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월 중순, 버스 정류장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올라타는 사람들, 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 그 가운데 어떤 소녀가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습니다. 아가씨라고 하기에는 조금 앳되고 여자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성숙한 고등학교 2, 3학년 생 정도의 소녀. 키는 160cm 정도. 약간 살이 쪄서 조금은 통통한 소녀입니다. 등 뒤에 가방을 메었고 오른쪽 어깨에도 작은 가방을 단정하게 맸습니다.
바람이 조용히 불어오니 봄날 햇살을 받으며 조그만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하얀 꽃잎들은 지나가는 차들을 쫓아 도로에서 이리 저리 몰려다닙니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거리는 분주합니다. 달리는 택시들 위로 멀리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건물 위의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햇볕을 받아 반짝입니다.
갑자기 물티슈 한 장이 떨어졌습니다. 노란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하얀색 티슈. 그 오른쪽에 버스 정류장의 안내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표지판 위쪽에는 노선표가 달려 있고 아래쪽에는 조그만 안내판이 달려 있습니다. 그 아래에 또 한 장의 작은 안내판이 지면 가까이 달려 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저와 물티슈 사이에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소녀의 손이 앞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그녀가 물티슈를 떨어뜨렸습니다.
저 물티슈를 어떻게 하지? 집어 들고 다가가서 이걸 길바닥에 버리면 안 된다고 말해줘야 되나?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마음 약한 소녀라면 울겠지? 울지는 않아도 마음속으로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지. 버스 한 대가 도착했습니다. 고개를 내밀고 번호를 확인합니다.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탑니다. 잠시 혼잡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소녀와 물티슈 그리고 저만 남았습니다. 소녀는 손바닥을 펴서 물티슈를 향해서 뭔가 주문을 외우듯이 말합니다. "오지 마! 오지 마! " 그 표정과 입술의 움직임이 그렇습니다.
버스가 또 한대 들어옵니다. 고개를 내밀어 버스 번호를 확인합니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오늘따라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물티슈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아, 어디 갔지? 소녀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소녀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는데 손바닥을 앞으로 향한 모습이 마치 장풍을 일으킬 듯합니다. 아니, 바람을 일으켜 물티슈를 멀리 날려 보냈을까? 차들이 달리는 도로를 살펴봅니다. 물티슈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물티슈는 무게가 있어서 그렇게 쉽게 날아가지 않을 텐데. 다시 소녀를 쳐다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대낮에 물티슈가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소녀의 몸이 앞으로 약간 기울어져있습니다. 발 뒤꿈치가 살짝 들려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뒤쪽으로 움직였다가 또다시 앞으로 조금 기울어집니다. 앞 뒤로 조용히 중력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소녀의 손은 여전히 사라진 물티슈를 향하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장풍을 쏘는 듯합니다. 그런데 소녀의 얼굴이 붉어집니다. 얼굴 곳곳에 난 여드름이 조금씩 볼록볼록 튀어나옵니다. 얼굴 전체가 빨개지면서 여드름 10여 개가 더욱더 두드러졌습니다. 입으로는 뭔가를 부지런히 말합니다. 주문일까? 혹시 그 손바닥으로 물티슈를 증발시켜 버렸을까? 도대체 물티슈는 어디로 갔을까? 하늘을 쳐다봅니다. 나뭇잎 사이로 구름과 햇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시 버스가 한대 왔다가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소녀는 버스를 탈 생각이 없는지 정류장에 들어오는 버스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손바닥은 여전히 정류장 앞의 보도블록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손바닥을 향하고 있는 곳은 이제 정류장 표지판 아래에서 핀 노란 민들레 꽃입니다. 얼굴이 빨개진 소녀는 여전히 뭔가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몸이 뜨거워집니다. 앞으로 뒤로 조금씩 흔들리는 소녀의 몸이 뭔가 중력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 저 꽃도 없애버리는 건가? 하늘 위를 살펴봅니다. 구름 주변에 혹시 UFO라도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공포심이 들었습니다. 저 소녀의 손바닥이 나를 향하게 되면? 나도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고개를 내밀고 번호를 확인합니다. 오늘은 유독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그때 그 소녀 바로 뒤에 서 있던 여성이 소녀에게 말을 겁니다. "차가 왔다." 엄마입니다. 소녀가 앞으로 발걸음을 떼니 엄마가 뒤 따릅니다. 소녀는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몸이 흔들립니다. 버스 계단에 한 발을 올렸습니다. 한 손은 버스 문을 잡았습니다. 엄마가 뒤에서 소녀 몸을 받쳐줍니다. 한 계단 올랐습니다. 다시 한 발을 윗 계단에 두고 올라서려고 힘을 씁니다. 엄마가 버스계단을 올라가면서 뒤에서 힘껏 밀어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타자 버스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합니다.
제가 기다리던 차도 뒤이어 왔습니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데 사라졌던 하얀 물티슈가 나타났습니다. 노란 보도블록 위에 그대로 있습니다. 버스표지판의 지지대에 가려서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그 옆에 노란 민들레 꽃이 흔들거립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어느새 맑은 하늘. 아무것도 없습니다. 버스에 타고 카드를 찍고 그리고 뒤로 멀어져 가는 정류장 표지판을 바라봅니다. 엄마와 딸은 일요일 아침에 소풍 가는 길이었을까? 소녀는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있었을까? 그러고보니 오늘은 소풍가기 좋은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