나 비는 이런 나무들에게 꼭 필요하며 단비와 같습니다. 겨울 동안에 나무 아래에 나뭇잎이나 지프라기 혹은 마른풀을 덮어주면 거름도 되고 습기도 보호하고 좋습니다. 수세가 약한 나무는 뿌리 위에 화학비료인 산림용 고형 복비를 한두 개 묻어 주거나 잘 발효된 오줌과 똥 등 유기질 비료를 뿌려 주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잠을 자면서도 뿌리는 쉬지 않습니다. 동물들이 잠을 자면서도 심장이나 호흡기 등 내부기관이 쉼 없이 움직이는 것과 같습니다. 뿌리는 곧 다가올 봄날을 위해서 쉬지 않고 영양분을 빨아들입니다. 신비로운 나무의 한해살이입니다.


주1) <월별 수목 관리>, 키움원예조경(www.kiwoom011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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