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의 생애와 사상
친구 공약곡은 이탁오의 부인 황의인에 대해서 이렇게 전합니다.
하루는 이탁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자네와 한 가지 상의할 것이 있네. 나의 선조․ 증조부․증조모께서 돌아가신 지 50여 년이 지났다네. 그런데 아직 고향 땅으로 유해를 모시지 못했네. 가난해서 장지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이번에 조부를 고향으로 모셔가지 못함으로써 거듭 미풍양속을 어기게 되면, 불효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을 걸세. 사람의 자손 된 자로서, 부모를 편하게 하는 것이 효도이지, 좋은 땅을 골라 자기만 위하고 조상의 유골이 노천에 드러나 비바람을 맞게 하는 것이 효도라는 말은 듣지 못했네. 하늘의 도는 신명스러우니, 결코 불효를 저지른 사람에게 길한 땅을 남겨 주려고 하지 않지 않겠나. 그러면 나의 불효의 죄는 속죄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니 무척 걱정된다네.
이번에 고향에 돌아갈 때 반드시 위로 3대(代) 조상의 유해가 고향 땅에 돌아가 편히 쉬시게 하고 싶네. 임시로 집안 식구들은 하내(河內)에 있게 하여, 부의금(조부상으로 받은 부의금을 말함-필자)의 반을 가지고 밭을 사서 경작하며 먹고살게 하고, 내가 나머지 반을 가지고 돌아가서 처리하면 일을 마칠 수 있을 것 같네. 다만 집사람이 내 말을 따르지 않을까 염려될 뿐이라네. 내가 들어가 설득할 테니, 그래도 혹시 듣지 않으면 자네가 이어서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하네.”
이탁오는 공약곡에게 이런 말을 한 뒤에 안으로 들어가 부인을 거듭 설득하였습니다. 부인 황의인이 말했습니다.
“그건 결코 옳지 않은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저의 어머니께서 연로하신데, 과부로 사시면서 저를 지키고 키우셨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잘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울면서 저를 그리워하시어, 두 눈이 안 보이게 되셨을 정도랍니다. 만약 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필시 더 이상 살지 못하실 것입니다.”
부인은 이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이탁오는 정색하고 돌아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인은 끝내 남편의 뜻을 어길 수 없음을 알고, 눈물을 거두며 안색을 고치고 이렇게 작별의 말을 했습니다.
“그래요, 좋아요! 다만 저희 어머니께 나는 별 탈 없이 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 머지않아 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드려 주세요. 이장하는 일 잘 마무리되도록 힘쓰시고, 저는 돌아가지 못해도 원망하지 않겠어요.”
이탁오는 행장을 꾸리고, 밭을 사서 갈아먹으면서 살고 있으라고 부인에게 전하고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해 크게 흉년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마련해 주고 간 밭에서 거둔 수확이라고는 겨우 피 몇 곡(斛) 뿐이었습니다. 큰딸은 따라다니며 오랫동안 고생을 해보았기 때문에 밥을 먹듯 피를 먹으며 견디었지만, 둘째 딸과 세 째 딸은 결국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병에 걸려 연달아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고향에서 이것을 모르고 조상들의 산일을 하고 있었던 이탁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집안 조상의 유해를 고향에 모시는 일을 무사히 마침으로써 3대 동안 쌓였던 숙원이 마무리되었으니, 나는 더 이상 벼슬할 뜻이 없게 되었다. 고개 돌려 하늘 끝 저 먼 곳을 바라보면, 만 리 먼 곳에 있는 처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공성(共城)으로 갔다. 문에 들어서서 식구들을 만나니 너무도 기뻤다. 두 딸 소식을 묻고서, 그제서야 내가 고향으로 돌아간 지 채 몇 달이 안 되어 모두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남편을 마주하고 앉은 황씨 부인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안색이 바뀐 것을 보고 다시 예를 차리고 장사 지낸 일과 자기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이탁오는 친구 공약곡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나는 아내와 촛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네.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았지.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내의 복받치는 서러움을 대하면서 나는 짐짓 평정한 표정을 꾸미고 있었네. 하지만 나도 마음속으로는 애간장이 끊어질 것만 같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