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술 - 문화와 역사

by 임태홍

2025년 9월 25일 목요일 저녁, 예산 군립도서관에서 <세계사를 움직인 술> 네 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의 제목은 <한국의 술 문화와 전통주>, 강사는 광고홍보학 박사 이병우 선생님(우아포인트연구소 대표)이었습니다. 강의 주요 내용은 1. 한국의 음주문화, 2.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 3. 주류 시장과 전통주였습니다. 여기서는 선생님의 강의 내용과 자료 중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1. 한국의 술 문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소주>

이병우 선생님은 CNN에 게재된 뉴스 자료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10 things South Korea does better than anywhere else', 즉 '한국이 다른 어느 곳보다 잘하는 10가지'(Frances Cha, CNN, 2013. 11. 27)입니다. 한국이 잘하는 10가지 중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문화, 일중독, 신용카드 사용, 소개팅, 여자 골프, 화장품 문화, 성형수술, 온라인 게임 등 외에 '폭탄주 회식문화('Business Boozing')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소주에 푹 빠져 슬픔을 달랩니다. 많은 대기업들이 회식 문화를 억제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직장의 상사들은 여전히 팀원들을 끌어내 맥주에 소주나 위스키를 투하한 '폭탄주'를 실컷 마시도록 강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한국인들은 술을 취할 때까지 많이 마시기 때문에 진로소주가 2013년까지 11년 연속 세계 판매 1위 증류주 브랜드였다고 그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참고로, 2024년 가디언지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Soju : the most popular booze in the world.)도 소주입니다. 1위부터 6위까지의 술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자료: The biggest-selling spirits in the world, The Spirits Business)


1위 한국 진로소주

2위 미국 White Claw

3위 인도 McDowell’s Whisky

4위 인도 Royal Stag

5위 일본 산토리 -196

6위 한국 처음처럼


놀라운 순위입니다. 이렇게 한국 소주들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은 이유는 아마도 한 입에 털어 넣고 마시는 음주 습관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빠른 시간에 많이 마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회식문화>

우리나라의 회식(Hoesik) 문화가 유독 특이하게 보이는 모양인지 CNN은 2017년에도 'Drinking in south korea ; 7tips on handling a hoesik'(한국에서 술 마시기 : 회식에 대처하는 7가지 팁, 2017. 3.23)이라는 기사를 내놨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윗사람이 누군지 알아두라, 2) 술자리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줘라. 예를 들면 누군가 건배를 외치면 술을 벌컥벌컥 마시거나, 잔을 한 번에두 비운다, 3) 병이나 잔은 항상 두 손으로 잡아라, 4) 사람들의 음주 습관을 미리 알아두라. 예를 들면 첫 번째 라운드는 맥주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두 번째 라운드는 소주를 마시고, 세 번째 라운드는 위스키를 마시는 등의 순서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5) 술자리에서 '아니요'는 나쁜 것을 의미하니 술을 거부하지 말라, 6) 성대를 풀고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라, 7) 술 마시는 것이 너무 힘들면, 대리인을 내세울 수도 있다. 대신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술을 벌컥벌컥 단숨에 다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원문: everyone says “Gunbae!” and chugs – usually “one-shotting” the entire glass in one go.) 이것은 서양인들의 술 마시는 법과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서양의 와인이나 위스키는 잔에 따른 뒤, 그 잔을 집어 들고 천천히 돌리면서 코로 향기를 맡고 눈으로는 색깔을 감상합니다. 그리고 술을 한 모금 입안에 넣어 그것을 바로 삼키지 않고 입안에서 천천히 굴리며 맛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삼킨 뒤에도 목과 코로 올라오는 술 향기를 음미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짧게는 몇 분 길게는 10분이나, 20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회식에 참가하는 서양인들은 소주잔을 들고 서양식으로 찔끔찔끔 마시지 말고 벌컥벌컥 마시라고 충고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스카치위스키인 조니워커는 40도 가까운 독주입니다. 우리나라 소주는 보통이 16도, 참이슬 오리지널 빨간 뚜껑이 20.1도입니다. 조니워커의 알코올 도수는 이런 소주보다 두 배나 독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니워커를 소주처럼 벌컥벌컥 마십니다. 도수 높은 서양술은 원래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시간을 두고 분위기를 즐기면서 마시는 것입니다. 도수도 도수이지만 조니워커 블랙라벨은 5만 원 정도, 블루라벨은 36만 원이나 합니다. 소주 가격의 10배에서 100배 되는 술을 소주처럼 벌컥벌컥 마시니 그것을 본 서양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같은 도수의 조니워커 레드라벨은 가격이 싼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설명을 들으며 한참을 웃었습니다.


<음주문화와 기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 마시는 모습에 대해서 변명(?)을 해봅니다. 우리는 좋은 술이기 때문에 더욱 벌컥벌컥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에게 술은 배 안에서부터 취기가 번지는 약, 즉 약술입니다. 또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겨울은 무척이나 길고, 춥기 때문에 몸으로 들어간 술이 온몸을 데우는 보온재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중국 사람들도 술을 단숨에 벌컥 마시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것은 우리와 닮은 점입니다. 중국문화도 고대로 올라가면 우리와 같이 북쪽 발해연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술문화는 첨잔의 문화입니다. 조금씩 마시고 잔이 빌 때마다 채워주는 방식입니다. 일본도 원래는 아마도 우리와 같았겠지만, 온난한 기후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첨잔을 해가며 마시는, 즉 홀짝홀짝 마시는 술문화로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서양의 술문화는 기후가 따뜻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도 그렇고 이집트 문명도 그렇고, 그 문화를 받아들인 고대 그리스도 지중해 연안의 따뜻한 기후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런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곳에 맞는 술 문화가 생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몸 전체를 달구지 않고 혀끝과 입안에서만 취기를 느끼는 술 문화입니다. 한껏 발효된 포도알갱이를 입으로 씹어보면 취기가 입안을 맴돌다 머리로 올라가 부드러운 취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놓고 꿀꺽한 뒤 안주를 먹어 배 안에서 취기를 느끼게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방식입니다. 서양의 술은 또 물을 대신한 음료수였기 때문에 그 점도 그들의 술 마시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음식을 먹고 입가심을 하고, 목을 씻어주는 정도의 역할에 그친 것입니다.


<술을 함께 나눠 마시는 문화>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 문화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술을 함께 나눠마시는 문화, 즉 공음례(共飮禮, 함께 마시는 예)의 문화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대폿잔, 즉 커다란 술잔 하나로 여러 사람이 차례차례 술을 돌려 마시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결속과 화목을 도모한 것이었는데, 공식적으로도 예문관이나 성균관 등의 관청 연회에서 이런 공음례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또 보부상 등 서민층에서도 '대포지교(大匏之交)'라고 하여 큰 사발로 술을 함께 마시며. 격의 없고 허물없는 술친구의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공음례의 문화는 중국에서 나왔을까? 바이두에서 찾아봤습니다. 그것은 중국의 전통 결혼식 예식 중 하나로 주나라(BC1046-BC256) 때 기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술을 함께 마시는 풍습은 그것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고대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도 보입니다. 그들도 큰 술통을 사이에 두고 긴 빨대로 술을 함께 마셨습니다. 그 지역의 유물 가운데는 그런 모습을 그린 토기가 전해집니다. 이런 전통은 아마도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 온 문화입니다. 인류는 원숭이였을 때부터 술을 마셔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석기시대, 즉 농경 시대에 들어서 토기를 생산하기 전부터 술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토기가 만들어지자 거기에 술을 양조해 마셨겠지요. 그리고 조그마한 그릇이나 술잔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마도 큰 토기에 술을 부어 함께 마셨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생겨난 유구한 전통이 공음례나 '대포지교'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수작 문화>

또 다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 문화는 수작(酬酌)의 문화입니다. 수작은 갚을 수(酬)'와 '따를 작(酌)'을 합친 한자어인데, 좋지 않은 꾀를 꾸민다는 의미로도 쓰이는 말입니다. 원래는 술을 따라주는 것, 혹은 다시 되돌려서 따라주는 것을 말하는데, 나중에 '수작 부리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술을 마실 때, 대개는 남이 따라줘야 마십니다. 일본 사람들이 모인 회식자리를 보면 각자가 자기 술을 따라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남이 따라 주기를 기다렸다가 마시거나 아니면 자기 앞의 빈 잔을 들어 남에게 권하고 따라 줍니다.


또 남의 잔을 받을 때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습니다. 만약에 윗사람에게 잔을 건널 때는 역시 공손히 두 손으로 건넵니다. 이러한 모습을 처음 본 외국인들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특이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에게는 없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으로 연장자를 존중하고 예를 갖추어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술자리의 특이한 모습이 형성된 것입니다.


서양사람들의 술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인상에 남아 있는 일반적인 모습은 술을 따라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 영화에서 파티하거나 연회를 개최하는 장면을 보면 술병을 들고 돌아다니는 웨이터가 술을 따라줍니다. 서부극에 자주 나오는 술집(바) 장면에서는 바텐더가 술을 칵테일해서 따라줍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할 때는 하인이 서빙하는 경우도 있고, 음식을 차리는 집주인이 따라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끼리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술이 물을 대신하는 음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술을 따르는데 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또 술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술이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푸짐한 안주를 거느리면서 모임의 중심이 되는 우리와는 다른 풍경입니다. 혹시 우리의 술 문화가 서양의 술 문화보다는 더 오래된 것은 아닌지 상상해 봅니다. 더 원시적이고 더 원초적이며, 더 종교적인 뭔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술 문화에는 좀 더 종교적이고 좀 더 신성한 분위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오르는 술을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안주 요리를 거느리는 술>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한식 메뉴는 한국 술(K-sool)이라고 합니다.(농림축산식품부 발표자료 2021) 한국 술의 비선호도는 응답자의 14.1%를 차지하고 그다음은 김치로 9.5%가 싫어했습니다. 왜 한국 술(아마도 소주)을 한식 가운데 가장 싫어할까? 그 외국인이 서양인이라고 가정하고 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먼저 술을 한식 메뉴의 하나로 보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술이 차지하는 위상은 한식 가운데 독보적이기 때문입니다. 요리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요리를 거느리는 것이 한국의 술입니다. 술의 입장에서 보면, 식사자리에 나오는 모든 요리는 술안주입니다. 술안주란 술에 따라오는 요리로, 안주(按酒, 누를 안, 술 주) 즉 술의 기운을 부드럽게 눌러주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서양의 술은 음식을 먹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는 물과 같은 존재라면, 한국의 술은 모든 안주 요리를 거느리는 제왕 같은 존재입니다.


강사 선생님은 외국인들이 한식 가운데 등장하는 한국 술을 싫어하는 원인 중 하나로, '한국을 대표하는 술과 주류 문화가 확실하게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술은 단순한 알코올음료가 아닌, 수천 년 이어온 우리 문화가 담긴 잠재적 문화상품으로써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술은 요리에서 차지하는 그 위상이 서양의 술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한국의 술 문화는 수천 년 동안 한국의 인적, 물적 환경 안에서 배양되고 계승된 문화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분명히 외국인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생소함을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요리에서 나오는 술은 'Table Wine(반주 飯酒)'이라고 합니다. 이 '테이블 와인'은 식사 중에 곁들여 마시도록 만들어진 일반적인 포도주를 말하며, 매일 마시거나 여러 번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와인입니다. 그래서 알코올 함량이 7도에서 14도 정도로 낮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반주, 즉 소주는 도수가 높습니다. 물론 막걸리의 경우는 낮지만 여기서는 소주를 주목해 봅니다.


1924년에 처음 출시된 소주는 35도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는 30도까지 낮아졌다가, 1970년대에는 25도까지 내려왔습니다. 현재는 16도 정도이며, 더 낮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서양의 반주보다는 도수가 높습니다. 지금은 미국 일부 주에서 소주가 일반 식당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원래 미국에서는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식당에서 반주로 판매될 수 없습니다. 별도의 매장에서 면허를 받아 판매를 합니다. 그러므로 서양사람들이 한식을 먹으면서 도수가 높은 소주를 만나게 되면 깜짝 놀라고 꺼려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전에 우리나라 요리에서 술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상을 알았다면, 그리고 소주가 증류주고 그 도수가 꽤 높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소주와 불고기의 관계는 맥주와 핫도그, 마가리타, 칩스 등의 관계와 같다." 수업시간에 받은 자료에 나온 말입니다. 삼겹살에 소주도 잘 어울립니다. 소주는 말하자면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마실 때 잘 어울리는 술입니다. 묵직하게 격식을 차린 안주와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맥주나 와인 혹은 서양의 증류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술은 가벼운 안주와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핫도그, 칩스 그리고 마가리타 등이 언급된 것입니다. 칩스는 감자칩과 같은 가벼운 종류의 과자 혹은 튀김 안주를 말합니다.


멕시코에서 시작된 마가리타(Margarita) 칵테일은 서양 술의 특징을 가장 잘 알려주는 '술과 안주의 조합'입니다. 마가리타는 마르가리타라고도 부르는데, 테킬라 베이스의 칵테일 중 한 가지입니다. 테킬라를 기본으로 하여 트리플 섹(오렌지 리큐어)과 라임 즙 혹은 레몬 즙을 얼음과 함께 넣고 섞은 뒤에 얼음을 빼고 칵테일 잔에 붓고, 글라스 잔 주위에 소금을 두르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실 때는, 먼저 라임을 씹고 소금을 핥은 후에 한 모금씩 마십니다. 여기에서 마가리타는 술이고 안주는 라임과 소금입니다. 이들 안주는 입 안의 미각을 돕는 작용을 합니다. 우리나라 안주처럼 뱃속으로 들어가서 취기를 눌러주는 역할이 아닙니다. 서양의 술문화가 우리와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점이 바로 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한국 전통술의 역사


<삼국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술 기록은 주몽의 탄생 설화에 나옵니다. 이 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 운기>, <동국이상국집> 등에 나옵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엄마가 술에 취해 낳은 아들입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하백의 딸 유화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에 인연을 맺어 아들을 얻었는데 이 아들이 주몽입니다. 술에 취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같이 술을 마셨다는 것이고 그런 술과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과 관련된 기록은 사실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라갑니다. 고대 제천의식 중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에서 동이족들이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중국 기록이 전해집니다. 음주가무(飮酒歌舞)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으로 술이 축제의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구려가 한나라 요동 태수에게 맛 좋은 술(旨酒)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으며, 고구려의 곡아주(曲阿酒)가 중국에 명주로 알려졌다는 기록도 있습니다.(당나라 <유양잡조酉陽雜俎>) 또 중국의 기록에 고구려는 '스스로 술 빚기를 즐기는 나라'라고 평가했으며, 발효 기술이 뛰어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듯 당시 고구려는 누룩과 발아된 곡물을 사용한 곡주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한편 백제도 선진적인 양조 기술을 보유하고 일찍부터 누룩을 이용한 곡주 양조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일본에 전해졌는데, 백제인 수수보리(須須保理)가 일본에 누룩을 이용한 양조법을 전수했다는 기록이 <고사기>에 전해져 옵니다. 일본의 오진천황은 수수보리가 빚은 술을 마시고 "재난을 없애주는 술, 웃음을 주는 술에 내가 취했네"라고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수수보리는 고급 청주를 빚어서 왕에게 올렸다고 전합니다.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술로 고구려의 계명주, 백제의 소곡주, 그리고 신라의 교동 법주가 있었습니다. 계명주는 술을 담근 다음날 닭이 우는 새벽에 벌써 다 익어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고 하며, 소곡주는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하는데, 한번 맛을 보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는 술입니다. 교동 법주는 찹쌀과 누룩으로 빚은 청주입니다. 삼국 시대의 술 이야기라니 전혀 엉뚱하지만 매우 흥미롭습니다. 삼국시대를 살았던 조상들의 술과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신라시대>

신라의 술은 멀리 중국에도 알려졌습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신라주 한잔의 취기가 새벽바람에 쉬이 사라질까 두렵구나(一盞新羅酒, 凌晨恐易消)"라고 시를 지어 그 맛을 칭찬했습니다. 신라에서는 국가적인 축제와 의식에 술이 필수적인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는 다양한 곡주가 등장하였는데 상류층은 청주(맑은술)를 애호했습니다.


신라의 술 문화와 관련된 유명한 출토 유물이 있습니다. 당시 수도였던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14면체 주사위 주령구(酒令具)가 그것입니다. 각 면에는 '술 마시고 소리 없이 춤추기', '술 석 잔을 한 번에 마시기', '스스로 노래 부르고 술 마시기' 등 여러 가지 벌주 놀이가 적혀있습니다. 주사위 놀이를 하면서 술을 마셨다는 증거입니다. 신라인의 풍류와 재치가 넘치는 음주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한 뒤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책인 <고려도경>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고려 사람들은 술을 즐긴다. 서민들은 맛이 투박하고 빛깔이 진한 것을 마신다." 여기에서 맛이 투박하고 빛깔이 진한 술이란 막걸리와 같은 곡주를 말합니다. 고려 성종 때는 수도 개성의 술집 문 앞에는 등을 매달아 그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술집 관련 기록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의 양조기술을 계승하여 청주, 탁주, 약용주, 과실주 등 다양한 술이 생산되고 거래가 되었습니다. 이양주, 삼양주 등 양조한 밑술에 덧술을 더하는 기술이 보편화되었으며, 맛과 향이 깊고, 도수가 높은 고급술도 생산되었습니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고려청자 술병과 잔을 사용하여 술을 즐기는 문화도 유행했습니다.


13세기 즉 고려 충렬왕 1277년 경에는 몽골(원나라)로부터 아랍의 증류 기술이 전래되어 소주가 탄생했습니다. 도수가 높은 이러한 증류주는 초기에 생산량이 적어 왕족과 귀족층이 주로 마셨는데, 개성과 안동 등을 중심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소주는 조선 초기까지 주로 약용으로 사용되었으나 9대 성종 시대(1469-1494) 이후부터 비로소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고려시대에 소주는 귀족의 술, 막걸리는 백성과 서민의 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고려 가요 <쌍화점(雙花店, 만둣집)>에 술 파는 술집 이야기가 나옵니다. <쌍화점> 가사를 현대어로 표현을 바꿔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쌍화점(만둣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아랍인 아저씨가 내 손목을 쥐었다네.

이 소문이 이 가게 밖으로 나고 들면, 다로러 거디러.

조그마한 애기 광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한번 자러 가야지.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처럼 뒤엉킨 곳이 없다네.


삼장사에 불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스님이 내 손목을 쥐었다네.

이 소문이 이 절 밖으로 나고 들면, 다로러 거디러.

조그마한 애기 스님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한번 자러 가야지.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처럼 뒤엉킨 곳이 없다네.


우물가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에 사는 용이 내 손목을 쥐었다네.

이 소문이 이 우물 밖으로 나고 들면, 다로러 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한번 자러 가야지.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처럼 뒤엉킨 곳이 없다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저씨 내 손목을 잡았다네.

이 소문이 이 집 밖으로 나고 들면, 다로러 거디러.

조그마한 바가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한번 자러 가야지.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처럼 뒤엉킨 곳이 없다네.


여성들이 만둣집에 만두 사러 갔다가, 절에 공양드리러 갔다가, 우물가에 물 길러 갔다가, 그리고 술집에 술 사러 갔다가 그곳에 있는 남자와 눈이 맞아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입니다. 19금 딱지를 붙여야 할, 불건전 가요입니다. 그런데 술집에 술 사러 간 그 고려의 여인은 누구를 위해서 술 사러 간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빠를 위해서? 신랑을 위해서? 아니면 자신이 마시려고? 천년쯤 전에도 술집이 있었고, 술을 팔고 사는 사람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낍니다. 우리의 삶이 참으로 오묘합니다. 혹시 그 여인이 멀고 먼, 멀고 먼 우리 할머님은 아니었을까?


<조선시대>

조선 시대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만개한 시기였습니다. 가양주란 집에서 빚은 술을 말합니다. 제사를 중시한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제사 때 사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멀리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각 집안마다 고유한 비법으로 술을 빚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저술된 농업서인 <임원경제지>에는 100가지 넘는 술이 소개되어 있으며, <음식디미방> 등 요리 서적에는 술 빚는 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시풍속으로 절기마다 그 의미를 담은 술을 빚어 마시며 즐겼습니다. 예를 들면 정월대보름에는 귀밝이 술, 단오 때는 창포주 만들어 마셨습니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에 주막이나 술 마시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렇게 술을 즐기는 문화 때문입니다.


당시에 발전된 양조 기술로 밑술에 덧술을 더 하는 이양주, 삼양주 등 중양법(重釀法)이 보편화되었으며, 맛과 향이 깊고 도수가 높은 고급술이 생산되었습니다. 청주와 탁주, 그리고 소주의 분류가 정착되었고, 약재를 넣은 약용주와 꽃을 넣은 가향주 등 수백 종에 가까운 술이 생산되었습니다. 또 조선시대에 전통누룩으로 만든 소주 종류가 48종에 달했다고 합니다. 다만,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이나 <지봉유설>(1614)에 따르면, 소주는 약용 외에는 마시지 못하도록 금지되었습니다.


영조 때에는, 일시적으로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흉년이 들어 곡물을 확보하고 사회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서 금주령을 시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강력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술은 여전히 제사 등 생활에 필수적이었으므로 민간에서는 밀주 형태로 계속 술을 빚었습니다.


조선시대 술은 크게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발효주로는 막걸리(탁주), 약주, 청주, 과실주가 있었습니다. 막걸리는 곡물을 발효하여, 맑은술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내 만든 술입니다. 약주는 곡물과 누룩, 그리고 물을 원료로 발효하여 찌꺼기를 걸러낸 맑은술입니다. 청주는 쌀, 입국, 물을 원료로 발효한 뒤, 걸러낸 맑은술입니다. 과실주는 각종 과일을 원료로 발효한 술입니다.


증류주는 발효주를 증류한 뒤에 추출한 알코올을 농축하여 제조하였습니다. 증류주로는 소주 외에도 다양한 술이 생산되었는데,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는 조선의 3대 명주(증류주)로 평양의 감홍로, 전주의 이강주, 그리고 전라도의 죽력고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감홍로는 찹쌀로 만든 소주에 계피, 용안육, 진피, 방풍, 정향 등을 가루 내어 첨가하여 만든 술로, 붉고 달콤한 맛이 있습니다. 전주의 이강주는 증류식 소주에 배, 생강, 울금, 계피, 꿀을 넣고 장기간 숙성해서 만든 술입니다. 죽력고는 대나무를 쪼갠 후 열을 가해 얻는 대나무 기름, 즉 죽력에 꿀, 생강 등을 넣어 만든 증류주입니다. 이외에도 안동 소주, 진도 홍주, 문배주 등이 전통 증류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근현대>

한말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면허 생산제의 도입 등으로 이러한 전통주의 문화가 쇠락했습니다. 특히 1909년부터 1934년까지 일제는 여러 차례의 주세령을 반포하여 수탈을 본격화했습니다. 술 생산의 면허제가 도입되어 각 가정에서 가양주 제조가 금지되었습니다. 공장이 아니면 술을 제조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소주와 막걸리 생산도 일본식으로 변했습니다. 전통 누룩으로 만든 소주는 쇠퇴하고 대신 일본식 누룩으로 술을 제조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일본식 누룩이란 흑국(黑麴)을 말하는데 부서진 쌀이나 조를 수증기로 찐 뒤에 흑국균을 배양하여 만든 것입니다.


소주는 크게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구분됩니다. 전자는 전통 소주를 말하며 후자는 현재 시중에 시판되는 공장 소주를 말합니다. 증류식 소주, 즉 전통 소주는 쌀, 혹은 고구마나 다른 곡류를 원료로 하여 물과 누룩을 첨가하여 빚은 뒤, 증류하여. 에틸알코올을 추출한 술을 말합니다. 이와 달리 공장 소주라고 불리는 희석식 소주는 연속식 증류기로 전분이나 당분이 함유된 재료에 효모를 투입하여 발효시켜 증류한 뒤, 그것을 알코올 성분 95% 이상으로 정제한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주정에 물과 감미료 등을 넣어서 묽게 희석하여 소주를 만듭니다. 물 투입량을 조절하여 알코올 도수를 조정하는데, 이때 투입되는 물은 소주 전체 가운데 대략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해방 후 1950년대에 식량난으로 곡류를 소주 제조에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누룩을 사용한 소주 생산은 없어지고 희석식 소주만 살아 남았습니다. 1965년에는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쌀을 주원료로 하는 술 제조가 금지되었습니다. 쌀 대신 고구마를 사용하여 증류식 소주를 생산할 수 있었으나 소비자들이 외면하여 인기가 없었습니다. 이후 1990년부터는 소주 생산에 쌀 사용이 허용되면서 전통주 제조가 자유롭게 되었고 막걸리 원료로 쌀을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었습니다. 1995년 이후에는 판매 목적이 아닌, 가정에서의 술 제조, 즉 자가양조가 허용되어 전통주를 빚는 가양주 문화가 부활할 수 있게 되습니다.


이에 따라 증류식 소주의 생산도 다시 재개되었습니다. 그러나 희석식 소주가 대량 생산에 용이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소주는 대부분 희석식 소주입니다. 희석식 소주의 원료가 되는 주정은 (주)대한주정판매라는 회사에서 독점합니다. 이 회사는 각지의 주정회사 10곳으로부터 주정을 공급받아 국내 소주 회사에 공급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주가 서울의 참이슬, 충남 O2린, 전북의 하이트, 전남의 잎새주, 강원도의 처음처럼, 충북의 시원한 청풍, 대구 경북의 참소주, 부산과 경남의 좋은 데이, C1, 하이트, 그리고 제주의 한라산 등입니다.


소주는 출고가격의 72%가 주세입니다. 그러고 보면 술을 많이 마시는 일은 국가에 공헌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공헌할 필요는 있겠지요. 60kg 체중인 남자가 소주 1병을 마신 뒤 알코올을 분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4시간 47분이라고 합니다. 체중이 더 무거울수록 해독능력은 강해진다고 합니다. 덩치가 큰 사람이 술에 강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소주 2병을 마시면, 해독하는데 12시간 정도 걸린다고도 합니다. 단순계산해서, 소주 4병을 마시면 24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직장 퇴근 길에 소주 4병을 마시면 다음날 근무시간 중에도 취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술을 마실 때는, 우리 몸이 술을 해독하느라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알코올은 독성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의 연간 1인당 소주 소비량은 약 53병입니다. 2016년에는 90병, 2013년에는 126병이었습니다. 소주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주는 한 잔 열량이 약 55kcal나 된다고 합니다. 성인 1인의 하루 필요 칼로리는 남성이 대략 2,200kcal이니 40잔(약 6병)을 마시면 그 정도 필요에 충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양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몸은 부실해지고 살만 찔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막걸리는 열량이 소주와 비슷하지만 영양분은 풍부합니다. 단백질, 탄수화물, 유산균, 유기산 등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어 소주보다는 경제적입니다.


수업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된 다음과 같은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천하에 인간이 하는 일이 많건만 술 마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다음에 어려운 일은 여색을 접하는 일이요. 그다음이 벗을 사귀는 일이요. 그다음이 학문을 하는 일이다. 주색우학(酒色友學), 이 네 가지는 군자가 힘써 수행하는 것이다."(김승호,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고 주객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


말을 바꾸면 술 마시는 일이 가장 위험한 일이고 그다음은 이성을 사귀는 일, 그다음이 친구를 사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일은 공부하는 것입니다. 술을 마실 때는 정말 조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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