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날 여의도 산책 - 국회의사당과 민주주의

12.3 윤석열 쿠데타 #3

by 임태홍

오늘은 12월 14일 토요일. 느닷없이 계엄령이 선포됐다가 해제된 것이 벌써 10일 전입니다. 그 사이에 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일으킨 이번의 친위 쿠데타는 생각과 달리 철저한 준비가 있었고, 많은 국가 기관과 군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북한에 무인기를 보냈고, 북한 인민군 복장까지 준비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계획의 과감함이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계엄이 실패한 뒤에도 내란범들은 계속해서 내란을 재시도하였고 또 지금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쿠데타의 특이점이기도 하고 매우 심각한 점이기도 합니다.


지난주 토요일인 12월 7일,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가 있었습니다. 빨리 그를 탄핵하여 직무를 중지시켜야 하는데, 국힘당 의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은 표결에 불참하여 탄핵을 방해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저도 탄핵 응징에 작은 힘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국회 앞 시위에 참여했었다는 딸에게 물었습니다.

"추운 땅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 무섭다. 아빠는 고혈압이라서. 국회의사당만 계속해서 10바퀴 정도 돌아볼까 하는데, 괜찮을까?"

"사람이 엄청 많은 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아침 11시경 이번 계엄 사태로 눈에 익은 국회의사당 주변도 구경할 겸 집을 나섭니다. 날씨가 조금 누그러졌는데도 기온은 영하 1도, 체감온도는 영하 4도입니다. 오후에는 영상 2도, 밤에는 다시 영하 3도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옷을 두껍게 여러 겹으로 입고 두꺼운 장갑도 찾아 끼었습니다.


여의도 가는 126번 버스를 타고 남대문까지 갔는데 여의도까지는 인파가 많아 못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히 중간에서 내렸습니다. 거리에는 택배노동자들 100여 명이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남대문로 한쪽 차선이 막혀 어수선합니다. 계엄령이 계속 유지되었더라면 이런 시위는 없었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이들 시위를 보고 새삼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끄럽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시민들에게 자기들 문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길거리가 조용히 침묵해 있는 것보다는 이런 분위기가 좋습니다. 사람 사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른 사람들의 근심과 고민, 고통과 괴로움을 함께하고 그들의 주장에 관심을 주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냐면 같이 사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여차하면 나의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사건 때, 세월호 침몰 사고 때, 그리고 이태원 사건 때 자기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댓글로 유가족을 조롱하고 비웃고 패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가 독재를 찬동하고, 군인통치를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버스로는 국회 앞까지 못 간다고 하니 지하철로 이동을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여의도에 들어가면, 점심은 어떻게 먹지? 일단 여기에서 먹고 들어가야겠습니다. 한진빌딩과 롯데백화점 사이 남대문로 7길 로 들어가니 작은 식당들이 많습니다. 골목에 청국장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습니다. 8,000원짜리 식사. 맨 오른쪽 반찬은 부추무침인데 청국장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을지로 입구에서 2호선을 타고 당산역까지 갔습니다. 당산역 가는 길에 전철 바깥으로 멀리 떨어진 여의도의 국회의사당이 보입니다. 주변 건물들이 압도적으로 높으니 의사당 건물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당산역에서 내려 9호선으로 갈아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첫 번째 전철은 못 타고 그다음에 오는 전철을 타고 국회의사당 역으로 가서 내렸습니다. 경찰의 안내를 받아 인파를 빠져나가는데 30분은 걸린 것 같습니다. 왕복 10차선인 국회대로에는 달리는 차량은 없고 대신 커다란 깃발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갑니다. 화물연대 깃발도 보이고 이러저러한 회사들의 노조 깃발도 몇 개 보입니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국회의사당 정문으로 갑니다. 그리고 서강대교 쪽을 향해 산책을 시작합니다. 벌써 시간은 오후 2시. 2시간쯤 뒤인, 오후 4시경에 국회안에서 탄핵소추 찬반투표가 있는데 그전까지는 산책을 마쳐야겠습니다. 10번 돌기는커녕 부지런히 걸어야 한두 번 돌겠습니다. 거리 건너편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이번에는 끝냅시다. 탄핵핑, 내란핑, 와이프 지켜핑" 시진핑 같은 윤석열이라는 뜻입니다. 거리 한쪽에 경찰에서 제공한 화장실이 있습니다. 아직도 계엄 상태였으면 경찰이 시민들에게 이런 시설을 제공할 리도 없고, 오늘 이렇게 여의도 대로에 사람들이 모일 수도 없겠지요. 화장실 앞, 현수막에 "정치검찰 해체! 윤건희 정부 탄핵 추진을 선언합니다!"라는 글귀가 써져 있습니다.


국회의사당.png

국회의사당은 부지는 위와 같이 삼각형으로 생겼습니다. 각 변의 거리는 약 1.5km입니다. 총 4.5km이니 한 바퀴 도는 데는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서강대교 쪽으로 100미터 정도 걸어가다 보니 왼쪽으로 국회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국회 도서관은 몇 차례 와 봤고 인근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 여의도를 몇 차례 왔었지만 오늘처럼 시간을 내서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국회도서관을 이용할 때마다 궁금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왜 국회에 도서관이 있지? 우리나라 최고의 도서관 중 하나인 그런 도서관이 국회에 있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당시 생각난 것은 국회의원들이 법조문을 만들 때 아무래도 이러저러한 자료를 참고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시민들의 지성 위에 성립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서관은 민주주의 양성 무기고"(주 1)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상식적인 교양을 갖춘 시민이 많아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 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회에 최고로 잘 갖추어진 도서관을 두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은 시민 개개인입니다. 주인 노릇을 잘하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 공무원, 국회의원, 법관, 군인 등 머슴들이 주인을 무시하고 속여먹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중요한 결정은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대리인(대통령, 국회의원 등)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책임 있는 시민이 되려면 많이 배워야 합니다.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교양도 쌓아야 합니다.


미국 건국의 주역 중 한 사람이자,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국민 사이에 일반적인 지식이 없다면 자유는 보존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이자,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은 "지식의 발전과 확산이 진정한 자유의 유일한 수호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스스로 통치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식이 주는 힘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주 1)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무지한 국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국회도서관 건물을 보며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면서 헌정회 앞을 지났습니다. 서강대교 남단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니 도로 양쪽에 주차 차량이 많습니다. 중간에 경찰차도 보입니다. 교통경찰이 타고 온 버스 같은데, 계엄령이 계속 유지되었더라면 무서운 버스입니다.


이번 계엄사태를 거치면서 여의도 국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국회의사당이라고 하면 여의도의 삭막한 풍경과 함께 넓은 도로, 많은 차량, 그리고 한없이 넓은 국회부지, 국회 앞의 수많은 건물이 어우러져 어쩐지 정이 안 가는 곳이었습니다. 또 여의도 국회의사당하면 박정희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이미지와 겹쳐져 호감이 안 갔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것이 의사당 건물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번 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의사당 건물을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국회 6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보이는 도로는 여의도의 서쪽에 있는 도로라고 하여 여의서로라고 합니다. 앞에 보이는 나무들은 벚나무입니다. 매년 4월경에 이곳에서 벚꽃축제가 열립니다. 국회 앞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곳에 오니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늘은 아주 맑아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멀리까지 뻗은 도로 옆 인도가 아주 깨끗합니다. 인도 오른쪽은 한강 고수부지입니다. 부지 폭은 약 150m 정도 되고 강물은 그 동쪽에서 흘러갑니다. 여의도는 한강 한가운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지도를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샛강을 경계로 한강 남쪽에 바짝 붙어 있습니다. 마치 포구에 정박한 나룻배 같습니다. 정박한 포구는 영등포입니다. 한강 한가운데에는 밤섬이 있고 건너편에는 마포가 있습니다.


국회의사당은 1975년에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원래는 남산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1961년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이곳으로 정했습니다.(주 2) 제9대 국회 때부터 처음 사용했는데 이때 국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유신정우회 의원들이 1/3을 차지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달리 군사독재가 아닙니다. 남산에 세워질 국회는 청와대와 마주 보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강조할 수 있었는데, 박정희는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이곳 여의도로 국회 터를 옮기고 의사당을 짓도록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국회의사당은 군사독재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었습니다. 당시 국회 앞의 넓은 도로는 5.16 광장이라고 불렸습니다.

국회 5문에 도달했습니다. 왼쪽으로 커다란 건물이 보입니다. 굵고 긴 기둥이 여러 개 서 있는 것을 보면 국회의사당 건물 같은데 둥근 돔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안내도를 살펴보니 국회의사당이 맞습니다. 너무 가까이서 보니 지붕 위의 돔이 안보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국회의사당은 마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같기도 합니다. 앞에 보이는 기둥이 8개인데 파르테논 신전도 그렇습니다. 옆줄 기둥이 6개가 보이는데 파르테논 신전은 17개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양말산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산이 있었다고 합니다. 해발 190m 정도 되었다고 하니,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해발 150m로, 높은 도시라는 뜻입니다.


이곳의 오른쪽에는 주차장이 보입니다. 국회에 오는 사람들이 이곳 주차장을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12월 3일 밤, 어떤 사람은 계엄령이 발동되자 급히 이곳으로 차를 몰고 와서 주차를 한 뒤에 국회 앞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면서 이곳 국회의사당을 보면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 파르테논 신전으로 가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국회의사당 기둥이 8개로 정해진 것은 우리나라 팔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기둥의 합이 모두 24개인 것은 24 절기를 뜻하며 그 의미는 24 절기 내내, 즉 일 년 내내 국정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도 전면 기둥이 8개이고, 네모난 기둥의 모양이 각진 국회의사당의 기둥과도 비슷합니다. 조선시대에 경회루는 궁중 연회장으로 임금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모여 연회를 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입니다. 국회 건물이 그런 연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지는 않았겠지요.

국회 5문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세모꼴 국회터의 꼭짓점 부근에 왔습니다. 여기서 의사당 사진을 찍었습니다. 높이 자란 나무들 사이로 국회운동장이 보이고 그 뒤에 국회 건물이 있습니다. 국회 정문에서 보면 완전히 반대쪽 모습입니다.


여기에서는 둥근 돔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 둥근 돔은 처음 국회의사당을 설계한 사람들은 계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지붕으로 제안을 했는데, 당시 외국의 국회 건물을 시찰한 국회의원들이 돔을 올리는 것이 더 보기 좋다고 해서 올렸다고 합니다.(주 2) 박정희는 한 층 더 높이 지어라고 요구했습니다. 권위적으로 보이게, 국민이 권력자들의 위세를 느끼도록 지은 것입니다.


1975년 당시 정치가들은 아마도 미국 국회의사당, 독일 국회의사당, 일본 국회의사당 등 서구 열강의 국회의사당에 돔이 올려져 있어 그것을 모방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 독일, 일본 그리고 프랑스 국회의사당은 건물 전면에 높은 기둥이 여러 개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국회의사당도 그것을 따라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양의 민주주의와 제도, 문화를 들여와 모방하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아테네의 전성시대, 민주주의가 꽃피울 때 유명한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는 자기들의 민주 정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주 3)


"우리의 정치제도는 이웃나라들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 남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에 우리 정체를 민주정치라고 부릅니다."


민주주의는 아테네가 처음 실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란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를 위한 정치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아테네가 민주정치를 행하고 있을 때 그리스 안의 다른 도시국가(폴리스)들은 대부분 왕정을 실시했습니다. 아테네도 처음에는 왕정이었는데 나중에 귀족들이 다스리는 귀족정, 그리고 과두정으로 바뀌고 민주정으로 발전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이때의 자신들의 민주주의 정체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위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정치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는 과두정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왕들이 다스리는 마케도니아로 통치권이 넘어갔습니다. 민주주의는 아테네 시절 한 때의 정치 형태였을 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에 쿠데타가 성공했으면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왕정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김정은 일가처럼 말입니다. 통치자에게 왕정은 지상 최고의 매력적인 정치제도입니다. 삼권 분립이 필요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거도 무시하거나 아니면 형식적으로 치르고 자기가 넘겨주고 싶은 사람에게 자기의 권력을 넘겨줄 수도 있습니다. 자기 부인을 여왕으로 옹립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헌법을 폐기하거나 수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쿠데타를 시도했겠지요.


민주주의 정치는 아테네 시대 이후 한 때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다시 주목된 것은 중세가 지나고 종교 개혁 이후입니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결과, 권력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국민들이 통치자에게 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만이 인간이 가장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그 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고,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강력한 현대적인 국가들이 탄생하였습니다. 대한민국도 그런 나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조선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서양인들이 발명하고, 발전시킨 민주주의를 버리고 다시 임금을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중에 어느 누가 조선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지금까지 누려온 자유를 어떻게 포기할까요? 조선 시대는 40% 가까운 백성이 노비였습니다. 특권층에 속한 소수 양반을 제외하면 나머지 90% 이상이 평민, 즉 상놈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고 문화적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은 모두 이 민주주의 덕분입니다. 모두가 양반이고 모두가 특권층이고 모두가 귀족 대우를 받으니까 신이 나서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입니다.

국회운동장을 지나 여의서로를 좌측으로 빙 돌아 식물원이 있는 국회 4문까지 왔습니다. 계엄이 발동되던 날 밤, 사람들이 국회 4 문쪽으로 군인들이 진입해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지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에 와보니 국회의사당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샛강 아래쪽으로는 계엄군들이 대규모로 숨어 있기도 좋은 곳입니다. 그날 실지로 이곳으로 군인들이 몰려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 계엄군들은 오월 광주에 들어간 군인들과는 달리 폭력적이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초반 기세 싸움에서 시민들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다시 국회 앞 광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멀리 소통관과 의원회관이 보입니다. 앙상한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봄에 벚꽃이 피면 다시 걸어봐야겠습니다. 소통관의 모습이 특이합니다. 피자 박스를 네 개를 살짝 뒤틀리게 쌓아 놓은 모습입니다. 그 옆의 의원회관은 네모 반듯한 10층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구내식당이 있다는데 다음에 이용해 봐야겠습니다.(주 4)


오른쪽은 한참 아래로 샛강 흐릅니다. 샛강 폭은 130m 정도인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강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하천 부지에 버스들이 가득 서 있습니다. 대형 버스 주차장입니다. 지방에서 시위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이 버스에서 줄줄이 내립니다. 경찰 버스도 여러 대 세워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도로 위쪽으로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경찰과 군인들이 계엄 당일 곧바로 국민 편으로 돌아서서 천만다행입니다. 오늘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는 경찰을 보니 마음이 편하고 든든합니다. 국회 앞의 넓은 도로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인파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오늘 국회의사당 순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일단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오늘 오후 5시경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었습니다. 탄핵 통과 소식을 듣고 국회 앞 시민들이 환호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녁 늦게까지 돌아가지 않고 국회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윤석열을 감옥으로!"라는 팻말도 보입니다. 멀리 국회의사당의 모습이 밝게 빛납니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혹시 국회의사당이 세종시로 이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국회의사당 세종시 분원 설립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자체를 옮기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안에는 동상들이 몇 개 있습니다. ‘애국애족의 군상’, '평화와 번영의 상' 등이 그것입니다. 이 동상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거나 비웃는 말들이 많습니다. "한복을 입었는데 서양인의 모습이다, " "큐피드인 것 같다, " "그리스 신화 인물 같다." 등등. (주 5) 이번에 계엄령이 발령되던 날 밤, 국회 정문 앞, 도로 앞, 그리고 국회의사당 입구 안쪽과 바깥쪽에서 계엄군과 맞섰던 시민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많이 봤습니다. 그중에는 우리 민주주의를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국회의사당 안팎 곳곳에 진열해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정신이 계엄군 앞에 선 시민들의 모습에 아주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광주 도청의 조감도입니다. 정식 명칭은 광주 전남도청 구본관입니다. 이 건물은 그동안 끊임없는 철거시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복원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복원 조감도입니다. 이번 계엄령 사태를 겪으면서 1980년 광주 도청과 2024년 서울 국회의사당 사이에서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이질감이란 사건의 결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광주 도청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였고 국회의사당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80년 광주 도청 사태가 평화롭게 끝났다면 2024년 국회의사당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국회의사당에서 사태가 불행하게 전개되었다면 80년 광주 도청이 되었을 것입니다. 계엄이 계속되었다면 계엄군은 물러가지 않았을 것이고 국회의원들과 저항한 시민들은 간첩으로 몰렸을 것입니다. 서울은 80년 광주가 되었겠지요.


동질감이란 광주에서 시민들이 군인들과 맞선 모습이 국회 앞 시민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구호도 비슷합니다. "계엄군 물러가라." "전두환/윤석열 물러가라." 거의 똑같습니다. 다만 광주에서는 시민들이 총을 들었습니다. 군인들이 먼저 발포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군인들이 발포를 했다면? 서울시민들은 그냥 그 총탄에 맞고만 있었을까요? 역시 똑같이 총을 들었을 것입니다. 광주나 서울이나 "우리가 주인이다"라는 정신은 같기 때문입니다. 이번 국회 앞 시민들의 강인한 모습에서 그런 정신을 봤습니다.


12월 3일 계엄의 밤 시민들의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또 한 가지 강하게 느낀 점은 2024년의 시민들이 1980년의 시민들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강했다는 점입니다. 광주 시민들은 어찌 보면 좀 더 무기력했습니다. 왜냐하면 박정희 군사독재 정치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고, 장막에 가려진 전두환 신군부가 두려웠으며, 그들이 보낸 살인 부대가 너무도 잔인하고 극악무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휴대폰도, 카메라도, 인터넷 중계도 없었습니다. 국내외 기자들도 극소수였습니다.


반면에 여의도 의사당 앞의 시민들은 떳떳했고 활기찼으며 아주 아주 용감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에서 우리 사회에 광주의 경험이 얼마나 튼튼하게 자리 잡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국회의사당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문득 국회의사당 건물이 12월 3일 밤을 거치면서 광주 도청이 담고 있던 민주 정신의 세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사당에 묻어 있던 군사정권의 더러운 피가 시민들이 뿌린 민주주의의 성수로 깨끗이 씻겨나간 느낌도 들었습니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국회의사당 밑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군사쿠데타라는 이무기가 시민들에 붙잡혀 두동강 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고 끊임없이 경계해야 되지만,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이미 강철같이 단단해졌습니다. 내일이 기대되는 대한민국입니다.



주 1) 이재선, 도서관은 민주주의 양성 무기고, <도서관닷컴>, 2025.1.10.

주 2) 백창민, 박정희 한 마디에... '기형'이 된 국회의사당, <오마이뉴스>, 2020.3.19.

주 3) 정기문, <14가지 테마로 즐기는 서양사>, 푸른역사, 2019, 47쪽.(투퀴디데스, 전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숲, 2011, 169쪽.

주 4) 김미영, '정쟁의 도가니'에서도 밥연기는 피어오른다, <이데일리>, 2023.10.8.

주 5) 김효정, 실소 자아내는 국회 조형물... 이래도 되나, <법률방송>, 20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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