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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May 11. 2024

5km 마라톤, 여섯 번째 참가기

4월 27일 토요일, 화창한 봄날, 양천구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제13회 양천마라톤대회입니다. 대회 본부에서는 일찌감치 배번호와 참가기념품으로 티셔츠를 보내왔습니다. 다른 마라톤 대회는 5km 참가비가 3만 원 정도 하는데 이 대회는 참가비가 15,000원입니다. 거기다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티셔츠까지 보내왔으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작년 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왔습니다. 그동안은 마라톤 당일 아침에 일어나 짐을 쌀 때, 마치 군대에서 100km 행군 준비를 하는 것 같은 무거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담도 되고 긴장되기도 하고 어쩔 때는 꼭 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의 부담이 없습니다. 이미 마라톤에 익숙해진 것이지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니 괜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 특별히 시간을 내서 마라톤 연습을 하지는 않지만 생활하면서 다리 근력을 키우는 활동을 일부러 많이 합니다. 최근에는 하체가 많이 단련이 되었으니 상체 운동을 따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팔 굽혀 펴기 운동이나 스쿼트 혹은 플랭크 운동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운동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길을 걷고 있는데 차량이 왼쪽 뒤에서 훅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오른쪽으로 1m 정도 몸을 날려 피한 적이 있습니다. 몸놀림이 가벼워진 것이 마라톤 덕분입니다. 오랫동안 길을 걷거나 야외 작업을 할 때도 이전보다 덜 피곤한 것이 튼튼해진 다리 근육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무의식 중에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홀가분했던 지난번 생각이 나서 그만두었습니다. 지난번 참가할 때는 가방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비가 올 것 같지도 않으니 우산이 필요 없고, 물이 필요하지만 물은 대회장에 가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외출용 양복바지도 입지 않고 그냥 츄리닝 복장으로 가방도 메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대회장으로 갑니다. 


마라톤 출발은 8시 30분입니다. 8시까지는 오라고 대회본부에서 문자가 왔었는데 늦었습니다. 5호선 오목교역에 내리니 이미 8시 반입니다. 5km는 맨 나중에 출발하니 아직 여유는 있습니다. 역을 나가 오목교 아래로 내려가 해마루 축구장으로 갑니다. 구청에서 하는 행사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잠바를 벗어 맡겨야 하는데 물품보관소가 곧바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늦게 와서 마음이 급한데 엉뚱한 곳을 알려주는 자원봉사자도 있었습니다. 이곳저곳 물으며 돌아다니다 결국 대회본부에 가서 물어보고 찾았습니다. 


오늘 참가자는 5,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행사를 위해 수많은 천막이 축구장을 빙 둘러 설치되어 있습니다. 50개는 넘는 것 같습니다. 물품보관소는 그 많은 천막 중 한쪽 구석에 있었습니다. 양천구청에서 주최하니 행사요원도 많고 관련 단체도 많습니다. 특히 가족 동반 참가자들이 많습니다. 한쪽에서는 팝콘과 뻥튀기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단체 별로 설치된 천막에서는 두부김치며, 김밥, 순대를 먹고 있습니다. 마치 축제분위기입니다.


갑자기 멀리서 하늘 위로 폭죽이 터집니다. 하프팀이 출발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니 출발신호가 폭죽입니다. 이제 10km 팀이 열을 지어 출발선으로 나갑니다. 그 앞에는 취타대가 아리랑을 연주하면서 대열을 이끌고 나아갑니다. 그런데 연주 가운데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대목이 묘하게 크게 들립니다. 10리란 조선시대에 5km 정도였으니,(주1) 10km 팀은 반환점을 돌면서 발병 날 수도 있다고 조심해서 뛰라는 말 같습니다.


하프 코스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염창교 다리를 지나 강서 가족피크닉장 앞에서 돌아오고, 10km는 염창교 다리 부근에서 돌아옵니다. 저는 취타대 뒤를 따라가지 않고 미리 출발선으로 가 5km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처음으로 맨 앞에서 5km를 뛰게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5km 참가자들은 반대방향으로 달린답니다. 결국 대열의 맨 끝으로 가 줄을 섰습니다. 


5km 출발 폭죽이 터졌습니다. 5km 참가자만 1,000명이 넘으니 앞에서는 달리지만 뒤에서는 한참을 걷습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출발선의 연단이 보입니다. 연단에는 양천 구청장 등 관계자들이 올라가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줍니다. 구청장도 5km를 같이 뛴다고 합니다. 마라토너들만 모이는 다른 마라톤 대회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연단을 지나자 천천히 걸어가던 참가자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오늘 목표는 반환점에서만 잠시 쉬고 계속해서 뛰는 것입니다. 기록 욕심은 최대한 자제하고 꾸준히 뛰는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뛰는 청년을 보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유독 튼튼한 하체를 가진 그 사람은 뛰는 것이 아니라 사뿐사뿐 폴짝폴짝 날아갑니다. 마치 개구리처럼 가볍게 통통거리며 달립니다. 나도 같이 그런 흉내를 내봅니다. 좀 더 높게 높게 뛰면서 달립니다. 그런데 하체가 덜 발달된 저는 무리입니다. 괜히 무리하다가는 반환점도 못 가서 발병 나겠습니다. 근육이 끊어질지도 모릅니다. 이내 포기하고 제 페이스대로 뜁니다. 발은 지면에서 조금만 들고 앞으로 조금씩 나가면서 사뿐사뿐 달리도록 주의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기온이 30도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반팔에 반바지 차림의 참가자들이 많습니다.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뛰니 이마에서 땀이 흐릅니다. 모자를 벗어봅니다. 마라톤을 겨울에 시작한 저는 이런 날씨는 처음입니다. 여름 마라톤은 이런 더위와 싸워야 하는 모양입니다. 팔소매를 걷고 손바닥을 펴고 달리면서 체온을 내려봅니다.


그런데 앞서 달리는 사람들 팀명이 재미있습니다. '민망해라'입니다. 조금 더 가니 '틈만나면'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교사들 모임의 참가자입니다. 학교에서는 '틈만 나면 공부하자.'일 텐데, 여기서는 '틈만 나면 운동하자.'라는 뜻 같습니다. '틈만 나면,' '틈만 나면,' '틈만 나면'을 읽으면서 계속 뜁니다. 문득 돌아보니 수녀님이 수녀복을 입고 뜁니다. 멀리 서는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참가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반환점입니다. 빙 돌아서 물 반컵을 마시고 다시 뜁니다. 이제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뛰어야 합니다. 그런데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워진 한쪽 벤치에 참가자들이 줄줄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들입니다. 반환점을 막 돌아온 동료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같이 뛰자고 합니다. 앉아 있는 아주머니들은 뛰지 말고 여기 앉아라고 손짓을 합니다. 서로 손을 잡고 걸어오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아빠 손을 잡고 오는 조그마한 딸, 엄마 손을 잡고 오는 남자아이들도 있습니다. 5km 참가자들 뒤에는 커플팀, 가족팀도 있다고 하더니 산보 겸, 나들이 겸 마라톤 대회입니다.


얼마쯤 달렸을까, 앞에 1km/4km라고 써진 팻말이 보입니다. 팻말의 방향이 묘하게 틀어져 있어서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1km인지, 아니면 4km를 달린 것인지 헷갈립니다. 1km 남았다면 다행이지만, 4km 남았다면 힘이 빠집니다. 이 더운 날에 1km와 4km는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설마 4km 남았을까' 하면서 뛰는데 다리 힘은 점점 더 빠집니다. 1km가 됐든, 4km가 됐든 뛰는 것은 마찬가지고 힘든 것은 똑같습니다. 지금 뛰고 있으니 그저 뛸 뿐입니다. 앞으로 일은 미리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쓸데 없는 생각은 지우고 지금만 생각해야겠습니다.


끝도 없는 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이제는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는데 드디어 멀리서 골인지점이 보입니다. 이번에도 마지막 200미터를 남기고 스퍼트를 해볼까, 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운영요원이 길을 막고 골인지점으로 바로 가지 말고 앞에 있는 운동장을 빙 돌아서 들어가라고 합니다. 앞에 펼쳐진 커다란 운동장은 야구장입니다. 야구공은 멀리 치면 축구공보다 더 멀리 날아갈 텐데..... 힘든데 너무도 큰 운동장입니다. 200미터 스퍼트는 포기합니다. 골인지점까지 가는 것만 해도 힘듭니다. 그래도 마지막 몇 미터가 보이자 힘껏 달려서 골인합니다. 시계를 보니, 31분 53초입니다. 켁켁거리며 잔디밭에 주저앉아 사방을 둘러봅니다. 참가자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난번 마라톤 기록은 37분, 그전에는 34분이었는데 이상합니다. 시간을 잘못 쟀는지, 마라톤 거리가 짧아졌는지, 아니면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서 오히려 속도가 빨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메달을 받고 간식을 한 봉지 받았습니다. 간식 종류도 많고 양도 많습니다. 음료수도 2개나 들어 있습니다. 구청에서 준비한 행사라 역시 먹을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메달 모양이 이상합니다. 둥그렇지 않고 1/4조각의 메달입니다. 앞으로 3년을 더 참가하면 매해 1/4조각씩 받아 4년 뒤에는 커다란 메달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메달 안의 양천구 지도도 1/4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또 참가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무대에서는 시상식을 시작했습니다. 하프코스와 10km 1등은 상금이 70만 원입니다. 5km는 15만 원입니다. 5km는 별로 수고한 게 없으니 상금이 적은 모양입니다. 커플팀, 가족팀, 단체팀도 각각 1등은 상금이 있습니다. 사회자는 국내 마라톤 대회 가운데에서는 가장 많은 상금이라고 합니다. 시상식 중간에 마술쇼도 있습니다. 마술쇼를 이렇게 가까이 보기는 처음입니다. 가까이서 보아도 감쪽같이 속는 것은 똑같습니다. 


대회장은 이제 본격적인 축제장이 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화살 던지기를 해서 맞추는 점심을 나누어줍니다. 다른 한쪽에는 음료수와 간식을 나누어 줍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놀이터도 있습니다. 각종 천막 안에서는 단체별로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먹습니다. 보건소에서도 나와서 건강 상담을 해주고 혈압을 재줍니다. 마라톤을 뛸 때는 혈압이 높아지니 혈압약을 먹는 사람은 꼭 먹고 뛰라고 합니다. 그동안 궁금했는데 좋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즘 소금물 먹는 건강법이 있다고 하면서 상담을 합니다. 그 상담을 듣고 있던 사람이 자기도 그런 건강법을 믿고 좋은 소금을 골라서 장기간 복용을 했는데 결국에 혈압만 높아졌다고 조언을 해줍니다. 


토요일 오전 마라톤 축제장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애써 등을 돌려 집으로 향합니다. 양손에는 축제장에서 받은 기념품, 커다란 장식 조명등 선물 그리고 간식으로 한 가득입니다. 큰 가방을 메고 올 걸 잘못했습니다. 안양천 길가에 붉은 철쭉 꽃이 떨어져 흥건히 흩어져 있습니다. 장미는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있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길목, 이제 곧 싱그러운 초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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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메트로신문기자,「조선시대 10리는 4km가 아니다」, <메트로신문>, 2010.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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