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선물 증류주 - 연금술과 연단술

by 임태홍

2025년 9월 18일 목요일, 2025년 길 위의 인문학 <세계사를 움직인 술> 세 번째 강의가 예산군립도서관에서 있었습니다. 강사 선생님은 이병우 우아포인트연구소(브런치스토리 작가) 대표입니다. 강의제목은 <연금술과 증류주>로, 강의 내용은 1. 연금술과 알코올, 2. 다양한 증류주의 출현, 3. 대항해 시대와 증류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 강의도 48쪽에 달하는, 많은 강의자료가 제공되었습니다.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듣고, 강의자료를 참고하면서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1) 증류주란 무엇인가 - 증류주의 종류


저는 어렸을 때, 즉 1965년 경에,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시골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아빠의 고향인 영광 법성포 친척 집에 갔었는데 집안에 시루를 놓고 술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그것이 술을 증류하는 소줏고리라는 것을 몰랐고, 그 술이 토주 또는 토종이라 불리는 독주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때 본 것은 술에 불을 대니 불꽃이 타오르고, 아주 독하기 때문에 그 술을 마신 어른들은 얼굴을 몹시 찌푸리며 안주를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성 토주는 알코올 도수가 50도에서 60도 사이입니다. 지금은 전통이 끊어진 우리나라 전통 술입니다. 그런데 이번 강의를 통해서 알게된 것은 이 '전통 술'의 역사가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독주는 아랍에서 개발된 증류주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증류주란 양조주, 즉 발효주를 증류한 술입니다. 알코올 함량은 40%~60% 사이입니다. 반면에 양조주는 약 3%~15%입니다. 증류주의 장점은 장기간 보관을 해도 잘 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코올 도수 25도 이상이 되면 효모나 다른 미생물들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양조주는 쉽게 변질되고 상합니다. 미생물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증류주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수업시간에 재미있게 들은 여러가지 증류주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합니다.


<리큐어 Liqueur>

증류주에 향료나 약초, 과일, 감미료 등을 더해서 독특한 풍미를 더한 술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에 약초를 넣은 것이 시초였습니다. 십자군 원정 중에 아랍 세계에서 증류기가 도입되자 수도승들은 증류주에 야생 허브를 넣어 불로장수의 액체(elixir) 제조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술에 독특한 향기나 맛을 추가하는 것은 안주 없이 술을 마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안주를 곁들이는 우리의 술 문화와는 다른 점입니다.


이 리큐어는 나중에 매디치가를 통해서 프랑스로 전해졌습니다. 1533년 피렌체 메디치가의 카테리나 데 메디치(Catherine de Medici, 까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스 왕자 앙리(후에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결혼하였는데, 그때 함께 들어온 이탈리아 요리사들과 카테리나는 당시 손으로 음식을 먹던 프랑스 궁정에 포크를 소개하고, 생선을 먹을 때는 화이트 와인을, 고기를 먹을 때는 레드와인을, 그리고 식후에는 리큐어를 마시도록 하는 등 이탈리아 요리 문화와 식문화를 전파했습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의 발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요리 문화를 자랑하지만 사실은 이탈리아의 영향이 크며, 그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압생트 Absinthe>

19세기에 '화가들이 사랑한 술', '녹색의 요정'이라고 불리는 에메랄드 빛깔의 술이 압생트입니다. 고흐, 모네, 드가, 피카소, 모파상, 헤밍웨이 등이 특히 좋아했습니다. 향쑥을 아니스 등 15 종류의 허브와 섞어서 발효시킨 뒤 증류한 술입니다. 향쑥은 이파리와 가지 끝을 강장제, 해열제, 구충제 등으로 사용하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65도∼79도 정도이며, 물로 희석해서 마시는데 '투존'이라는 성분 때문에 마시면 환각작용이 일어납니다. 현재는 환각작용이 없는 개량품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위스키 whiskey>

맥아를 사용하여 양조한 뒤에 그 술을 증류한 것이 위스키입니다. 스카치 위스키, 아이리시 위스키, 조니워커, 버번위스키 등이 유명합니다. 12세기 전부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증류기술이 전해져 다양한 위스키가 제조되고 번창했습니다. 특히 그곳은 맑은 물과 토탄(이끼가 퇴적되어 탄화된 것)이 많아 위스키 제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독립 후에 동쪽 해안에서 서쪽 내륙으로 이동한 정착민들은 곡류를 증류한 위스키를 선호했습니다. 버번위스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켄터키주 목사 엘리야 크레이그(Elijar Craig)가 옥수수를 원료로 하는 증류주를 제조했는데 그는 안쪽이 불에 탄 나무통에 위스키를 보관하여 독특한 색과 향기를 내는 위스키를 생산했습니다. 참고로 1920년에 미국은 알코올로 인한 가정 폭력과 범죄가 빈발하여, 그것을 방지하고 나아가 빈곤 해결을 목표로 금주법을 발령하여 주류의 제조와 판매, 운송을 전면 금지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밀주 제조와 비밀 주점이 성행하고 알 카포네 등 마피아가 득세하는 계기가 되어, 대실패로 끝나고 1933년에 폐지했습니다.


<브랜디 brandy>

일반적으로는 포도주를 증류한 술을 말하는데, 사과나 배 등 과일의 발효액을 증류한 술도 브랜디에 포함합니다. 참나무 통 숙성 과정을 거쳐 풍미를 향상시키는데, 알코올 도수는 35~60%가량입니다. 꼬냑(Cognac)이나 아르마냑(Armagnac)은 프랑스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브랜디의 한 종류이며, 식사 후에 마시는 술로 널리 소비됩니다.


<보드카 vodka>

러시아의 대표적인 술로, 1810년에 약제사 이반 스미르노프(Ivan Smirnov)가 활성탄 여과법을 고안해 만들었습니다. 밀과 보리 감자 등을 원료로 발효하여 증류한 다음, 자작나무 활성탄으로 여과한 술입니다. 무색, 무취의 투명한 술입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재원의 30%가 보드카 주세였으며, 러시아 혁명정부가 보드카 제조 판매를 금지하자 주조업자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여 해외에서 보드카를 제조, 판매했습니다. 현재는 미국이 보드카 대량 소비국입니다. 보드카의 장점은 위스키와 달리 자체 향이 없어, 칵테일 만들기에 좋습니다.


<럼주 rum>

사탕수수로 설탕을 뽑아낸 뒤에 그 남은 찌꺼기를 발효하여 증류한 술입니다. 카리브해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의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럼주는 17세기, 캐리비안 군도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처음 제조되었는데, 가격이 싸면서도, 도수가 높고 품질이 좋아 카리브해 인근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노예상들에게 럼주는 브랜디와 함께 화폐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서안에서 흑인노예를 싣고 떠난 무역선은 서인도제도에 도착하여 노예들을 건네고, 그 대가로 그곳에서 설탕을 싣고 북미의 뉴잉글랜드 식민지와 유럽으로 운반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 럼주를 싣고 아프리카로 보내 흑인 노예 대금으로 지급하였는데, 말하자면 삼각무역입니다.


럼주의 인기는 1644년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널리 확산되었으며 미국독립 전쟁기간 중에도 중요한 음료로 취급되었습니다. 영국 해군은 1655년부터 맥주 대신에 럼주를 지급했습니다. 1785년에는 영국에서 럼주에 레몬이나 라임주스를 첨가하여 맥주에 없던 비타민 C를 보충하여 나중에(1805년)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 함대를 격퇴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합니다.


1764년, 영국은 식민지 미국에 설탕 조례를 제정하여 프랑스 식민지산 당밀의 밀수를 단속함으로써 영국과 식민지 미국의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럼주는 이렇게 미국의 독립에도 큰 기여를 한 술이었습니다. 그러나 1807년, 영국에서 당밀 수입금지령을 내리고, 1808년에는 노예거래 폐지령이 내려져, 럼주를 기반으로 하는 대서양 노예무역 시스템이 붕괴되고 미국의 럼주 제조시대도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데킬라 tequila>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증류주로 알코올 농도는 38~52%입니다. 멕시코의 할리스코주에 위치한 테킬라(Tequila)라는 지역의 이름에서 따온 술입니다. 1518년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5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인구 2,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했습니다. 당시 아스테카는 용설란으로 양조한 술(풀케 pulque)을 마셨는데 스페인 군인들이 가져간 증류기로 그 술을 증류한 술이 데킬라입니다. 데킬라는 독성물질인 메탄올이 일정 정도가 들어 있어야 정품 술로 인정받습니다.


<진 Gin>

진은 네덜란드의 해외 진출과 관련하여 개발된 술입니다. 1649년 라이덴 대학의 Sylvius 교수가 두송 열매(juniper berry)를 알코올에 담근 뒤 증류해서 새로운 술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진(gin)입니다. 재료로 사용된 두송 열매는 이뇨작용에 효과가 있어 진은 위장을 보호해 주는 약용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진'이란 네덜란드어 게네베르(genever)를 영어로 축약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이후 19세기 초에 연속식 증류기가 나온 뒤에 새로운 진이 개발되었는데 그 술이 London Dry Gin입니다. 명예혁명(1688-1689) 뒤, 네덜란드 윌리엄 3세(재위 1689-1702)가 영국왕으로 추대되어 왔습니다. 이때 그는 네덜란드의 술 게네베르(진)를 영국에 소개하고 장려하였습니다. 진은 차나 우유보다도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하여 서민들이 마시는 대중술로 크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도 물보다 진을 더 많이 마시게 되고, 결국 영국이 진의 대국이 되었습니다. 식수가 오염되었을 경우, 우유를 마셔야 할 이이들에게도 진을 마시게 할 정도였습니다. 1736년 영국의회는 진의 과음으로 사회문제가 발생하자 세금을 인상하는 등 억제책을 내놓기도 했으나 15년 후에 서민들의 반발로 폐지하였습니다.


1830년에는 진에 쓴 것을 더해 마시는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었으며 이런 방법으로 마티니 등 칵테일이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진 칵테일은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었을 때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 때문에 "진은 네델란드인이 만들어, 영국인이 세련되게 하고, 미국인이 영광을 주었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아시아의 증류주>

① 아락(arrak) : 쌀, 당밀, 야자를 발효시킨 뒤, 증류한 술. 알코올 45∼60도. 이슬람과 인도의 교역으로 탄생.

② 한국 소주 : 고려말, 몽고를 통해 전래. 몽고군 주둔지였던 개성, 안동, 제주에 제조장 존재.

③ 일본 쇼츄 : 좁쌀로 만든 독주. 태국 아유타 왕조로부터 오키나와를 통해 에도시대 일본 전역에 전파.

④ 중국 백주 : 원나라 때부터, 수수 등을 발효시켜 황주를 만들고 그것을 증류한 술. 인도 아샘 지역에서 사천 운남 지역을 거쳐 몽고의 중국으로 전래. 아라길주, 혹은 아라키 주라 불림.



2) 중국의 연단술과 유럽의 연금술


중국의 연단술(煉丹術)은 아무래도 한국사람들에게 친근하니 이것부터 먼저 정리해 봅니다. 연단(煉丹)이란 단약(丹藥)을 '불리다(煉)', 혹은 '달구다(煉)'는 뜻입니다. 단약이란 불사약을 말하며 그것을 먹으면 불로장생을 하고 신선이 된다는 약입니다. 이런 단약은 수은, 납, 유황, 진사(붉은 모래) 등 광물과 약초로 만듭니다. 혹은 황화수은(丹砂)과 금을 섞어 만든다고도 합니다. 갈홍(葛洪, 283~343년경)이 지은 <포박자>에 납과 금, 수은을 섞어서 단약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한 연단술은 도교의 영향으로 당나라 때 크게 유행했습니다. 당시 많은 황제들이 수은과 납 등 중금속이 들어간 단약을 먹고 중독이 되거나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단약을 먹는 외단(外丹)의 방법 외에 내단(內丹)의 방법도 있습니다. 내단은 수련을 통해서 신선이 되는 방법, 즉 정신적인 수련을 통한 방법입니다. 이러한 연단술은 중국에서 도교나 음양오행의 사상과 결합하여 기공, 명상, 양생 등 다양한 수련 문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중의학과 본초학의 발전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연단술은 당나라 말엽에 화약이 발명되는데 큰 기여를 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송나라에 이르러 차츰 쇠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연단술은 중국의 과학사 연구자 조지프 니덤(Joseph Terence Montgomery Needham)에 따르면 불로불사의 영약 개념과 함께 8세기 경에 이슬람 사회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는 750년 경에 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고 압바스 왕조가 성립되었는데, 그 세력이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중동, 북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까지 영토가 확장될 때였습니다. 수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가 열렸으며, 동서 교류의 중심지로 다양한 학문과 지식이 발전했습니다. 751년 압바스 왕조와 당나라가 벌인 탈라스 전투는 이슬람세계가 당나라에서 종이 제조 기술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연단술도 이 시기에 전해졌습니다.


유럽의 연금술(煉金術)은 납이나 수은, 유황 등 금속이나 광물을 달구여 금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즉 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 연금술입니다. 그런데 연금술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물질적인 목표 외에 정신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엘릭서(elixir)라고 하는 약을 만드는 것입니다. 엘릭서는 한 모금 마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거나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신비로운 약이며, 불로장생의 만병통치약입니다. 혹은 엘릭서와 동일시되기도 하는 '현자의 돌(철학자의 돌)'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 돌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필수 촉매제입니다. 아무래도 물질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정신적인 요소도 포함된 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금술의 핵심적인 방법은 물질을 변환하고, 정화하고, 해체하고 응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자의 돌'은 모든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이 집약된 결정체이며, 불로장생의 약인 엘릭서(elixir)를 만드는 능력이 담긴 물질이기도 합니다. 연금술사들은 물질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도 고난을 통해서 고귀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 사물이 진화할 때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도 함께 진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들도 스스로 금처럼 진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연금술의 핵심 사상은 '헤르메스 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체가 우주 전체의 축소판이며, 우주와 인간은 서로 상응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정화를 통해 영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연금술로 지상의 죽음과 부활, 윤회를 터득한 뒤에 점성술로 우주 천체의 신비를 통해 신들의 마음과 운명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연금술사들은 신성한 마법을 통해 인간은 신과 합일하는 경지로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쩐지 서양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고 동양 친화적인 사상 같습니다.


이러한 연금술은 서양에서 근대 화학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의학과 약학의 발전을 낳았으며 증류법 등 실험 기술이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연금술은 비과학적인 신비주의로 빠지기도 했으나 서양의 철학과 예술, 문학에 큰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3) 아랍인이 고안한 증류기


인간은 원숭이 상태였을 때 이미 술을 발견하고 술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대단한 점은 자연상태에서 발견한 술을 그 상태로 만족하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더 좋은 상태로 개선하고 발전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인간 동료들끼리 그 정보를 나누어 널리 공유하고 인류 전체의 자산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인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요즘 마시는 술은 과학적 발전을 거듭한 성과물입니다. 특히 19세기에 술의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1866년에 루이 파스퇴르라고 하는 프랑스 사람은 효모 발견하여, 술을 만드는 발효 과정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살균을 함으로써 장기 보관이 가능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1876년에 칼 폰 린데라는 독일 사람은 맥주 제조공정에서 온도를 제어할 수 있는 냉각 시스템 개발했습니다. 이로써 맥주는 계절과 기온에 상관없이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1883년에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이라는 덴마크 사람은 효모를 분리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덕분에 덴마크 맥주인 칼스버그가 탄생했습니다.


술의 역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커다란 혁명적 발명은 8세기에 아랍세계에서 만든 증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Jabir ibn Hayyan, 721-815)이라는, 이슬람의 연금술사이자 철학자는 증류기 아람빅(al-ambiq)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 증류기는 알코올의 비등점이 78도로 물보다 낮은 것을 이용하여 증기가 증류기 안에서 방울로 떨어져 떨어져 한 곳에 모이도록 한 것입니다. 당시는 향수를 정제하는데도 이용하고 연금술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증류기를 통해서 증류된 술은 스피릿(Spirits)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라틴어 어원 'spiritus'는 호흡, 영혼, 생명의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액체를 가열하여 발생하는 증기를 물질의 정수(essence) 또는 영혼(spirit)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 영혼을 다시 액화시킨 것이 바로 증류주, 즉 스피릿입니다.


하이얀은 증류기를 통해서 증류된 물질을 al kulhul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알코올(alcohol)이라는 말의 기원입니다. 하이얀은 독자적인 연금술을 제창했는데 그는 고체를 액체와 기체로 변하게 하는 증류야 말로 귀금속 생성의 열쇠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그는 유황을 남성의 원리, 수은을 여성의 원리로 보고, 보통의 금속을 귀금속으로 만드는 물질을 '알 이크셔(al-iksir)'라고 명명했습니다. 이것이 '현자의 돌'이라 불리는 엘릭시르(elixir)입니다.


증류주가 이슬람 세계의 아랍인들에 의해서 탄생하였으며 그것은 또 연금술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증거로 여러 가지 중요 단어들의 아랍어 기원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에 소개하였듯이 알코올(alcohol)은 아랍어 al-koh'l에서 유래하였으며, 증류기(alembic)는 al-ambiq에서 유래하였고, 연금술(alchemy)은 al-kimia에서 유래했습니다. 참고로 알칼리(al-kali), 알고리즘(al-gorithm), 연금약 엘릭시르(elixir) 등 단어도 아랍어에서 나왔습니다. 맥주가 처음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수메르 문명에서 나온 것을 생각해 보면 인류의 술 문화는 아랍인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 대학교의 의학교수이자 연금술사였던 아날드 데 빌라노바(Arnaldo de Villanueva, 1240-1311)는 아랍 의학 서적을 많이 번역했는데, 와인을 증류하여 브랜디를 제조하고 그 지침서를 저술했습니다. 그는 증류된 와인을 새로운 약이며 생명수이자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그 액체가 변하지도 않고 썩지도 않았기 때문에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나쁜 체액을 제거할 뿐 아니라 마음에 활력을 불어놓으며, 젊음을 지켜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한 술에 대한 지나친 평가라고 할 수 있는데 어찌 되었든 최고의 찬사입니다. 미생물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당시 사람들로서는 증류주가 신비한 액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5세기-15세기) 1347년에서 1370년 사이,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하여 전 인구 중 1/3인 2,500만에서 3,000만 명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당시 '불사의 신령한 술'이라고 하여 증류주라는 생명수를 마시면 페스트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 덕분에 증류주 마시는 것이 새로운 음주문화로 주목되어 광범위하게 전파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증류기(아람빅)로 증류된 새로운 술이 출현했는데 그것이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입니다. 브랜디는 '생명의 물(Eau de Vie)'로 불렸습니다. 또 그것을 혼(spirits)라고 부르고 불의 정기가 신체에 활기와 정력을 가져다준다고 여겼습니다. 증류주는 알코올 함량이 높기 때문에 불을 붙이면 불꽃이 일어나므로 술 안에 불의 정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스키도 어원을 쫓아가 보면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이시커 바허(uisge beatha)' 즉 “생명의 물”이라는 뜻입니다. 북유럽의 증류주 아크바비트(akvavit)도 생명수라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증류주가 생명수로 알려진 것입니다.


아랍세계에서 탄생한 증류기는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베리아반도로 전해지고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유럽의 위스키, 보드카, 진이 그 대표적인 산물입니다. 그리고 바닷길을 통해 동남아시아에 전해져 아락(arrack)이 탄생하였습니다. 아락은 스리랑카, 인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증류주입니다. 이 술은 코코넛 꽃을 발효시킨 수액과 사탕수수, 쌀, 또는 당밀 등의 다양한 원료로 만듭니다. 중국의 백주, 한국과 일본의 소주도 모두 아람빅의 영향을 받아 생산되었습니다.



4) 증류주가 지탱한 대항해 시대


대항해시대란 유럽을 기준으로 한 신항로 개척시대를 말합니다. 이탈리아의 제노바 사람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콜럼버스(1451-1506)가 1492년에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아 서쪽으로 항로 개척을 나갔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일이든지, 포르투갈 사람 바스쿠 다 가마(1460-1524)가 1497년 스페인 리스본을 출발하여 대서양과 아프리카 남해안을 거쳐 인도까지 항해한 일, 그리고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사 마젤란이 1519년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받아 일행을 이끌고 남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태평양을 가로지른 뒤에 필리핀까지 도달하여 지구를 한 바퀴 일주한 사건 등이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콜럼버스 등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뒤에 수많은 함선과 군함이 선원들과 군인 그리고 많은 선교사들을 싣고 세계 곳곳으로 항해에 나섰습니다. 대항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항해 시대에 술은 매우 중요한 필수품이자 화폐역할을 했습니다. 16세기에 영국 선원들은 매일 급료로 4-6리터의 맥주를 받기도 하고, 17세기 경 네덜란드 선원들은, 매일 9리터의 맥주를 받았습니다. 또 18세기 경 러시아 해군은 양동이 7개 분량의 술을 보수로 지급받기도 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뒤를 이어 네덜란드와 영국, 프랑스가 대항해 시대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의 제1해운 대국이었습니다. 주류는 그들이 취급한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항해 기간이 길어지고 뜨거운 기온의 적도를 지나게 되자 맥주와 와인의 부패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이 와인을 증류하여 알코올 도수를 올린 증류주 브랜디였습니다.


18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해양 활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때 캐리비안 군도와 브라질 지역을 중심으로 설탕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짐으로써 설탕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주요 교역품은 설탕과, 아라비아의 커피, 그리고 중국의 홍차였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인도산 면포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유럽으로 수출했습니다. 이러한 교역이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났으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400여 년 동안 약 1,000만 명 이상의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사탕수수 재배에 투입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탕수수로 설탕을 정제한 뒤에 남은 찌꺼기를 활용하여 만들어낸 럼주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거래되었습니다. 이 럼주는 브랜디와 함께 노예무역의 화폐로도 이용되었습니다. 증류주와 얽혀있는 놀라운 역사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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