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윤석열 쿠데타 #2
조국 대표와 한동훈 대표의 긴급 회견
국회 안에 들어간 조국혁신당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회견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중적인 야당지도자가 또 한 명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가 헌법을 유린하는 범죄자임을 스스로 자백했습니다. 절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에게 경고합니다. 전국의 군인들, 군사령관들 군대 동원하지 마십시오. 군을 동원한 순간 그대들은 반역자가 될 것입니다."(주 1)
윤석열 대통령은 조국 대표와 그의 가족을 온갖 트집을 잡아 난도질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계엄을 일으키고 그를 주요 체포 대상자에 올렸습니다. 조국 대표의 회견에서 통쾌함을 느꼈습니다. 윤석열 검찰 정권을 보면서 검사가 그렇게 초법적인 존재이고 무서운지 몰랐습니다. 자기 가족의 죄는 철저히 감싸주고 남의 가족은 죽일 듯이 달려들어 죄를 만들어가는 악질적인 검사들. 다른 나라 검사들도 이렇게 극악무도한가? 육사의 뿌리가 일본 제국주의에서 시작되었듯이 검사의 뿌리도 일본이라서 그런가?(주 2) 윤석열과 그 패거리들을 보면서 도대체 검사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존재들인가? 뭐 하는 사람들인가? 검사는 법률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인가? 그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윤대통령에 대한 조국 대표의 호통과 경고의 말을 듣고 속이 후련했습니다.
여당 대표 한동훈도 국회에 나타났습니다. 순간 윤석열의 이번 계엄이 자기들 내부적으로도 합의되지 않았고, 균열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헌법 질서 내에서 국민의 힘이 앞장서서 문제를 바로 잡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안심해 주십시오. 저희가 반드시 이런 위법한 계엄선포를 바로 잡겠습니다. 저희가 지금 국회로 이동합니다."(주 3)
여당 차원에서 바로 잡겠다는 것은 계엄령이 여당과도 미리 협의하지 않고 일어난 일인가?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쿠데타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인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한동훈 대표의 이런 발언은 국힘당의 많은 국회의원들이 동의하지 않은 것이고, 결국 대표 개인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럼 한 대표는 왜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되었을까? 그는 당일 군 관계자에게 국회에 가면 목숨이 위험하고 가족들도 위험하니 모두 대피시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주 4) 계엄령의 총칼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계엄 반대의 입장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국힘당 의원들은 계엄령이 자기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엄 해제를 위한 국회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순간, 그들은 내란범의 편에 서서 달콤한 전리품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포고령에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포고령을 보고서도 어떻게 계엄령을 찬성할 수 있는지요? 국회의원으로서 자기들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 것입니다.
주 1) 비상계엄에 국회로 달려온 한동훈 첫마디!!, <뉴스tv조선>, 2024.12.3.
주 2) “한동훈, 계엄날 국회 가면 목숨 위험하단 전화 받아” <국민일보>, 2024.12.19.
주 3) 조국 "비상 계엄령, 그 자체가 범죄고 군사 반란, <노컷>, 2024.12.4.
주 4) 124년의 검찰권력, 일제가 낳고 보안법이 키웠다, <한겨레>, 2019.10.5.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군인들
전체적으로 상황이 계엄령 해제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와중에 상황이 급변하여 긴장된 순간이 발생하였습니다.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입구로 진입을 시도하던 군인들이 이제는 방향을 바꿔 옆에 있는 유리창을 부수고 의사당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보며 어떤 청년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외칩니다. 어떤 사람은 태극기를 높이 들고 쫓아가 유리창 앞에 막아섰습니다.(주 1) 이들이 국회로 들어가 어떤 일을 벌일지 두려웠습니다. 막무가내로 국회 안의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고 불을 끄고 사고를 일으키거나 주요 인사들을 사살할지도 모릅니다. 가슴이 콩알 만해진 저는 유리창 한쪽을 깨고 그곳으로 군인들이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무서웠습니다. 국회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투표를 준비하고 있었고, 아직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주 1) ‘서울의 봄’ 사운드트랙에 국회 봉쇄 결정적 7장면 싣다, <KBS시사>, 2024.12.14.
국회 안으로 달려오는 군인들
창문을 열고 들어간 계엄군들이 국회안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곧바로 국회의원들이 있는 로텐더 홀로 향했습니다.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총구에서는 조준경의 파란 불빛이 반짝였습니다. 머리에는 야간투시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위압적이었지만 다행인 것은 곤봉을 높이 치켜들지 않았고, 총에 단검을 꼽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월 광주의 계엄군과는 달랐습니다. (주 1)
누군가 유리문 안쪽에서 이들을 향해서 소화기를 뿌렸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계엄군은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무리해서 유리문을 격파하고 진입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이들은 의사당 입구 앞에서 진입을 시도하면서 사람들과 실랑이하던 군인들입니다. 그때부터 소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한 군인들입니다. 이들이 만약에 다른 나라 용병들이었다면, 만약에 AI로봇이었다면, 만약에 80년 5월의 공수부대였다면 로텐더 홀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겠지요.
하지만 이들의 등장 화면에서 잠깐 볼 수 있었던 로텐더 홀 안의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계엄군을 맞이할 대비태세가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계엄군과 맞선 유리문 바로 뒤에는 바리케이드가 있었고 그 뒤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휴대폰이나 사진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뒤에는 또 수백 명, 아마도 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여기저기 둘러 서 있었습니다. 본회의장 입구 바로 앞에는 의원 보좌관 등 수백 명이 서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주 2) 어떤 군인이 이런 상황에서 감히 총을 빼 들 수 있겠습니까? 어떤 지휘관이 발포 명령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숨 막힌 순간이었지만 무섭지 않았습니다.
주 1) 소총 무장' 군인들, 창문 깨고 진입...아수라장 된 국회, <YTN>, 2024.12.4.
주 2) 국회 계엄군 진입 상황, 4일 새벽 현장 다시보기, <뉴스토마토>, 2024.12.4. 비상계엄사태 긴박했던 국회 안 상황 - 2024년 12월 5일 방송, <MBC PD수첩>, 2024. 12. 9.
의원들을 기다리는 국회의장
군인들이 로텐더 홀 바로 앞까지 온 상황에서 국회는 아직 표결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총 300명 중 1/2인 150명의 정족수를 채울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또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가슴이 조마조마한 가운데 의사당 안에 있던 국회의원들도 의장에게 재촉을 하니, 의장이 "일단 좀 계세요. 국회의장도 마음이 급하죠."라고 답을 합니다.
그러다 군인들이 밀고 들어와 버리면 어떻게 되지? 전기를 꺼버리면? 지금 바로 계엄 해제를 찬성하는 사람 손을 드세요, 하고 사진을 찍으면 안 되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국회의장은 바쁠수록 절차를 지켜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체크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장도 바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겠지. 보고를 시시각각으로 받고 있고, 앞에 놓인 모니터 화면으로 국회 안팎의 상황도 잘 체크하고 있겠지라고 상상하면서 쿵쾅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기다렸습니다.
문득 19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이 생각났습니다. 새벽 3시경에 시내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광주 시내로 진입했습니다. 약 25,000명이었습니다. 제3공수부대 77명, 제7공수부대 201명, 제11공수부대 36명 총 314명의 특공대원들이 광주 도청을 둘러싸고 사방에서 조용히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20사단 병력 1,495명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그 뒤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주 1)
이때 도청 방송실에서 21살의 여대생 박영순이 급하게 시민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모두 도청으로 나오셔서 계엄군이 총칼에 죽어가고 있는 학생 시민들을 살려 주십시오. 우리 형제자매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도청을 끝까지 사수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주 2)
급한 절규의 목소리는 사방에 걸린 스피커를 통해 광주의 새벽하늘을 찢으며 널리 울려 퍼졌습니다. 모든 것들이 숨을 죽이고 시간도 멈춰 섰습니다. 적막한 공포의 시간이 흐른 뒤, 수천발의 총알이 일제히 도청 건물을 향해 쏟아졌습니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내리치듯 수많은 섬광으로 도청 일대가 환해졌습니다. 공수부대의 유혈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총소리가 콩 볶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이런 소리는 1시간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날이 밝자 도청 앞에서 계엄군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고 정리했습니다. 시민들 추정으로 그날 밤 도청을 지키던 항쟁 시민군은 5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도청 안에서 70여 명이 사망하고 연행자는 3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엄사는 훨씬 더 적은 인원을 발표했습니다.(주 3) 나머지 시민들의 행방은 아직도 모릅니다.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고,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말한 것만 믿어야 했고, 어용 신문들이 발표한 것만 진실이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그때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진실을 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끊임없이 막히고 왜곡당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상황은 국내외 방송들이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백만 명,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회 의사당 문 바로 바깥에는 수백 명의 국회직원, 보좌관, 그리고 기자들이 계엄군을 막고 있습니다. 의사당 바깥, 그리고 국회 정문 바깥에는 1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국회로 달려와서 국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의도 주변, 서울 경기도 일대에 사는 수많은 시민들이 이 밤중에도 눈에 불을 켜고 국회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곧 국회로 달려올 것입니다. 1980년 광주의 시민들이 어둠 속에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소망했던 장면입니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간첩도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반란군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라." 도청의 항쟁 시민군이 세상을 향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말이었습니다. 2024년 오늘 밤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외쳤던 바로 그런 말들입니다. 그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쳤습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전날 5월 26일 오후 5시경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오늘 설령 진다고 해도 영원히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는 뉴욕타임즈, AP통신, 요미우리 신문, 독일 NDR 방송, 볼티모어 선, 그리고 쥐트이체 차이뚱의 외신 기자 20여 명과 국내 기자들이 있었습니다.(주 4)
기자회견이 끝나고 윤상원은 도청 안의 어린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집에 돌아가십시오. 가서 여러분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들의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계엄군이 밀려오기 전에 어서 도청에서 떠나기 바랍니다."
계엄군 측에서는 시민군의 무장해제와 무기반납, 그리고 경찰의 치안회복 등을 요구하며, 밤 12시 이후 무력진압을 한다고 최후통첩을 보내왔습니다. 계엄군은 공수부대가 시민들에게 자행한 무자비한 과잉진압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학생들 일부가 나가자 윤상원은 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전두환 살인집단은 이 시각 현재 우리를 죽이기 위해 탱크를 앞세워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야수와도 같이 야음을 틈타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도청을 비워줘야 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저들에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에 임합시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뭉쳐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불의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남깁시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마지막 저녁을 먹고 각자의 자리로 가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일부는 목욕을 하고 집에서 준비해 온 하얀 내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꺼이 그 제단의 제물이 될 준비를 하였습니다.
주 1) [5.18 특집] 그 날 5.27, <KBS뉴스 전북>, 2018.5.18.
주 2) 5.18 가두방송 박영순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주십시오", <오마이TV>, 2019.5.18. "5.18 민주화운동/전개", <나무위키>. 김동규, "박영순, 5.18 마지막 방송 진행자", <브런치스토리>, 2020.12.23.
주 3) 김상웅, 1980년 5월 27일... 죽은 이들과 죽인 자들, <오마이뉴스>, 2019.11.25.
주 4) 김상웅, 도청 본관에서 마지막 내외신회견 열어, <오마이뉴스>, 2019.11.20. 안재성, 임을 위한 행진곡 이야기-광주항쟁의 빛 윤상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6.02.26.
계엄령해제 요구안 가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계엄해제 찬반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투표는 순식간에 완료되어, 찬성 반대 의견이 전면의 대형 모니터에 표시되었습니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190명이 참여하여 190명 모두 찬성을 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결의안 통과를 발표하고 의사봉을 내리쳤습니다. 땅! 땅! 땅!
이 순간 의사당 안에서는 환호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의사당 문 앞을 막고 있었던 로텐더 홀의 보좌관과 기자들, 국회직원들 사이에서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박수 소리와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주 1) 의사당 바깥, 유리문 앞에서도 박수소리가 들립니다. "해제됐다! 해제!" 이 혼란한 순간에 다시 자리 잡은 군인들에게 어떤 시민이 외칩니다. "이제 가. 이게 아니잖아!". 사람들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야! 호!..... 가결! 가결!... 만세! 만세!.... 계엄 해제됐다. 해제됐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윤석열을 탄핵하라! 탄핵하라! 탄핵하라! 윤석열은 퇴진하라! 퇴진하라!" 시민들은 대치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가! 가! 빨리 가! 고생했다. 끝났다."라고 하면서 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란히 서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계엄군들에게 외칩니다. "법적으로 계엄 해제됐기 때문에 당신들은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법을 어기고 있는 거야 지금." (주 2)
또 시민들은 계단 아래에서 퇴각하는 계엄군을 향해 외칩니다. "윤석열을 체포하라. 국가반란죄 윤석열을 체포하라." 그런데 군인들은 아직도 뭔가 미련이 남아 있는지 국회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모여 서성이고 있습니다. 어떤 시민이 외칩니다. "국회를 나가세요!. 문이 열렸으니 국회를 나가세요! 지금 나가세요....... 여기는 경찰이 있으니까 나가세요..... 지금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었으니 나가세요. 안 나가면 굉장히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문을 열었으니까 빨리 나가세요. 지휘관이 누구요? 여러분들 지금 이러면 굉장히 위험해요." 국회 직원인 것 같습니다. (주 3)
국회 정문 바깥에서도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깃발을 흔들고 계엄이 해제됐다고 환호합니다. 광장에는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습니다.(주 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이 노래는 광주 항쟁의 꽃이라 불린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그와 함께 광주에서 야학운동을 했던 들불야학의 꽃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찬가였습니다. 오늘 이 밤,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며 누구보다도 기뻐하실 분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제단 위에 청춘의 붉은 피를 뿌리고 산화한 민주열사들입니다.(주 5)
김동수 열사! (22세, 조대 전자공학과 3학년 재학 중이었습니다.)
김종연 열사! (19세,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재수하고 있었습니다.)
이강수 열사! (19세, 재수생이었습니다.)
박성용 열사! (17세, 조대부고 3학년 재학 중이었습니다.)
유동운 열사! (19세, 한신대 2학년 재학 중이었습니다.)
안종필 열사! (16세, 광주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문재학 열사! (16세, 광주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주인공입니다.)
윤상원 열사! (29세, 전남대졸, 들불야학 교사였으며,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습니다.)
민병대 열사! (20세, 양계장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홍순권 열사! (19세, 재수하고 있었습니다.)
박진홍 열사! (21세, 표구사 점원이었습니다.)
문용동 열사! (26세, 호남신학대 4학년 재학 중이었습니다.)
서호빈 열사! (19세, 전남대 2학년 생이었습니다.)
박병규 열사! (20세, 동국대 1학년 재학 중이었습니다.)
이정연 열사! (20세, 전대 상업교육과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김종철 열사! (17세, 자개공이었습니다.)
오세연 열사! (24세, 회사원이었습니다.)
박용준 열사! (YWCA 신협 직원으로 항쟁기간에 발간된 <투사회보> 제작자였습니다.)
유영선 열사! (27세, 회사원으로 전대 2학년 휴학 중이었습니다.)
양동건 열사! (45세, 광주고교 수위였습니다.)
김성근 열사! (31세, 목공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금재 열사! (29세, 한약방 종업원이었습니다.)
염행렬 열사! (16세, 금오공고 2학년 생이었습니다.)
조행권 열사! (38세, 노동자였습니다.)
조일기 열사! (35세, 식당에서 주방장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명숙 열사! (14세, 서광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주 1) 국회 계엄군 진입 상황, 4일 새벽 현장 다시 보기, <뉴스토마토>, 2024.12.4.
주 2) 국회 본청 앞 계엄군과 대치하던 시민들, 계엄 해제 소식에 환호, <hani21>, 2024.12.4. 국회 본관 진입 시도 계엄군 맞서 몸싸움 시민들,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에 환호, <미디어오늘>, 2024.12.4.
주 3) 긴박했던 공수부대 투입부터 철수까지...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상황 풀영상, <서울신문>, 2024.12.4.
주 4) 권우성, "계엄해제에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시민들", <오마이tv>, 2024.12.4. "12월 3일 국회의사당 앞, 시민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한신학보>, 2024.12.4.
주 5) 김상웅, 1980년 5월 27일... 죽은 이들과 죽인 자들, <오마이뉴스>, 2019.11.25. 노벨문학상 수상 특집 다큐 '한강이 온다', <엠빅뉴스>, 2024. 12. 17. 김용희, 또박또박 새긴 5·18 항쟁의 글씨 41년 만에 ‘박용준체’로 부활한다, <한겨레>, 20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